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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자습

9화 균열

화요일, 점심시간.

시우는 식당을 건너뛰고 상담실로 향했다. 11시 55분, 도현이 "편하게 오라"고 했던 시간이었다.

문을 열었다. 도현은 이미 소파에 앉아 있었다, 커피 두 잔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시우 군, 와."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등받이에 반쯤만 기댔다, 허벅지 위에 손을 올렸다, 손끝이 서늘했다.

"커피 마셔."

"...저 안 마셔요."

"그래."

도현이 자기 컵을 들고 한 모금 마셨다. 마시는 동안 눈은 시우의 얼굴 뒤쪽을 보는 것 같았다. 시우가 이 시선을 아버지에게서도 느낀 적이 있었다.

"이번 주 성적 진심으로 축하해. 410점, 처음이지?"

"네."

"시우 군, 지원할 학교 목표 있어?"

"...아직 안 정했어요."

"아버님이 뭐라고 하셔."

시우의 눈이 한 번 움직였다, 아주 짧게. 도현이 아버지 이야기를 꺼낸 것이 오늘이 처음이었다. 410점 뒤에, 출석 패턴을 의심하는 시점에 아버지 이야기를 꺼낸 것은 공통 질문이 아니었다.

"...저희 아버지는 의대 쪽이에요."

"의대, 410점이면 지방 의대는 가능한 점수지."

도현의 톤이 한 단계 내려갔다.

"나는 상담사 10년 하면서 비슷한 케이스를 많이 봤어. 한 번에 10점 이상 올리는 학생, 두 가지 중 하나야. 하나는 공부 방법이 바뀐 경우, 다른 하나는 그동안의 점수가 실력이 아니었던 경우."

도현이 말을 멈췄다.

"시우 군, 그동안의 점수가 실력이었어?"

"...네."

"이전 모의고사들 답안 용지 보면 풀이 흔적이 이상한 데가 있거든. 답을 썼다가 지운 흔적, 지우고 다른 답을 쓴. 그런데 지워진 자국 밑에 남아 있는 답이 대부분 정답이야."

시우의 심장이 한 번 튀었다. 얼굴에는 안 나왔을 것이다.

"...우연이죠."

"우연이 한두 번이 아니야. 10회분 답안지 중 7회분에서 같은 패턴이 나와."

시우가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시우 군이 실력을 숨기고 있었다고 생각해. 이유가 뭐였는지는 모르겠어, 근데 이번에 갑자기 실력을 다 쓴 건 이유가 있었을 거 아니야. 그 이유를 말해줘."

시우가 손가락을 쥐었다, 무릎 위에서 보이지 않게.

"...어머니 전화요."

시우가 말했다.

"어머니?"

"어머니가 전화하셨어요. 수능이 코앞이니 공부 똑바로 하라고, 이번에는 진짜 다 쏟아보라고. 그래서 이번에 다 쓴 거예요."

시우의 입에서 즉석으로 지어낸 거짓말이었다. 시우의 어머니는 시우가 세 살 때 돌아가셨다, 학원 서류에도 적혀 있었다. 도현은 그걸 알고 있었다. 시우가 그걸 알면서도 '어머니 전화'를 꺼낸 것은 도현에게 '이 거짓말이 거짓말이라는 걸 너도 알지'라는 신호였다, 더 이상 대답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도현이 잠깐 말이 없었다. 컵을 들었다, 한 모금 마셨다.

"...그래, 알겠어."

도현이 말했다, 웃음을 되찾았다.

"시우 군,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자, 내가 더 질문하면 시우 군도 불편할 테니까."

"..."

"대신 한 가지만 더 물을게."

"...네."

"서이안 학생이랑 정말 모르는 사이야?"

시우가 도현을 봤다, 도현이 시우를 봤다. 두 사람이 서로를 보는 3초였다.

"...자습실에서 본 적은 있어요."

"본 적만?"

"대화는 거의 안 해요."

"거의 안 해? 아예 안 해 아니면 한두 번?"

"...한두 번 정도는 했을지도요, 기억 안 나요."

"언제?"

"...모르겠어요."

"그래."

도현이 서류철을 열었다. 열어서 한 페이지를 보여주지 않았다, 열고 닫았다. 보여주지 않는 것이 더 강한 신호였다.

"시우 군, 가봐, 점심 먹어야지."

"...네."

시우가 일어섰다, 문 쪽으로 걸어갔다. 문 손잡이에 손을 댔을 때 도현이 뒤에서 말했다.

"시우 군."

돌아봤다.

"이번 주에 410점을 유지해. 다음 주 모의고사도 400점대 초반, 그게 실력이라는 걸 증명해줘. 실력이면 유지될 테니까, 그러면 나도 더 이상 의심 안 해."

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문을 열고 나왔다.

복도에 나오자 공기가 달랐다. 상담실 안의 공기는 얇았고 무거웠고 냄새가 없었다, 복도의 공기는 점심 식당에서 흘러오는 냄새가 섞여 있었다. 평범했다.

시우가 벽에 등을 한 번 기댔다, 등이 축축했다. 땀이 등을 타고 내려와 있었다, 양손을 주머니에서 꺼내 봤다. 손바닥도 축축했다.

'도현이 나를 노리고 있어, 이전 답안지까지 확인했어.'

'다음 주 400점대 초반을 요구해, 실력을 증명하라고.'

'실력을 유지하면 이안의 점수보다 더 벌어져, 이안이 더 초라해져.'

'유지 안 하면 성적 조작이 드러나고 이안과의 연결까지 파헤칠 근거가 생겨.'

양쪽 다 막혀 있었다, 도현은 시우를 코너로 몰고 있었다. 이안을 지키려고 성적을 올린 것이 이안을 위협하는 근거가 되어 돌아오고 있었다.

시우가 식당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도중에 1층 로비를 지나갔다, 로비를 지날 때 이안과 눈이 마주쳤다. 이안이 하린과 함께 식당에서 나오는 길이었다, 시우가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이안도 시우를 보지 않은 척 하린과 이야기하며 지나갔다.

두 사람의 팔이 스칠 거리에서 시우가 이안의 외투 주머니에 쪽지를 하나 더 집어넣었다.

이안이 멈추지 않았다, 그대로 걸어갔다. 하린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방에 돌아와 이안이 쪽지를 펼쳤다.

'도현 나 불렀음. 이전 답안지 10회분 체크함. 정답 지운 자국 의심. 어머니 핑계로 1차 방어. 다음 주부터 400점대 유지하라고 요구. 위험 상승. 오늘 7교시 쉬는 시간 구 실습실. 1분.'

이안이 두 번 읽고 세 번째 읽었다. 쪽지를 찢어서 변기에 흘려보냈다.

손이 흔들리고 있었다. 어제는 감정의 떨림이었다, 오늘은 계산의 떨림이었다.

'시우의 성적 조작이 확인되면 그다음은 원인을 묻는 거야. 그 대답에 내 이름이 들어가면 끝이야. 시우는 "어머니 전화"라고 거짓말했어, 도현은 시우 어머니가 안 계신 거 알아. 다음번엔 그 거짓말부터 파고들 거야.'

'시간이 없어.'


7교시 쉬는 시간.

이안이 3층 구 실습실 쪽으로 걸었다. 복도에 학생들이 몇 명, 대부분 자기 교실에서 나와 화장실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실습실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안쪽에서 형광등 불빛이 새어 나왔다.

이안이 문을 밀고 들어갔다, 닫았다.

시우가 창가에 서 있었다, 이안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몸을 돌렸다.

"1분만."

시우가 말했다.

"...응."

"도현이 다음 주 400점대 유지 요구해. 조작 의심 거의 확정, 네 부탁은 그거랑 반대야. 네가 정해."

시우가 짧게 말했다. 단어 수를 줄인 문장, 1분 안에 말하려고.

이안이 숨을 들이쉬었다.

"...내리면?"

"도현이 증거 잡았다고 판단, 아버지한테 연락할 수도 있어."

"유지하면?"

"네 점수랑 격차 고정, 네가 오늘 아침 말한 거랑 반대 방향."

"..."

이안의 머리가 빠르게 돌았다, 두 선택 다 위험했다. 시우가 이 선택을 혼자 못 하고 이안한테 가져온 의미였다, 시우가 이안을 '보호 대상'에서 '공동 결정자'로 이동시키고 있었다. 어제 저녁 쪽지의 흐름이 여기로 이어진 것이었다.

"...유지해."

이안이 말했다.

시우의 눈이 한 번 움직였다.

"네 부탁은?"

"바꿨어, 오늘 오후에."

"..."

"내가 오늘 아침에 '네 점수 네가 써'라고 한 건, 내가 너한테 기대지 않겠다는 뜻이었어. 내 성적은 내가 올려야 된다, 그 생각 아직 맞아. 근데... 지금 네가 점수 내리면 퇴원이야, 네 거부터."

시우가 이안을 봤다, 이안이 이어서 말했다.

"네가 퇴원당하면 나는 기숙학원에 남아도 의미 없어. 그러니까... 네 점수는 유지해. 네 인생은 네가 지켜, 내 점수는 내가 올릴 거야. 내가 네 아래에 머물든 옆에 오든 그건 내 몫이야."

"..."

"네 점수 네가 써, 근데 이번엔 400점대 유지. 그게 네가 선택해야 하는 거야."

이안이 말했다. 목소리가 낮고 단단했다, 평소의 통제된 이안이었다. 하지만 이안이 내놓는 결론은 통제된 이안이 낼 수 없는 결론이었다. '네가 네 인생을 지켜'와 '내 점수는 내가 올린다'가 같이 나오는 문장이었다.

시우가 숨을 한 번 내쉬었다, 웃음인지 한숨인지 모를 소리였다.

"너 지금 좀 변했다."

"...알아."

"1주일 전이랑 다른 사람 같아."

"...나도 알아."

수업 종이 울릴 준비하는 예비 종이 울렸다, 1분 남았다는 신호였다.

"하나만 더."

시우가 말했다.

"응."

"오늘 밤 짝수 날, 네 차례. 네가 자습실 가면 나 안 갈게, 진짜로. 이번엔 지킬게."

"...응."

"근데."

시우가 한 박자 뒤에 말했다.

"가기 전에 네 필통에 뭐 하나 넣어놨어. 쪽지는 아니야, 오늘 밤 책상에서 확인해."

"...뭔데."

"가."

시우가 턱을 문 쪽으로 가리켰다. 이안이 돌아섰다, 문 손잡이를 잡았을 때 한 번 더 돌아봤다.

시우가 창가에 서 있었다. 창문 밖 오후의 빛이 등 뒤에 걸려 있었다, 얼굴은 어둡게 보였다, 표정이 잘 안 보였다.

이안이 문을 열고 나왔다, 복도를 걸었다. 10미터쯤 걷고 나니까 다리가 조금 풀렸다, 방금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뒤늦게 울렸다.

'네 인생은 네가 지켜, 내 점수는 내가 올릴 거야.'

1주일 전의 이안이 들으면 몰랐을 말이었다. 성적이 이안의 전부였던 이안이 성적이 더 이상 전부가 아니라 지켜야 하는 여러 것 중 하나라고 말하고 있었다. 내 성적도 지키고 시우도 지키고, 둘 다 지키기 위해 어떻게 살아남을지를 계산하고 있었다.

교실 문 앞에서 멈췄다. 들어가기 전에 호흡을 골랐다,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다음 수업이 시작됐다.


시우 시점, 7교시 후.

수업이 끝난 뒤 시우는 교실에 남았다. 빈 칠판이었다. 머릿속에서 한 가지가 정리됐다, 이안이 결정을 시우 쪽에 돌려놓았다는 것. 다만 방향은 명확했다, 유지.

400점대를 유지하려면 오늘 밤부터 시우가 자기 답안지에 정답을 적고 안 지워야 했다. 평생 해본 적이 없는 행동이었다.

가방에서 모의고사 5회분 세트를 꺼냈다. 1년 동안 매번 첫 두 문제만 풀고 덮어둔 묶음, 표지에 먼지가 얇게 앉아 있었다.

펜을 들었다. 1번, 답을 적었다, 안 지웠다. 2번, 3번, 4번. 답을 적고 다음 문제로 넘어가는 단순한 동작에 시우가 익숙해지는 데 5분이 걸렸다.

15번까지 풀었다. 답란이 비어 있지 않은 종이를 보고 있었다. 빈 답란이 없는 답안지는 시우에게 낯선 것이었다.

'네 점수 네가 써.'

이안이 한 그 말의 뜻을 시우는 자기 안쪽에서 번역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네가 결정해'였다, 지금은 '네 점수를 지우지 마'로 들렸다.

지우는 손이 자기 인생을 깎는 손이었다는 걸 시우는 이제야 알아챘다.


밤 1시, 야간자습실 지하 1층.

시우가 31번 자리에 앉아 있었다. 평소의 자리, 형광등 지이이, 난방 파이프 틱, 입구에서 감독관의 의자 삐걱.

12번 자리는 비어 있었다.

1시 정각, 감독관이 나갔다, 15분이 시작됐다.

시우는 움직이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기지개도 켜지 않았다, 창문을 열지도 않았다. 그냥 문제집 위에 펜을 놓고 12번 자리를 보고 있었다.

빈 자리, 의자가 책상 안쪽으로 밀어 넣어져 있었다. 이안이 이 자리에 앉았을 때 어깨 높이가 기억났다. 묶은 머리 아래의 목덜미, 연필을 쥐던 왼손.

없었다, 오늘 밤엔.

'이안이 약속을 지켰어. 격일제 화요일은 이안 차례인데, 자기가 안 왔어.'

'내가 안 가겠다고 한 거 아니야. 자기가 자기를 지키고 있어.'

시우가 짧게 숨을 내쉬었다. 12번 자리가 비어 있는 것이 이상하게 빈 만큼 이상하게 울렸다.

펜을 들어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수학 문제, 답이 바로 보였다, 3번. 지우지 않고 3번을 적었다. 다음 문제, 2번, 적었다. 다음, 5번, 적었다.

시우가 오늘 밤 처음으로 이안이 없는 자습실에서 정답을 지우지 않고 문제를 풀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오늘 오후 실습실에서 이안이 말했기 때문에.

'네 인생은 네가 지켜.'

지키려면 점수를 올려야 했다, 올리려면 답을 지우면 안 됐다. 시우가 자기 인생을 지키기 위해 점수를 쓰는 것은 청람관에 온 이후 처음이었다.

14분이 지났다, 감독관의 발소리가 복도 끝에서 들렸다.

15분이 끝났다.

시우가 계속 문제를 풀었다. 1시 16분, 1시 17분. 감독관이 자리에 돌아와 앉아 있었다, 31번 자리에서 연필 소리만 들렸다.

12번 자리는 계속 비어 있었다.


도현 시점, 같은 밤.

도현이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다. 책상 위에는 커피, 오른쪽에는 한시우와 서이안의 기록부가 쌓여 있었다.

모니터에는 CCTV 관리 프로그램, 지난주 화요일 새벽 시간대. 카메라 17번, 3층 자판기 앞.

영상이 재생됐다.

1시 9분. 서이안이 왼쪽 프레임 밖에서 걸어 들어옴. 1시 11분, 자판기 앞에서 동전을 넣음. 1시 12분, 오른쪽 프레임에서 한시우 등장. 1시 13분, 두 사람이 자판기 앞에서 마주 섬.

도현이 재생 속도를 0.5배속으로 늦췄다.

1시 14분에서 17분 사이,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임. 서이안이 캔커피를 받음, 시우가 뽑아줬음. 1시 17분, 시우가 자판기 왼쪽으로 몸을 움직임, 서이안이 따라 움직임. 1시 18분, 두 사람이 자판기와 벽 사이 좁은 공간으로 이동. 사각지대.

자판기 오른쪽 모서리에 서이안의 어깨가 살짝 보였다, 그 이상은 잡히지 않았다.

1시 21분, 서이안이 자판기 옆에서 나옴. 1시 22분, 시우도 나옴. 각자 반대쪽으로 걸어감.

도현이 노트를 꺼냈다, 볼펜으로 적었다.

'10/28 화요일 1시 18분에서 21분 사이, 3층 자판기, 한시우 + 서이안, 단독 조우, 2분 45초 사각지대.'

'자판기 사각지대 활용, 의도적.'

이 영상만으로는 증거가 부족했다. 카메라에 잡힌 부분만 보면 새벽에 자판기 앞에서 우연히 만난 두 학생이 잠깐 이야기하고 각자 돌아간 장면이었다. 교칙 위반이라고 규정하기에는 판정이 애매했다.

다른 탭을 열었다, 청람관 내부 네트워크 모니터링 콘솔이었다.

화면에 막대 그래프가 한 줄 떠 있었다. 이번 주 청람관 IP에서 오르비 도메인으로 향한 누적 접속 시간, 화요일과 목요일에 짧은 막대가 두 개. 한석원 갤러리도 같은 날 한 줄.

도현이 막대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누구의 접속인지는 콘솔이 알려주지 않았다. 청람관 와이파이를 쓰는 학생 모두가 한 IP 풀 안에 있었다, 닉네임도 글 제목도 콘솔에 잡히지 않았다. 그저 시간과 도메인뿐이었다.

'이 그래프 하나로 작성자를 시우라고 단정할 수 없어. 화요일과 목요일 막대가 본관 회수 시간대와 겹치고, 자판기 옆 사각이 같은 날 잡힌 적 있긴 해. 패턴은 한 줄로 그어지지만 그게 한 사람이라고 확정짓는 근거는 못 돼.'

도현이 노트에 한 줄 더 적었다.

'콘솔 트래픽: 작성자 특정 보류. 행동 증거 기반으로만 추적.'

다른 증거들이 있었다. 야간자습 출석 기록은 10월 중순부터 100퍼센트 일치. 이번 주 410점. 이전 답안지 정답 지운 자국. 그리고 이 자판기 영상. 네 가지를 묶으면 한시우와 서이안이 야간자습 시간을 이용해 사적으로 접촉하고 있다는 정황이 만들어진다.

아직 확증은 아니었다, 학원장에게 보고하려면 한 장면이 더 필요했다. 사각지대 없는, 카메라에 명확히 잡히는 장면.

도현이 카메라 설정을 열었다, 자판기 왼쪽 30센티 공간의 각도를 살짝 틀었다. 새 각도에서는 절반쯤 보이게 됐다.

다음에 같은 장면이 반복되면 절반은 찍힌다.

도현이 설정을 저장했다. 노트에 적었다.

'대응: 자판기 카메라 각도 조정 완료, 일주일 내 추가 영상 확보 예상.'

노트를 덮었다, 서랍에 넣었다. 커피는 이미 식어 있었다.

'시우 군이 오늘 점심 상담에서 말한 거짓말, 어머니 전화. 시우 어머니가 안 계신 건 내가 알고 있어. 그 거짓말은 나한테 "거짓말 하고 있다"고 신호 보낸 거야.'

'한 달 전까지는 지킬 것이 없는 학생이었는데 지킬 게 생긴 거야. 그게 서이안이면, 이건 학원 시스템이 감당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야.'

도현은 학원의 상담사였다. 학생의 편이 아니라 학원 시스템의 대리인이었다. 시우의 성적 조작이 드러나면 학원의 관리 부실이 드러난다, 반년 가까이 몰랐다는 의미. 이게 지금까지 미뤄온 이유였다. 이제 410점을 낸 이상 움직이지 않으면 나중에 답할 게 없었다.

'내일 오전, 학원장 출근 직후 10시, 보고한다.'

도현이 결심했다.

휴대전화를 들었다, 학원 등록 정보에서 가져온 학부모 연락처가 저장돼 있었다. 시우의 신상이 변호사 아들이라는 사실은 콘솔이 알려준 게 아니라 입소 시 등록 정보에 적혀 있었다.

'한정수 변호사.'

번호를 한 번 더 봤다, 누르지 않았다. 내일 오전 학원장 보고 직후에 누를 번호였다.


이안 시점, 같은 밤 11시, 이안의 방.

이안이 야간자습 신청을 하지 않았다. 격일제 화요일을 지키기로 했는데, 지키지 않는 건 이안 쪽이 됐다. 오늘 오후 실습실에서 "네 점수 네가 써, 400점대 유지"라고 결정을 던지고 나서 이안은 야자에 내려가는 대신 방에서 집중하는 쪽으로 자신의 공부를 다시 잡기 시작했다.

책상 위에 수학 기출 10문제 중 7문제. 두 시간 반에 7문제, 속도는 느리지만 정답률은 5문제였다. 3주 전부터 4문제 이하로 떨어졌던 정답률이 돌아왔다.

필통을 열었다. 사탕이 그 자리에 있었다, 노란 포장지였다. 한 개를 꺼내 포장을 뜯었다, 입에 넣었다. 레몬맛, 평범한 단맛.

이 사탕이 오늘 밤 이안이 유일하게 받는 시우의 흔적이었다. 자판기도 없고 옥상도 없고, 사탕 하나뿐이었다.

하린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샤워하고 돌아오는 길.

"언니 야자 안 가?"

"오늘 안 가."

하린이 이안을 봤다.

"언니 오늘 얼굴 좀 괜찮네, 어제보다."

하린이 자기 침대에 앉아 드라이기를 켰다. 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더 이상 대화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였다.

이안이 문제집으로 돌아갔다. 8번 문제, 적분 응용. 집중해서 읽으니까 문제가 눈에 들어왔다. 펜이 움직였다.


수요일 오전 9시 50분, 학원장실.

도현이 서류를 펼쳤다. 성적 자료, 답안지 샘플 4장, 야간자습 출석 기록, CCTV 사각지대 영상 요약.

"한시우 학생의 성적 조작과 서이안 학생과의 사적 접촉 정황이 있습니다. 정식 조사가 필요합니다."

학원장이 답안지 사본을 오래 봤다.

"...한시우 아버지가 한정수 변호사 맞죠."

"네."

"아버지 쪽에 먼저 연락해 봅시다. 사적 접촉은 확증 잡을 때까지 일단 보류."

"네, 서이안 쪽은요."

"어머니 한 번 더 부릅시다, 이번 주 안에. 한시우 쪽 면담 이후로 잡고."

도현이 학원장실을 나왔다. 2층 복도 창문으로 11월 초의 햇살이 들어왔다.

도현의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 표시는 한정수였다. 한시우의 아버지 쪽에서 먼저 전화가 왔다.

"네, 안녕하세요. 청람관 상담사 김도현입니다."

상대방의 첫 문장이 이어졌다. 도현의 입매가 살짝 올라갔다, 준비한 각본대로 흐르고 있었다.


수요일 점심시간.

이안이 식판을 받아 자리로 오는데 복도 안내 방송이 울렸다.

'서이안 학생, 상담실로 와주세요.'

이안의 손에서 식판이 한 번 흔들렸다. 하린이 이안을 봤다.

"가봐."

이안이 복도로 나왔다. 1층 로비를 지날 때 맞은편에서 시우가 걸어오고 있었다.

말을 안 했다, 주변에 학생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스쳤다. 스치는 순간 시우의 입 모양이 움직였다,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도현이 우리 아버지한테 전화함.'

이안의 발이 잠깐 멈칫했다, 시우가 이미 지나간 뒤였다. 다시 걸었다, 상담실 쪽으로.

'한정수, 시우가 말했었지. 변호사, 형은 서울대 경영. 시우의 아버지가 온다.'

이안이 계단을 올라가며 손을 꽉 쥐었다. 상담실 문 앞에 도착했을 때 이안의 얼굴은 이미 평소의 이안이었다, 머리는 높이 묶여 있었고 표정은 단정했다.

노크했다, "들어와." 들어갔다.

"이안아, 앉아."

도현의 눈이 웃고 있었다, 이번엔 눈도 웃고 있었다.

"이번 주 내가 부른 건 성적 때문은 아니야. 어머님이 학원에 오고 싶다고 하셔서."

이안의 숨이 한 번 멎었다.

"...언제요."

"이번 주 금요일, 오후 2시. 네가 요즘 전화를 안 받는다고, 직접 오시겠다고 하셨어."

이안이 대답하지 못했다. 무릎 위의 손을 쥐었는데 쥔 손이 더 흔들렸다.

"이안아, 내가 왜 미리 알려주는 줄 알아? 어머님이 오시기 전에 마음 준비하라고. 정리해야 할 게 있으면 정리해."

부드러움 아래에서 한 가지 문장이 또렷하게 들렸다.

'정리해.'

"...네. 감사합니다."

이안이 일어났다, 문 손잡이에 손을 댔다.

"이안아, 참, 한 가지만 더."

이안이 돌아봤다.

"한시우 학생 알지?"

이안의 손이 문 손잡이에서 미끄러졌다.

"...자습실에서 본 적 있어요."

"그래, 그 학생 아버님도 이번 주에 오시기로 했어. 수요일 오후, 내일이구나, 벌써."

이안이 간신히 문을 열고 나왔다. 복도에서 벽에 손을 댔다, 벽이 차가웠다.

'시우 아버지가 내일 온다. 내 엄마는 금요일에 온다. 도현이 우리 둘을 같은 주 안에 부모한테 넘기려고 해.'

'시우한테 말해야 돼. 오늘 안에.'


밤 1시 18분, 비상계단.

이안이 4층과 5층 사이 계단참에 섰다. 비상등 녹색 불빛, 거의 다니지 않는 통로였다.

오후에 복도에서 한 번 더 쪽지를 주고받았다. '비상계단 4와 5 사이, 1시 20분, 10분.'

1시 20분, 시우가 올라왔다.

"10분."

"정리하자."

이안이 말했다.

"내일 네 아버지, 도현이 무슨 명목으로 부른 거야?"

"성적 조작 의심, 학부모 보고."

"...그럼 아버지한테 다 알려지는 거야?"

"응."

"아버지가 화를 낼 것 같아?"

"...아니. 실망해, 그게 더 무서워."

이안이 시우를 봤다. 시우의 눈이 계단 아래쪽을 보고 있었다.

"아버지 오시면 너 뭐 할 거야?"

"...모르겠어. 아버지가 '퇴원해라'라고 하면 할 거고 '남아라'라고 하면 남을 거고."

"그게 네 선택이 아니잖아."

"...알아."

"시우야, 어제 내가 말했잖아. 네 인생은 네가 지키라고. 내일 네 아버지 앞에서 네가 말해, 원래 네가 하고 싶었던 건 뭔지."

"...그거 말하면 아버지가 다 흔들어."

"흔들리지 마."

"...쉽게 말하지 마."

시우의 톤이 조금 날카로워졌다, 이안이 한 박자 멈췄다.

"...미안, 쉽게 말한 거 아니야. 나도 금요일에 엄마를 마주해, 나도 무서워. 근데 나 도망 안 갈 거야, 만나서 엄마한테 내가 할 말 하려고."

"뭘 말하는데."

"...아직 모르겠어, 근데 뭔가 말해야 된다는 건 알아."

녹색 비상등 아래 두 사람의 얼굴이 비슷한 색이었다.

"이안."

"응."

"너 변했어."

"...알아."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나도 몰라."

이안이 말했다, 시우가 한 번 짧게 웃었다. 자조가 아니었다, 어이없음과 경탄이 섞인 웃음이었다.

계단 아래에서 먼 발소리가 들렸다. 감독관의 소리는 아니었다, 기숙사동 쪽에서 누군가 화장실을 다녀오는 발소리였다. 두 사람이 동시에 몸을 계단참 벽 쪽으로 당겼다, 발소리가 4층 복도로 사라졌다.

"...가야 돼."

시우가 속삭였다.

"응."

"내일 아버지 만나면 뭐든 결과를 쪽지로 보낼게."

"응."

"이안."

"응."

"사탕 먹었어?"

"...응, 하나."

"...남은 거 먹지 마, 아껴 먹어."

"왜."

"필요할 때 먹어."

이안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우가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 층을 내려간 뒤 뒤를 한 번 돌아봤다, 이안이 계단참에 아직 서 있었다. 시우가 한 번 더 끄덕였다, 더 내려갔다.

이안이 30초 기다렸다가 반대편 계단으로 내려왔다.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하린은 자고 있었다, 이번에는 진짜 자고 있는 것 같았다.

책상 앞에 앉았다, 필통을 열었다. 사탕이 네 개 남아 있었다.

'필요할 때 먹어.'

이안이 필통을 닫았다. 형광등을 껐다, 창문이 어두워졌다.

'내일 시우 아버지가 온다, 금요일에 엄마가 온다. 도현이 두 부모 앞에 우리를 데려다 놓는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데도 이안은 자판기 앞의 시우의 손, 실습실의 아침 햇살, 계단참의 녹색 비상등, 필통 안의 사탕 네 개를 생각하고 있었다.

'이게 중독이구나.'

이안은 멈출 수 없었다, 이미 멈출 수 있는 자리를 지나왔다. 앞으로 나가는 것밖에 선택지가 없었다.

침대에 누웠다,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도 눈을 감았다.

내일 밤 시우는 아마 옥상 문 앞에 서 있을 것 같았다, 잠긴 문 앞에서. 이안은 거기에 갈 것이다.

그 사실을 알면서 눈을 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