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도윤은 새벽 5시에 눈을 떴다.
알람보다 2분 먼저. 12년째 같은 시간에 깨는 몸이 되었다. 침대 옆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이 얼굴을 비추었다. 잠에서 덜 깬 얼굴. 유튜브 썸네일의 자신감 넘치는 표정과는 다른 얼굴.
유튜브 스튜디오 앱을 열었다. 구독자 수. 25만 2천 3백. 어제보다 30명 늘었다. '반수 성공 전략 TOP 5' 영상 조회수 4만 8천. 좋아요 2,100. 괜찮은 수치였다. 하지만 손은 이미 경쟁 강사 박현준의 채널을 검색하고 있었다. 최신 영상 "의대 입결 분석 2025" 조회수 12만. 세 배.
'12만.'
핸드폰을 내려놓고 세수를 했다. 거울 속 얼굴에 수건을 대며 2초간 눈을 감았다. 그리고 떴다. 페르소나 장착.
차에 탔다. 학원까지 15분. 운전하면서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경쟁 학원 입결 현황 분석 요약을 들었다. 어제 유진이 정리해서 보내준 파일이었다.
"○○학원 서울대 예상 합격 55명, △△학원 60명 예고..."
차도윤의 학원은 작년 47명. 올해 전망은 43명. 줄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상위권 학생 이탈. 경쟁 학원의 스카우트. 입결 파밍 시장이 과열되면서 '이미 잘하는 학생'의 몸값이 올랐다. 작년에 잡아두었던 S반 출신 두 명이 올해 다른 학원으로 갔다. 한 명은 학원비 전액 면제, 한 명은 숙소 제공. 학생을 빼가는 게 아니라 사가는 시장이 되었다.
학원 주차장에 도착했다. 엔진을 끄고 2초간 눈을 감았다. 핸들을 잡은 손의 힘을 풀고, 어깨를 펴고, 입꼬리를 올리는 순서. 표정을 만드는 데 정확히 2초가 걸렸다. 그리고 눈을 떴다. 도윤쌤.
오전 10시. 1층 대강의실. 7월 학기 학부모 설명회.
200석이 꽉 찼다. 학부모들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 형광등 탓인지 기대감 탓인지. 오정민은 앞줄 세 번째에 앉아 있었다. 베이지색 원피스에 샤넬 클래식 가방. 오늘은 선글라스를 일찍 벗었다. 대신 노트를 꺼내놓았다. 메모할 준비.
차도윤이 무대에 올랐다.
슬림핏 셔츠. 소매를 한 번 접은 팔뚝. 마이크를 잡는 손이 안정적이었다. 화면에 첫 번째 슬라이드가 떴다.
-2025 입시 실적 현황-
"서울대 47명, 컨설팅 포함. 연세대 63명. 고려대 58명."
숫자가 스크린에 크게 표시되었다. 200명의 학부모가 숫자를 봤다. 오정민은 47이라는 숫자 옆의 '컨설팅 포함'을 읽었다. 그 작은 글씨의 의미를 오정민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큰 글씨였다. 47. 이 숫자가 클수록 학원의 가치가 올라가고, 학원의 가치가 올라갈수록 S반의 가치가 올라가고, S반의 가치가 올라갈수록 서율의 스펙이 빛났다.
"올해는 특별한 학생이 S반에 합류했습니다."
차도윤이 학부모들을 천천히 둘러봤다.
"중위권 대학에서 반수를 결심하고, S반의 환경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학생이 있어요. 이름은 밝힐 수 없지만, 반수 성공의 새로운 모델이 될 거라 확신합니다."
오정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우리 서율이.' 이름은 밝히지 않았지만, 맘카페에서 이미 "오정민 씨 딸이 S반"이라는 정보는 돌았다. 차도윤의 말이 오정민에게 부여하는 것은 '성공한 학부모'라는 타이틀이었다.
뒷줄에서 한 학부모가 옆 사람에게 속삭였다.
"저 47명, 진짜예요?"
속삭임은 속삭임으로 퍼졌다. 하지만 차도윤의 마이크 볼륨이 더 컸다.
슬라이드가 넘어갔다. 7월 학기 커리큘럼. S반 특별 프로그램. 1:1 컨설팅. 모의고사 분석 리포트. 차도윤은 20분간 쉬지 않고 말했다. 숫자, 전략, 비전. 모든 문장이 매끄러웠고, 모든 숫자가 인상적이었다. 200명의 학부모는 고개를 끄덕이고, 메모를 하고, 핸드폰으로 슬라이드를 찍었다.
설명회가 끝났다. 200명의 학부모가 일어서며 웅성거렸다. 핸드폰을 확인하는 손, 옆 사람에게 속삭이는 입, 차도윤을 향해 걸어가는 발. 200개의 욕망이 동시에 움직이는 풍경이었다.
차도윤은 무대에서 내려와 학부모 몇 명과 악수를 나눴다. 프로의 미소. 악수할 때 상대의 눈을 정확히 2초 바라보고, 이름을 한 번 불러주는 기술. "아, 현우 어머니시죠? 현우가 요즘 수학 많이 올랐어요." 사실 현우의 성적은 모르지만, 학부모 이름과 자녀 이름을 외우는 것만으로 충성도가 올라갔다. 12년의 기술이었다.
설명회 직후. 1층 로비 옆 카페.
오정민은 학부모 세 명과 테이블에 앉았다. 이현주, 김선영, 박미라. 대치 맘스 프리미엄의 핵심 멤버들.
"오늘 설명회 좋았죠? 원장님이 역시 프레젠테이션을 잘하셔."
이현주가 커피를 저으며 말했다.
"네, 올해 입결이 기대돼요. 서율이가 S반에서 열심히 하고 있어서."
오정민의 목소리에 자랑이 자연스럽게 섞였다. 질문의 형태를 띤 자랑. 대치동 학부모의 기본 문법.
박미라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근데 정민 씨, S반 편성 기준이 올해 좀 느슨해졌다는 말이 있더라고요. 저희 현우는 작년에 A반 1등인데도 못 올라갔거든요."
카페 안의 공기가 미세하게 바뀌었다. 오정민은 커피잔을 든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느슨해졌다'는 말. 축하가 아니라 도전이었다.
"아, 그래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원장님이 서율이 가능성을 높이 평가하신 것 같아요. 기본기가 탄탄해서."
'기본기'라는 단어를 꺼내는 오정민의 음성은 평온했지만, 눈은 웃지 않았다. 박미라도 눈은 웃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저울이 있었다. 한쪽에는 서율의 S반, 다른 쪽에는 현우의 불합격.
"기본기가 좋으시다니 다행이네요. 정민 씨는 항상 관리를 잘하시니까."
김선영이 중재하듯 말했지만, '관리를 잘하신다'에는 '로비를 잘하신다'가 한 겹 깔려 있었다. 오정민은 그 한 겹을 읽었다. 웃음을 유지했다. 대치동에서 살아남으려면 웃음을 유지하는 법을 알아야 했다.
카페를 나왔다. 건물 앞에서 선글라스를 쓰며 핸드폰을 열었다. 맘카페. 새 글이 올라와 있었다.
[익명: 올해 S반 커트라인이 많이 내려갔다는데 사실인가요? 작년에 우리 아이 93점으로 떨어졌는데...]
댓글이 달리고 있었다. 오정민은 그 글을 3초 보다가 핸드폰을 닫았다. 선글라스 너머로 학원 건물이 보였다.
'서율이 성적이 올라야 해. 그래야 아무도 뭐라 못 해. 성적이 오르면 커트라인 이야기도, 편성 기준 이야기도, 전부 의미가 없어진다. 결과가 과정을 정당화하는 곳이 대치동이니까.'
S반 주간 테스트 12등이라는 사실을 오정민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알게 되면 선글라스로 가릴 수 없는 표정이 나올 것이다.
오후 5시. 7층 원장실.
차도윤은 넥타이를 풀고 — 설명회라 넥타이까지 했다 — 의자에 앉았다. 노트북을 열고 엑셀 파일을 켰다. 입결 시뮬레이션.
S반 12명의 6월 모의고사 성적과 수능 예상 표준점수가 표로 정리되어 있었다. 표준점수 600점 만점 기준.
강민수 411 → 예상 415 (서울대 의예 지원 가능) 2번 학생 404 → 예상 408 (서울대 상위학과) 3번 학생 399 → 예상 403 ... 한서율 370 → 예상 ???
서율의 예상 점수 칸이 비어 있었다. 6모 표준점수 370점. 서울대 지원 가능 라인은 학과에 따라 최소 396점 이상. 26점을 5개월 안에 올려야 했다. 표준점수 26점은 등급 하나에 가까운 차이였다.
현실적으로 서울대 가능권은 5명. 나머지 7명은 기대 사례. 기대 사례라는 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서율은 기대 사례 중에서도 가장 불확실한 케이스였다.
차도윤은 서율의 370점을 다시 봤다. 서울대 경영이라면 407점. 37점 차이. 불가능한 수치는 아니지만, 5개월 안에 올리려면 모든 영역에서 고르게 상승해야 했다. 현재 추세로는 어렵다.
차도윤은 계산했다. 입결의 순환 구조.
입결 → 학부모 유입 → 등록금 → 마케팅 투자 → 더 좋은 입결.
이 순환의 톱니바퀴 하나가 빠지면 전체가 무너진다. 그 톱니바퀴가 '실제 합격자 수'인데, 올해 전망은 작년보다 떨어지고 있었다. 경쟁 학원은 60명을 예고하는데, 이쪽은 43명 전망. 차이가 벌어지면 학부모가 이탈하고, 이탈하면 좋은 학생이 빠져나가고, 빠져나가면 입결이 더 떨어진다. 악순환.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유진에게 전화.
"유진아."
"네, 원장님."
"이번 9모까지 S반 전원 표준점수 관리 좀 해줘."
전화기 너머에서 1초의 침묵.
"...관리요?"
"학원 내부 기록 기준으로, 학부모 리포트에 들어가는 점수. 실제 성적이랑 별도로. 알지?"
유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었다. 차도윤은 노트북 화면을 닫고 창밖을 봤다. 7층에서 내려다보는 대치동 학원가. 학생들이 개미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학원과 학원 사이, 편의점과 편의점 사이를 오가는 점들. 저 점들 하나하나가 입결이고, 등록금이고, 유튜브 콘텐츠의 소재였다.
'교육자인가, 사업가인가.'
그 질문이 올라왔다가 가라앉았다. 질문에 답하면 무너질 것 같아서, 차도윤은 대신 유튜브 스튜디오를 열었다. 다음 영상 기획안. "9모 대비 국어 실전 전략."
일이 있으면 질문을 안 해도 됐다.
같은 시각. 6층 조교실.
유진은 전화를 끊고 모니터를 봤다. 엑셀 파일이 열려 있었다. S반 성적 관리 데이터.
'표준점수 관리.'
이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유진은 알고 있었다. 3화에서 서율의 87점을 93점으로 바꿨을 때 — 그건 내부 평가 점수였지만 — 그것이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시작은 유진이 오기 전부터였고, 유진은 그 관행 위에 올라탄 것뿐이었다.
'9모까지.' 9월 모의고사. 아직 두 달 남았다. 두 달 동안 학부모에게 보여주는 내부 리포트의 숫자를 '조정'해야 한다. 실제 모의고사 성적표는 평가원에서 발행하니 조작이 불가능하다. 9월 모의고사는 평가원 주관이라 성적표가 공식으로 나온다. 하지만 학원 내부의 주간 테스트, 월간 평가, 성적 분석 리포트 — 이건 학원이 만드는 것이고, 학원이 만드는 것은 학원이 바꿀 수 있었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 사설 학원의 내부 평가는 공식 기록이 아니니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학부모는 이 숫자를 보고 등록금을 내고, 이 숫자를 보고 자녀의 진로를 결정한다. 숫자가 가짜라면, 그 결정도 가짜 위에 세워진 것이었다.
유진은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아직 아무것도 바꾸지 않았다. 9모는 두 달 뒤였다. 하지만 '관리'는 지금부터 시작해야 했다. 주간 테스트 점수부터 조금씩 올려놓아야 9모 이후의 숫자가 자연스럽게 보이니까. 한 번에 20점을 올리면 눈에 띄지만, 매주 3~4점씩 올리면 '성장'처럼 보인다. 조작의 기술은 자연스러움에 있었다.
'이런 걸 알고 있는 내가 싫다.'
대신 책상 구석의 임용고시 교재를 봤다. "2025 교육학 기출분석." 책등이 여전히 깨끗했다. 교재 위에 차도윤이 보낸 수정 점수 메모가 놓여 있었다. 교재가 서류 밑으로 묻혀가고 있었다.
카카오톡 알림이 울렸다.
[반수반 김도현: 유진쌤 영어 독해 12번 해설 부탁드려요 ㅠ]
유진은 임용 교재에서 손을 떼고 답변을 타이핑하기 시작했다. 학생에게 풀이를 설명하는 시간만이, 유진이 '선생님'이라고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