핸드폰 화면이 꺼지지 않았다.
시율은 다은의 문자를 열한 번째 읽고 있었다.
『C대학교 의대에 넣으려고요.』
새벽 3시. 사무실에 불은 스탠드 하나뿐이었다. 준혁은 한 시간 전에 퇴근시켰다. 혼자 있어야 했다. 숫자가 아닌 것을 생각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혼자여야 했다.
모니터를 켰다.
C대학교 의대. 경남 소재. 정시 정원 60명. 그중 지역인재 전형 40%. 24명.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지역인재 전형의 지원 자격을 확인했다. 경남권 소재 고등학교 졸업자. 다은의 출신 고교 — 경남 창원.
'해당된다.'
지역인재 전형 작년 합격선. 표준점수 합산 기준 387. 다은의 표준점수 합산 약 390.
합격선을 3점 넘는다.
일반 전형이었다면 C대학교 의대 커트는 405 부근. 다은의 390으로는 15점이 부족했다. 하지만 지역인재 전형은 별도 선발이다. 경남권 출신끼리만 경쟁한다. 모수가 줄어들면 커트가 내려간다. 그것이 지역인재 전형의 구조였다.
시율은 반영비를 대입했다.
C대학교 의대 반영비: 국어 30%, 수학 40%, 탐구 30%. 영어는 등급별 감점.
국어 132에 0.30을 곱하면 39.6. 수학 128에 0.40을 곱하면 51.2. 탐구 130에 0.30을 곱하면 39.0. 합계 129.8.
지역인재 전형 작년 환산 커트: 126.5. 올해 보정 예측 127.0에서 128.0 사이.
넉넉했다. 합격 확률 97.3%.
손가락이 멈췄다.
'내가 이걸 왜 못 봤지.'
답은 알고 있었다. 다은이 "서울 의대"라고 했으니까. 서울이라는 단어에 검색 범위를 걸어버렸으니까. 경남은 필터 밖이었다.
데이터를 놓친 것이 아니다. 질문을 잘못한 것이다.
'어디에 가고 싶은지'를 물었어야 했다. '왜 거기에 가고 싶은지'를 물었어야 했다.
안경을 벗고 렌즈를 천으로 닦았다. 닦을 필요 없이 깨끗한 렌즈를. 습관이었다. 생각이 막힐 때 하는 동작.
'아버지가 경남에 계신다.'
준혁이 알려준 정보. 아버지의 병원. 서울이 아니라 가까이 있고 싶다는 것. C대학교는 경남 소재. 아버지 곁에서 의대를 다닐 수 있다. 장학금 가능성도 높다. 지역인재 상위 합격이면 거의 확실하다.
모든 것이 맞아떨어졌다. 숫자로도. 사람으로도.
그런데 그 배치를 설계한 것은 컨설턴트가 아니라 열아홉 살 학생이었다.
아침 9시. 시율이 커피를 내리고 있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건우였다.
"야, 다은이 문자 봤지?"
"봤습니다."
"C대학교 지역인재. 경남 출신." 건우의 목소리에 웃음이 섞여 있었다. 쓸쓸한 종류의 웃음. "나도 못 봤어. 서울 서울 하길래 서울만 봤지."
시율은 대답하지 않았다.
"한시율, 너도 같은 실수 했잖아."
"네."
짧은 침묵.
"웃기지 않냐. 나는 사람을 본다고 했고, 너는 숫자를 본다고 했는데, 둘 다 정작 그 학생을 못 본 거야."
시율의 손이 커피잔 위에서 멈췄다.
"건우 선생님."
"응."
"다은 학생에게 전화하실 건가요?"
"이미 했어. 아침에." 건우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잘 골랐다고 했어. 네가 맞아, 라고."
전화가 끊겼다.
시율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커피를 마셨다. 블랙. 설탕 없이. 쓴맛이 혀를 감쌌다.
'다은 학생은 끝났다. 내 일은 아직 남아 있다.'
남은 학생 11명. 배치안을 모두 확정해야 한다. 정시 지원 마감이 이틀 뒤.
하지만 오늘은, 한 가지를 먼저 해야 했다.
모니터를 켜고 배치 시뮬레이터를 열었다. 설정 화면. '검색 범위' 항목.
기존 설정: 학생 희망 지역 기준 필터링.
수정: 전국.
엔터를 눌렀다.
'학생이 말한 것만 듣지 않는다. 말하지 않은 것도 본다.'
준혁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형, 좋은 아침 — 어, 벌써 와 있었어요?"
"준혁아."
"네?"
"앞으로 상담 전에 학생 프로필 준비할 때, 출신 고교 소재지하고 가족 상황도 정리해둬."
준혁이 눈을 크게 떴다.
"형이… 그런 거 필요하다고 한 적 없는데."
"지금부터 필요해."
준혁이 노트북을 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
오후 2시. 새 상담.
강민재. 재수생. 체격이 좋은 남학생이 상담실에 들어왔다. 패딩을 입고 있었지만 교복이 더 어울릴 것 같은 깔끔한 인상이었다.
옆에 아버지가 함께 왔다. 양복 차림. 넥타이를 매고 있었지만 매듭이 약간 풀려 있었다. 회사에서 바로 온 모양이었다.
"앉으세요."
시율이 짧게 말했다. 민재가 먼저 앉았고, 아버지가 그 옆에 앉았다.
"성적표요."
민재가 핸드폰 화면을 보여줬다. 종이가 아닌 모바일 성적 확인.
국어 131(백분위 95). 수학 140(백분위 98). 영어 1등급. 과탐 — 물리 69, 화학 68, 합산 표준점수 137(백분위 평균 96).
표준점수 합산: 국어 131 + 수학 140 + 탐구 137 = 408.
시율의 눈이 숫자 위를 훑었다. 머릿속에서 전국 의대 반영비 테이블이 돌아갔다.
"의대 지망이죠?"
"네. 서울 쪽으로 가고 싶은데요."
아버지가 끼어들었다. "서울이면 좋겠지만, 장학금이 나오는 데라면 지방도 괜찮습니다."
민재의 입이 살짝 열렸다가 닫혔다. 무언가를 말하려다 삼킨 모양이었다.
시율은 그것을 봤다. 이번에는 봤다.
3일 전이었다면 넘어갔을 것이다. 성적표의 숫자만으로 배치안을 짜기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은의 문자가 아직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태블릿을 내려놓았다.
"민재 씨, 서울에 남고 싶은 이유가 있어요?"
준혁이 고개를 돌렸다. 눈이 커졌다. 시율이 학생에게 숫자가 아닌 질문을 한 것은 2년 만에 처음이었다.
민재가 아버지를 힐끗 봤다.
"그냥… 서울이 편해서요."
거짓말이라는 것을 시율은 알았다. 하지만 더 묻지 않았다. 아버지 앞에서 캐물을 필요는 없다. 이유가 뭐든, 숫자가 먼저 답을 줄 것이다.
"알겠습니다. 분석 들어갈게요."
태블릿을 켰다. 전국 의대의 반영비 테이블이 떴다.
"합산 408이면 서울 소재 의대는 경계선입니다. 서울 의대 커트가 410에서 415 사이. 대학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 408로는 부족해요."
아버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시율이 손가락으로 화면을 넘겼다. "반영비라는 변수가 있습니다. 대학마다 국어, 수학, 탐구의 반영 비율이 다릅니다. 민재 씨는 수학이 140으로 강점이에요. 수학 반영비가 높은 대학에서는 환산점수가 올라갑니다."
숫자가 정렬되기 시작했다. 시율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훑었다.
"상세 분석이 나오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이틀 안에."
민재와 아버지가 일어났다. 민재가 문 앞에서 한 번 돌아봤다. 무언가 더 말하고 싶은 표정이었지만, 아버지가 먼저 나갔고 민재도 따라나갔다.
문이 닫혔다.
준혁이 다가왔다.
"형, 아까… 서울에 남고 싶은 이유 물어본 거, 처음이지 않아요?"
시율은 대답하지 않았다. 모니터에서 반영비 테이블을 열었다.
"분석이나 시작하자."
"네, 형."
하지만 준혁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것을 시율은 보지 못했다.
밤 11시.
시율은 민재의 반영비 조합을 돌리고 있었다.
전국 의대의 반영비를 하나씩 대입했다. 민재의 영역별 표준점수 — 국어 131, 수학 140, 탐구 137. 수학이 강점이라면, 수학 반영비가 높은 대학이 유리하다.
화면에 결과가 정렬되었다.
중앙대 의대. 반영비 국어 30%, 수학 40%, 탐구 30%. 환산하면 국어 39.3, 수학 56.0, 탐구 41.1. 합계 136.4. 작년 커트 환산 137.2. 0.8점 부족.
경희대 의대. 반영비 국어 25%, 수학 35%, 탐구 40%. 환산하면 국어 32.75, 수학 49.0, 탐구 54.8. 합계 136.55. 작년 커트 환산 136.8. 역시 부족하지만 오차 범위.
한양대 의대. 반영비 국어 20%, 수학 40%, 탐구 40%.
시율의 손가락이 멈췄다.
국어 131에 0.20을 곱하면 26.2. 수학 140에 0.40을 곱하면 56.0. 탐구 137에 0.40을 곱하면 54.8. 합계 137.0.
작년 커트 환산: 136.5.
0.5점 초과.
합격 가능.
국어 반영비가 20%로 가장 낮고, 수학과 탐구가 각각 40%. 민재의 약점인 국어의 영향이 최소화되고, 강점인 수학과 탐구가 극대화되는 구조.
'다른 컨설턴트라면 중앙대를 먼저 봤을 거야. 408이면 중앙대 의대가 가장 먼저 떠오르니까. 하지만 중앙대는 국어 반영비 30%라 민재한테 불리하고, 환산하면 커트에 0.8점 부족하다.'
메모를 정리했다.
-강민재 최적 배치: 한양대 의대 (나군). 수학+탐구 반영비 극대화.-
그 아래에 한 줄을 더 적었다.
-서울에 남고 싶은 이유: 미확인. 추후 파악.-
펜이 멈췄다. 시율은 자신이 그런 메모를 적고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일주일 전이었다면 적지 않았을 메모.
'변하고 있나.'
고개를 저었다. 변한 것이 아니다. 다만 변수를 하나 더 인식한 것뿐이다. 변수를 인식하는 것과 변수를 허용하는 것은 다르다.
모니터를 껐다. 사무실을 나섰다. 12월의 대치동 밤공기가 차가웠다. 숨을 내쉬자 하얀 입김이 피어올랐다가 사라졌다.
다음 날 저녁.
민재는 대치동 거리를 걸었다.
학원가의 불빛이 겨울 어둠 속에서 형형색색이었다. 간판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입시전략. 의대반. 컨설팅.
시율 선생님의 말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반영비. 수학 강점. 이틀 안에 분석이 나온다.
주머니 속 핸드폰이 진동했다. 여자친구.
『오빠 상담 어땠어?』
답장을 치다 말았다. 오른쪽 골목 입구에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입결 예측 적중률 92% — 노건우 입시전략연구소-
숫자가 눈에 박혔다. 92%. 시율 어드바이저스의 적중률 95%보다 낮지만, 92%도 높은 수치였다.
현수막 아래 작은 글씨.
-"숫자 뒤에 사람이 있습니다."-
민재는 그 문구를 한참 봤다. 서울에 남고 싶은 이유를 시율 선생님은 물었다. "그냥 편해서"라고 답했지만, 진짜 이유는 달랐다. 여자친구가 서울에 있다는 것. 아버지 앞에서 말할 수 있는 이유가 아니었다.
'한 군데 더 들어볼까.'
핸드폰을 꺼내 현수막에 적힌 번호를 저장했다.
그리고 문자를 보냈다.
『상담 예약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