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
이안은 거울 앞에서 머리를 묶고 있었다. 평소처럼 높이, 뒤통수의 가장 높은 지점에 손가락을 대고 빗을 세워서 올린 다음 고무줄을 두 번 감는 것. 몸이 외우고 있는 동작이었다, 생각하지 않아도 됐다.
오늘은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게 필요했다.
뒤에서 하린이 일어나는 기척이 났다. 이불이 움직이는 소리, 하품, 책상 옆 물병을 드는 소리. 이안은 거울에서 하린의 뒷모습을 봤다. 하린이 머리를 벅벅 긁으며 잠을 깨고 있었다, 평소와 같은 아침이었다.
어젯밤의 대화가 없었던 것처럼.
"언니."
하린이 물병에서 물을 마시고 말했다, 평범한 톤으로.
"응."
"오늘 수업 끝나고 나 매점 갈 건데, 언니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없어."
"초코바라도 사줄까?"
"...아니, 됐어."
"그래."
하린이 더 묻지 않았다. 양치 도구를 챙겨 화장실로 갔다, 이안은 거울 앞에 계속 서 있었다. 묶은 머리를 다시 손으로 쓸어내렸다.
하린의 태도는 어제 나눈 대화 이전으로 돌아가 있었다. 평범한 룸메이트, 평범한 아침, 언니, 뭐 먹고 싶어, 응 없어, 그래.
그 평범함이 어젯밤의 말을 무효화하는 게 아니라는 걸 이안은 알았다. 하린은 지키는 사람이었다, 말을 기억하고 말한 사람의 곤란함을 만들지 않는 사람이었다. 어젯밤의 "지금 무슨 일 있어"라는 질문은 하린의 방에서 끝났다, 밖에 가지고 나오지 않는다. 그게 하린의 방식이었다.
그런데 하린이 시우의 존재를 알고 있다, 아직 이름은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남자', '3층에서 만나는 사람'까지는 유추했을 것이다. 그 지식이 하린의 머릿속에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머리카락 한 가닥이 잘못 묶여 있었다, 풀어서 다시 묶었다.
월요일 아침 8시, 성적 게시.
로비에 들어서자 익숙한 공기가 밀려왔다. 학생들이 게시판 앞에 모여 있었다, 웅성거림. 하지만 이번 주의 웅성거림은 평소와 달랐다. 뭔가, 소리의 결이 달랐다, 숨죽이는 듯한 웅성거림이었다.
게시판 쪽으로 걸어갔다, 사람들 사이로 모니터가 보였다.
'1위 / 한시우 / 410점 / ▲12점'
이안의 숨이 한 번 멎었다.
한시우, 1위, 410점.
시선을 아래로 옮겼다. 2, 3, 4위를 건너뛰었다, 내려가고 내려가고.
'12위 / 서이안 / 380점 / ▼8점'
12위, 380점. 이안의 이름 옆에 [관리 대상]이 그대로 붙어 있었고, 거기에 하나가 더 붙어 있었다.
[특실 박탈 경고, 15위 진입 시 4인실 이동]
손이 아직 움직이지 않았다, 숨도 쉬지 않았다. 게시판의 모니터는 푸른 빛이었다. 1위의 '한시우'와 12위의 '서이안'이 같은 모니터 안에 있었다, 격차가 30점이었다.
"한시우가 1위?"
"아니, 이건 진짜 무슨 일이지."
"서이안 12등까지 내려갔어."
"기숙 1등이 한 달 만에 12등이야."
"한시우는 원래 2등이었는데 1등 온 거고."
"아니, 한시우 이번에 점수 410이야. 410은 처음 아니야?"
"그 친구 일부러 안 하던 거 아니야? 이번에 풀로 푼 건가."
"왜 갑자기."
수군거림이 흐르는 강물 같았다. 이안의 귀 안으로 흘러 들어와서 머릿속에 고였다. 다 맞는 말이었다, 다 사실이었다, 부정할 것이 하나도 없었다.
'시우가 1위를 했어, 일부러 안 망친 거야. 처음으로.'
410점, 이안의 최고 기록이 408점이었다. 이안이 할 수 있었던 것보다 시우는 할 수 있었다, 더. 알고는 있었다, 옥상 비상계단에서 시우가 접힌 시험지를 보여줬을 때 알았다. 시우의 실제 실력이 2등이 아니라는 것, 마음만 먹으면 1등이라는 것.
마음을 먹은 것이다. 마음을 먹은 이유가 뭘까.
'이안이 떨어지는 걸 보기 싫어서.'
그 문장이 머릿속에 떠올랐는데, 이안이 만든 문장이 아니라 이안이 예감한 문장이었다. 아직 시우에게 들은 건 없었다. 새벽에는 자판기 앞에서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시우는 성적에 대해 한마디도 안 했다, 오늘 아침 게시를 앞두고 있었는데도.
이제 게시가 됐고 숫자가 이유를 말하고 있었다.
"...야, 서이안 왔다."
누군가가 속삭였다, 이안을 본 것이다. 웅성거림이 잠깐 옅어졌다, 시선이 이쪽으로 돌아왔다.
이안은 게시판에서 시선을 돌려 돌아섰다,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평소의 얼굴이었다. 로비를 가로질러 걸었다, 뒷덜미 끝까지 학생들의 시선이 따라왔다.
1층 복도 끝, 자판기 앞이 아니라 교실 방향의 복도였다. 그 복도 중간쯤에 시우가 있었다.
평소 아침 등교 시간에 보이지 않던 사람이었다. 시우는 아침 게시를 절대 보러 오지 않았다. 자기 성적을 로비의 모니터에서 확인하는 것을 무의미한 의식이라고 생각한다고 한 번 말한 적이 있었다.
오늘은 나와 있었다.
이안과 눈이 마주쳤다, 복도 한가운데였다. 다른 학생들도 그 복도를 지나고 있었다. 시우가 이안을 똑바로 봤다, 1초, 2초. 머리카락이 눈을 가리고 있지 않았다, 오늘 아침에 머리를 정돈한 듯했다. 눈이 보였다, 눈빛이 또렷했다.
이안이 숨을 들이쉬었다.
시우가 입을 열지는 않았다. 고개를 아주 작게, 한 번 기울였다. 교실 반대편, 비어 있는 실습실 쪽을 가리키는 각도였다. 이안이 알아들었다.
두 사람은 같은 복도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안이 앞으로, 시우가 뒤따라 같은 방향으로. 교실 수업이 시작되기까지 15분이 남아 있었다.
아침의 '15분', 야간자습실의 '15분'과 달랐다. 이것은 이안과 시우가 처음으로 낮에, 복도에서, 눈이 보이는 채로 만드는 시간이었다.
3층 수학 실습실, 월요일 1교시는 수업이 없는 빈 교실이었다.
이안이 먼저 들어가 뒤쪽 자리에 앉았다. 2분 뒤 시우가 들어왔다, 문을 소리 없이 닫았다. 이안의 자리에서 책상 두 개를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어깨가 아직 창문 쪽을 향해 있었다, 몸을 완전히 돌리지 않는 거리였다. 두 사람은 서로를 보지 않았다, 창문을 봤다. 아침의 풍경, 낮은 건물들 너머로 해가 올라오고 있었다. 멀리 도로 위로 차들이 서울 방향으로 밀려가고 있었다.
"...410점."
이안이 먼저 말했다.
"응."
시우가 짧게 답했다.
"이번 주에 진짜 다 푼 거야."
"...그냥 안 지웠어."
"뭐를."
"답. 원래는 쓰고 지우고 틀린 답 쓰거든. 이번에는 안 지웠어, 지울 필요 없어서."
"왜 지울 필요 없었어."
시우가 대답하지 않았다. 책상 위에 손을 올렸다, 손에 종이가 있었다. 답안지 사본 한 장이었다. 시우가 이안 쪽으로 슬쩍 밀어놓았다.
이안이 답안지를 봤다. 시우의 이번 주 모의고사 수학 영역, 깨끗하게 채워진 답란들이 줄지어 있었다. 객관식 자리에는 검은 마킹이, 22번 단답형 자리에는 자연수 9가, 30번 단답형 자리에는 자연수 7이 정자로 적혀 있었다. 지운 자국이 없었다.
그 옆에 작은 글씨로 시우가 적어둔 메모 한 줄.
'이번엔 9, 7. 지난주는 22번에 9를 적었다가 1로 지웠음.'
그 한 줄이 보여주는 게 뭔지 이안은 바로 알았다. 410점은 시우의 풀이가 갑자기 빛난 게 아니라 평소처럼 지우개를 들지 않은 결과였다.
"내가 1등 하면 패턴이 깨져, 내가 올라가면 선생들 관심이 나한테 와. 너한테 집중하고 있던 게 나한테 올라와. '한시우 왜 갑자기 잘 봤어' 이런 거, 그게 쉽잖아. '서이안 왜 떨어져' 보다는."
시우의 목소리가 건조했다, 설명하는 톤, 계획을 말하는 톤이었다.
"그리고 내가 1등 하면 네가 조금 덜 초라해져."
"..."
"네 위에 내가 있으면 '기숙 1등이 내려오는 중'으로 보여. 네 위에 아무도 없는데 네가 12등이면 '기숙 1등이 무너졌다'로 보여, 둘은 달라."
이안이 창문에서 시선을 떼고 시우를 봤다.
시우는 여전히 창문을 보고 있었다. 옆모습, 어깨 선이 경직돼 있었다. 건조한 톤으로 말하고 있었지만 이건 시우가 연습한 문장들이었다. 머릿속에서 여러 번 돌려본 문장들, 이안을 만나서 말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시우야."
"응."
"바보야."
이안이 말했다, 시우가 천천히 이안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뭐가."
"그렇게 하면 내가 더 초라해지잖아."
이안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3층 실습실은 조용했다. 창밖에서 차 경적이 한 번 울렸다.
"내가 떨어지는 거를 네가 올라와서 커버하는 거잖아. 그게... 내가 너한테 구조받는 거야, 내 성적은 내가 지켜야 하는데. 너한테 지게 해서 지키는 게 아니라."
"..."
"넌 뭐, 날 위해서 1등 했다고 말하면 내가 고마워할 줄 알았어?"
"...고마워하라는 건 아니었어."
"그럼 뭔데."
"..."
"말해."
시우가 한 번 숨을 들이쉬었다.
"그냥... 네가 끝까지 떨어지는 거 보기 싫었어.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었어. 내가 너한테 '그만해'라고 말할 수도 없고 '야간자습 오지 마'라고 할 수도 없고, 매일 15분 말고는 너한테 아무것도 못 해주는데, 숫자는 할 수 있잖아. 내가 올라가면 네가 조금 덜 무너져 보이니까."
창문 쪽의 빛이 시우의 옆얼굴을 비췄다. 아침 햇살, 이 각도에서 시우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자습실의 형광등 아래에서, 옥상의 저녁 공기에서, 자판기의 푸른 불빛에서만 봤던 얼굴이 아침 햇살 안에서는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눈 밑에 어두운 그늘이 있었다, 평소보다 더. 시우도 어젯밤 잠을 제대로 못 잔 얼굴이었다.
"..."
눈물이 났다.
형광등 아래가 아닌, 옥상의 어둠이 아닌, 해가 들어오는 3층 실습실에서. 평일 오전 8시 50분, 수업 시작 5분 전이었다. 이런 시간에 이런 장소에서 눈물을 흘려본 적이 없었다. 청람관에서 이안이 우는 것은 항상 야간자습실 12번 자리에서, 새벽 1시 30분에, 고개를 숙이고, 감춘 채였다.
지금은 고개를 들고 있었다.
"..."
시우가 이안을 봤다, 이안이 울고 있는 것을, 처음으로 낮에. 시우의 입이 벌어졌다가 닫혔다.
"이안."
"바보야."
이안이 같은 말을 한 번 더 했다.
"그렇게 하면 내가 더 초라해지잖아. 네가 올라와서, 내 옆에 네가 있어서, 내가 덜 떨어져 보이는 거면 나는 뭐야. 내 점수가 아니라 너랑 나 사이의 거리로 내가 정의되는 거잖아, 그게 더 싫어."
"..."
"너는 네 점수를 네가 쓰고 나는 내 점수를 내가 써야지. 내가 네 배려의 그림자에서 사는 사람이 되는 거, 싫어."
말하면서 이안은 스스로 놀랐다. 이 문장들이 자신의 안쪽 어디에서 나왔는지 몰랐다. 자습실에서 "그게 올라가는 이유가 되면 안 되잖아"라고 말한 이후로 이안의 안쪽에서 무언가가 계속 단어를 만들고 있었다. 감정이 단어가 되기 시작했다, 이안이 평생 감정에는 단어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감정에도 단어가 있었다, 시우가 듣고 있으면 단어가 나왔다.
시우가 오래 대답하지 않았다. 창가의 빛이 그의 얼굴 위에서 움직였다, 구름이 지나가는 것 같았다.
"...미안해."
시우가 말했다.
"네 생각 안 했어. 내 생각만 했어. 네가 떨어지는 거 내가 보기 싫어서 내가 편해지려고 1등 한 거야. 네가 어떻게 느낄지는... 생각 안 했어."
"..."
"그렇게 생각하면 이건 너를 위한 게 아니야, 나를 위한 거야."
이안이 눈물을 닦았다, 손등으로 한 번, 다시 한 번.
"...맞아."
"미안."
"알아."
조용해졌다. 수업 종이 울렸다, 3층 복도에서 발소리들이 시작됐다. 8시 55분, 5분 뒤 1교시였다.
이안이 일어섰다.
"교실 가야 돼."
"...응."
"시우야."
"응."
"다음 주부터는 네 점수 네가 써."
이안이 말했다. 눈이 아직 젖어 있었지만 눈빛은 건조했다.
"네가 410점이든 370점이든 네가 결정해. 나 때문에 올리지 말고 나 때문에 내리지도 말고."
시우가 대답하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았다. 이안이 실습실을 먼저 나왔다, 시우는 창가에 앉은 채로 있었다.
시우 시점.
이안이 실습실을 나간 뒤 시우는 창가에 3분쯤 더 앉아 있었다. 아침 햇살이 책상 위에 길게 떨어졌다, 10월 말의 빛이었다.
'나 때문에 올리지 말고, 나 때문에 내리지도 말고.'
이안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반복됐다. 시우가 이안 때문에 성적을 올린 것도 사실이었고 내린 것도 사실이었다. 그 두 가지가 같은 동작의 양면이라는 것을 이안이 한 문장으로 드러냈다.
'네 점수 네가 써.'
그 말을 평생 누구에게도 들은 적이 없었다. 아버지는 '네 점수는 아버지의 점수다'라고 했고, 형은 '네가 형만큼 해야 한다는 기준이다'라고 했고, 선생들은 '대학이 보는 지표다'라고 했다.
이안은 '네 점수는 너의 것이다'라고 했다, 처음이었다.
시우는 일어섰다, 가방을 메고 실습실을 나왔다. 복도 끝에서 김도현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상담사 김도현이었다, 손에 서류철 하나를 들고 있었다. 도현이 시우를 본 순간 걸음이 미세하게 느려졌다.
"시우 군, 오늘 점심시간 괜찮아? 잠깐 이야기 좀 하자."
"...무슨 이야기요."
"이번 주 성적. 축하할 일이야, 1위. 410점, 청람관에 온 이후로 처음이잖아. 근데 상담사 입장에서 궁금한 게 있어, 이전 성적이랑 편차가 너무 커. 뭔가 달라진 게 있으면 같이 정리해보면 도움이 될 거야."
"...그냥 컨디션이에요."
"그래?"
"네."
"시우 군, 그동안의 성적 보면 말이야."
도현이 서류철을 열지 않았다, 내용은 이미 외우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
"최근 한 달 5회분 평균이 398점, 이번 주만 410점, 편차가 12점. 공부 방법을 바꿔서 오르는 점수는 보통 3점 단위야, 컨디션으로 오르는 점수도 2~3점. 12점은 다른 의미가 있어."
도현이 한 박자 쉬었다.
"혹시 이전 성적이 조정된 적은 없지?"
"...무슨 말씀이에요."
"일부러 낮춰서 낸 점수."
복도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1교시 종이 울렸다, 복도에 시우와 도현만 남아 있었다.
시우의 표정이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는 것이 노력이었다.
"...그런 거 안 해요."
"그래."
도현이 서류철을 살짝 들어 올렸다.
"시우 군 야간자습 출석 기록 말이야. 매일 같은 시간에 출석하고 같은 시간에 퇴실해, 11시 5분 입실 1시 55분 퇴실. 서이안 학생도 똑같아, 10월 중순부터."
"...자습실이 그 시간밖에 없으니까요."
"그건 맞아. 근데 시간을 맞춰서 같이 오가는 건 시간이 있다는 것과 다른 문제지."
시우가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저 서이안 학생이랑 말 안 해요."
"야간자습실에서 이야기한 적도 없어?"
"네."
도현이 시우를 3초쯤 봤다, 그 3초가 길었다.
"그래, 알겠어."
도현이 웃음을 다시 띄웠다.
"교실 가봐, 1교시 이미 시작됐을 거야."
시우가 돌아섰다, 복도 끝 쪽으로 걸었다.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면 의심을 확인시켜 주는 거였다.
교실 앞에서 숨을 한 번 내쉬었다.
'도현이 안다, 출석 패턴이 완전히 일치한다는 것. 성적 조절도 의심해. 다음번에는 확신을 가지고 올 거야.'
교실 문을 열었다, 자리에 앉았다. 칠판의 두 번째 문제, 답은 3번. 시우는 답지에 3번을 썼다, 지우지 않았다. 이안의 말이 머리에 남아 있었다.
'네 점수 네가 써.'
점심시간, 식당.
이안이 줄을 서서 식판을 받는 동안 하린이 옆에 있었다. 하린은 평소처럼 "돈가스면 좋겠다"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평범한 하린, 어젯밤 방 안의 대화가 없었던 것 같았다.
식당 반대편에 시우가 앉아 있었다. 평소와 다른 자리, 창가 쪽이 아니라 중앙이었다. 누구와도 마주 앉지 않은 혼자 자리, 식판의 밥을 반쯤 먹고 멈춘 상태였다. 시선이 식판에 내리깔려 있었다.
이안이 창가 자리에 앉았다, 하린이 맞은편에 앉았다. 창가 쪽으로 가는 도중에 시우의 시선을 느꼈다. 시우가 고개를 든 게 아니었다, 보지 않았다. 그런데 이안은 알았다, 식당의 공간 감각이 변하는 방식으로.
하린이 포크를 들고 돈가스를 자르며 말했다.
"오늘 진짜 돈가스였네."
"...응."
"언니 오늘 아침 게시 봤어?"
"...봤어."
"12등 맞지."
"...응."
"한시우가 1등이고."
"...응."
"언니, 한시우 알아?"
하린이 물었다, 눈을 들지 않고 목소리도 평범하게. 식당의 소음 속에서 그 질문은 작았다, 이안만 들을 수 있는 크기였다.
이안의 포크가 멈췄다.
"...왜 물어."
"그냥, 성적 같이 내려가다가 한시우는 올라갔잖아. 언니는 내려갔고."
"..."
"이상해서."
하린이 고기를 한 조각 더 잘랐다.
"내가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면 말해줘."
이안이 포크를 내려놓았다, 식욕이 갑자기 사라졌다.
"...잘못 생각하는 거 아니야."
"응."
"근데 지금 여기서 말 못 해."
"알아."
하린이 이안을 슬쩍 봤다, 눈이 잠깐 마주쳤다.
"나중에 말해줘. 아니면 안 해줘도 돼, 근데 둘 다 위험한 거면 위험하다는 것만 알려줘."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해."
하린이 포크를 내려놓았다. 얼굴이 조금 창백해지는 듯했다, 1초. 그리고 다시 돈가스를 잘랐다.
"...언니, 그거 알아? 나 언니가 청람관 처음 왔을 때부터 언니랑 같이 방 썼거든. 그때부터 지금까지 언니가 위험하다고 말한 거 오늘이 처음이야."
"..."
"그래서 이거... 나도 좀 무서워."
하린이 말했다.
식당의 형광등이 둘을 비췄다. 멀리서 시우가 식판을 들고 일어서는 것이 이안의 시야 끝에서 움직였다, 시우가 식당을 나가고 있었다, 평소보다 빨리.
이안은 돈가스를 반도 먹지 못했다.
5교시, 이안이 상담실에서 호출을 받을 줄 알았다. 받지 않았다. 6교시, 7교시, 받지 않았다.
대신 도현이 이안의 교실 앞을 한 번 지나갔다, 5교시와 6교시 사이 쉬는 시간에. 창문 너머로 교실 안을 훑었다, 이안이 앉아 있는 것을 확인하고 지나갔다.
'나를 부르지 않았어, 시우를 부른 거야.'
7교시가 끝난 뒤, 2층 복도에서 시우와 마주쳤다. 시우가 이 시간에 이 복도를 지나갈 이유가 없었다. 지나치는 순간 시우의 손이 이안의 외투 주머니를 아주 잠깐 스쳤다.
방으로 올라갔다, 하린은 없었다. 외투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접힌 종이 한 장이 있었다.
쪽지를 펼쳤다. 시우의 각진 글씨, 지우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도현이 우리 출석 패턴 알고 있음. 매일 같은 시각. 10월 중순부터. 점수 편차도 의심 중. 당분간 야자 같이 안 감. 격일로. 내가 홀수, 너가 짝수. 3층 자판기 금지. 옥상 금지. 필요하면 쪽지로. 이 쪽지 태워.'
이안이 두 번 읽었다, 세 번째 읽으면서 손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연애 쪽지가 아니었다, 작전 메모였다.
라이터가 없었다, 학원 기숙사에는 화재 탐지기가 있었다. 이안이 화장실로 갔다, 쪽지를 작게 찢어 변기에 흘려보냈다.
거울 속 이안의 얼굴을 봤다. 머리는 아직 높이 묶여 있었다, 눈 밑은 짙었다. 표정은 단단했다, 처음으로 시우의 손을 잡았을 때의 흔들리는 얼굴이 아니었다. 작전을 읽은 얼굴이었다.
시우가 이안을 '지키는 대상'에서 '같이 움직이는 대상'으로 바꾼 것이다. 오늘 아침 이안이 "네 점수 네가 써"라고 말한 것에 대한 시우의 응답이 이 쪽지였다.
저녁 8시, 기숙사 자기 방.
책상 앞에 앉았다, 시간표를 펼쳤다. 새 종이에 짝수/홀수 표시를 해 넣기 시작했다. 손이 흔들리지 않았다. 2주 전까지 이안의 시간표는 성적을 위한 것이었다, 오늘 밤부터 이안의 시간표는 시우를 만나기 위한 것이었다.
그 사실이 무서운 게 아니라 그 사실에 더 이상 놀라지 않는 자신이 무서웠다.
핸드폰이 책상 위에서 깜박였다, 엄마, 부재중 3통.
받지 않았다, 처음이었다. 성적이 12등으로 떨어진 날 엄마 전화를 받지 않은 것은 청람관에 온 이후로.
'나 괜찮지 않아.'
그 문장이 왔다가 갔다. 평소라면 밀어냈을 문장을 이안은 안쪽에서 흐르게 뒀다.
시간표 위에 오늘 밤 9시부터 11시까지 공부 계획을 적었다. 수학 3문제, 국어 한 지문, 영어 한 지문, 평소의 절반이었다. 그 '절반'이 오늘 밤 자신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인정하고 나니 진짜 3문제는 풀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
하린이 들어왔다, 손에 삼각김밥 두 개였다.
"언니, 이거. 매점에서, 하나는 내 거, 하나는 언니 거."
"...고마워."
"오늘 돈가스 반도 안 먹었잖아."
"...응."
하린이 자기 침대에 앉았다, 삼각김밥을 뜯었다. 이안도 책상에서 몸을 돌려 삼각김밥을 받았다, 포장을 뜯었다, 한입 베어 물었다. 밥이 따뜻했다, 바깥 공기를 맞고 온 삼각김밥인데 하린이 품에 안고 왔는지 따뜻했다.
"...오늘 힘들었어?"
"응."
"내일은 좀 덜 힘들 거야."
"...어떻게 알아."
"모르지, 그냥 그렇게 생각하자."
이안이 작게 웃었다. 한번 웃고 나니까 눈에 물기가 돌았다, 웃으면서 눈물이 나는 것이 가능한 조합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하린아, 아까 식당에서 내가 위험하다고 했잖아, 그거 진심이었어."
"알아."
"그래서 앞으로, 내가 뭘 좀 이상하게 행동해도, 그냥 못 본 척해줄 수 있어?"
"...언니, 그거 언니가 다칠 일이야?"
"...다칠 수 있어. 자기가 다치는 일이고, 다른 사람 다치는 일은 아니야."
"그럼 내가 막아야 하는 일이잖아."
"막지 마, 하린아. 막으려고 하지 말고, 지금처럼 물어보고 싶을 때만 물어봐줘. 답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할게."
하린이 삼각김밥을 내려놓았다,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고 이안을 봤다.
"...나 이거 후회할 거 같다는 느낌이 드는데. 그래도 못 본 척 해줄게, 지금은."
이안이 고개를 숙였다.
"...고마워."
"하지 마, 고마워라고. 언니가 '고마워' 너무 많이 하면 나 진짜 울어."
방의 형광등 아래에서 하린의 눈이 조금 붉었다. 울지는 않았다, 울지 않으려고 하고 있었다.
밤 10시 30분.
이안은 책상 앞에 있었다. 수학 문제집의 3번 문제까지 풀었다, 맞았다, 세 문제 다. 손이 흔들리지 않았다.
시계를 봤다. 10시 35분, 야간자습 2차 신청 접수가 10시 50분에 마감된다. 오늘은 월요일, 홀수 날, 시우의 날이었다. 이안은 신청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창문 밖으로 바람 소리가 났다. 10월 말의 바람, 창문이 살짝 흔들렸다.
침대에 누웠다, 불을 껐다. 하린이 이미 자고 있었다, 숨소리가 규칙적이었다.
이안은 천장을 봤다. 형광등이 꺼진 천장, 이번에는 형광등이 보이지 않았다, 어둠만 있었다.
'시우가 지금쯤 자습실에 내려갔겠다. 31번 자리에 앉아서 12번 자리가 비어 있는 걸 보고 있겠다, 어젯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손을 가슴 위에 올렸다. 심장이 뛰고 있었다, 평소의 속도로. 어젯밤처럼 빨리 뛰지 않았다. 이유는 알 것 같았다. 오늘 시우와 아침에 이야기했고, 오후에 쪽지를 받았고, 내일부터의 계획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르는 게 두려움을 키운다, 아는 것은 두려움을 실행 가능한 문제로 바꾼다.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서 도현의 얼굴이 한 번 지나갔다. 부드러운 미소, 칼끝이 숨은. 도현은 아직 증거가 없었다, 다만 찾고 있었다. 다음번엔 더 확신을 가지고 올 것이다, 그 전에 패턴을 바꿔야 했다. 격일, 홀수, 짝수, 3층 자판기 금지, 옥상 금지.
이안이 평생 써본 적 없는 단어가 머리에 들어왔다. 규정을 지키던 사람의 인생에 들어올 일이 없는 단어였다.
오늘 밤부터 그 단어가 이안의 밤을 정의했다.
잠이 왔다, 한 가지 이유로.
'내일 시우를 만날 거야.'
내일은 화요일, 짝수 날, 이안의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