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1시. 시우는 자기 방 침대 위에 등을 대고 누워 있었다.
천장이 보였다.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평평한 면이었다. 그 평평함이 어제 밤 비상계단 4와 5 사이의 녹색 비상등 아래에서 들었던 이안의 말을 더 또렷하게 만들었다.
'네 인생은 네가 지켜.'
시우는 그 말을 한 번 더 들어보려고 눈을 감았다. 들리지 않았다. 대신 들리는 건 11시 47분에 본관 보관함에서 짧게 켰던 폰의 화면이었다. 부재중 한정수 변호사. 22시 12분. 학원에 들어오기 전 마지막으로 폰을 켰을 때는 없었던 알림이었다.
시우가 폰을 도로 보관함에 넣었다. 본관 보관함과 보관함 사이 30센티의 사각, 그 안에서 짧게 봤다. 1초였다. 그 1초 안에 한정수의 다음 행동이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부재중. 의미는 둘 중 하나였다.
하나, 학원 측에서 한정수에게 시우 면담 통보를 보냈고 한정수가 그 통보를 확인했다. 둘, 한정수가 학원 측에 미리 연락해 면담 일정을 잡았다. 어느 쪽이든 다음 단계는 한정수의 직접 방문이었다.
시우가 천장에서 시선을 떼고 옆으로 돌아누웠다. 침대 옆 책상 모서리에 모의고사 5회분 묶음이 놓여 있었다. 어제 오후, 7교시 후에 빈 교실에서 풀기 시작한 묶음이었다. 15번까지 답을 적고 안 지웠다. 답란이 비어 있지 않은 종이가 시우에게 낯설었다.
낯선 종이를 보고 있으면 어제 오후 실습실 창가의 빛이 같이 떠올랐다. 이안의 머리카락이 묶여 있던 높이, 손의 위치, 단어를 줄여서 1분 안에 말한 문장들.
'네 인생은 네가 지켜, 내 점수는 내가 올릴 거야.'
시우가 눈을 떴다. 새벽 1시 7분이었다. 7분 동안 잠들지 못한 채 같은 한 문장을 반복하고 있었다는 걸 알아챘다.
아침 6시 50분, 식당.
이안이 식판에 밥을 받았다. 국이 따뜻하지 않았다, 평소보다 5분 늦게 온 탓이었다.
하린이 옆 자리에서 김치를 옮겨 담으며 말했다.
"언니, 오늘 도현 쌤이 식당에 한 번 다녀갈 거래."
"...왜."
"몰라. 어제 저녁에 1층 게시판에 공지 붙었어. '식사 시간 중 학생 동선 점검'."
이안이 식판을 내려놓았다. 식당 입구 쪽 게시판이 등 뒤에 있었다, 돌아보지 않았다. 도현이 식당에 직접 오는 일은 학기 중에 두세 번뿐이었다. 시기가 좋지 않았다.
"...언제 와."
"7시 10분쯤. 곧."
이안이 숟가락을 들었다. 밥을 한 술 떴는데 위장이 그것을 받지 않았다. 어제 오후 시우와 비상계단에서 했던 약속이 머릿속에 다시 정리됐다. 격일제. 짝수 날은 이안, 홀수 날은 시우. 오늘은 목요일, 짝수 날이었다. 이안이 자습실에 내려가는 날이었다.
하지만 어제 밤 도현은 한정수에게 직접 전화를 했다. 그 통화 다음 날 아침에 도현이 식당에 직접 오는 건 무슨 의미인지. 이안이 그 의미를 자기 안에서 한 번 굴려봤다.
"언니."
하린이 옆에서 작게 불렀다.
"...응."
"한시우 안 보인다."
이안이 숟가락을 멈췄다. 식당을 천천히 둘러봤다. 시우가 평소 앉는 자리, 창가 쪽 두 번째 줄, 비어 있었다.
7시 5분이었다. 시우는 평소 6시 55분에 식당에 들어와 7시 정각 전에 자리에 앉는 사람이었다. 5분이 늦은 시우는 시우가 아니었다.
"...어제 늦게까지 자습한 거 아닐까."
하린이 자기 추측을 옆에 놓았다, 이안이 끄덕였다. 끄덕인 건 동의가 아니라 대답을 만들기 위한 동작이었다.
7시 9분, 식당 입구에 도현이 들어왔다. 평소처럼 베이지색 카디건, 손에 클립보드 하나. 학생들 사이를 천천히 걸으면서 한 명 한 명에게 가벼운 인사를 건넸다. 도현의 동선이 이안의 자리 쪽으로 오고 있었다.
이안이 숟가락을 다시 들었다. 도현이 옆을 지날 때 이안이 숟가락을 입에 가져갔다, 밥을 씹었다. 도현이 잠깐 이안의 어깨 뒤에 섰다.
"이안 학생, 잘 먹어."
"...네."
"오늘 1교시 끝나고 식당 게시판 잠깐 봐줄래. 이번 주 공지 두 개 올라가."
"...네."
도현이 더 말하지 않고 자리를 지나갔다. 하린이 이안을 봤다, 이안이 하린을 보지 않았다.
도현이 식당 뒤쪽에 있는 직원 출입문 쪽으로 사라졌다.
8시 45분, 1교시 끝.
이안이 식당 게시판 앞에 섰다. 학생들 몇 명이 같이 보고 있었다, 새 공지 두 장이 붙어 있었다.
첫 번째 공지.
'한시우 학생 1차 자습실 분리 통지. 11월 6일부 별도 책상 배치. 감독관 직접 시야 범위 내 자습. 주말 외출 무기한 정지. 학부모 매주 금요일 방문 면담.'
두 번째 공지.
'서이안 학생 이번 주 금요일 14시 학부모 면담 일정 확정. 면담실 2호.'
이안의 손이 게시판 옆 벽에 닿았다. 벽이 차가웠다.
옆에서 학생 두 명이 말했다.
"한시우 1차 자습실 분리? 이게 뭐야."
"점수 너무 잘 나오니까 의심받는다는 거 아니야?"
"의심받아서 분리시켜? 그건 좀 너무한 거 아니야."
"어제 학원장실에 누가 왔다 갔잖아."
"누구."
"몰라, 변호사인지 뭔지. 양복 입은 사람."
학생 두 명이 게시판에서 멀어졌다. 이안은 게시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첫 번째 공지를 한 번 더 읽었다.
'1차 자습실 분리.'
청람관에서 1차 자습실 분리는 정학에 가까운 처분이었다. 일반 자습실에서 빠져 별도 책상에 앉고, 감독관이 시야 안에서 직접 본다. 다른 학생들과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지 않는다. 그동안 한 학기에 한두 명만 받은 처분이었고, 보통은 부정행위 적발이나 폭력 사건의 결과였다.
성적 조작 의심으로 1차 자습실 분리는 청람관 역사에 없는 처분이었다.
이안이 옆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옆에 서 있던 다른 학생이 두 번째 공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서이안 어머니가 학원 오신다는데."
"왜."
"몰라. 그동안 안 오시던 분 아니야."
이안이 그 학생 옆을 지나 복도 쪽으로 걸었다. 1교시 끝난 학생들이 복도에 가득했다, 그 사이를 천천히 걸어 자기 교실로 돌아갔다.
교실에 들어가 자리에 앉기 전에 필통을 열었다. 사탕 네 개가 그대로 있었다, 노란 포장지였다.
하나를 꺼냈다.
'필요할 때 먹어.'
지금이 필요할 때인지 이안이 자기 안에서 한 번 물었다. 어제까지의 이안은 이 질문에 그대로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사탕이 시우의 흔적이었고, 흔적은 가능하면 아껴 두는 것이었고, '필요할 때'는 시우가 위험할 때였다.
오늘 아침의 필요는 다른 종류였다. 시우의 위험을 위한 게 아니었다, 이안 자신이 다음 한 시간을 통과하기 위한 작은 결심이 필요했다.
이안이 포장을 뜯었다, 입에 넣었다. 레몬맛, 평범한 단맛.
'필요할 때 먹어'를 시우의 위험이 아니라 자기 안의 결심을 위해 처음 쓴 순간이었다. 입 안에서 사탕이 천천히 녹는 동안 이안이 한 가지를 정리했다.
오늘 밤 자습실은 가지 않는다. 격일제는 깨지지만, 오늘은 시우가 분리됐고 분리된 시우가 자습실에 없을 가능성이 높았다. 비어 있는 자습실에 이안이 혼자 가는 건 의미가 없었다. 가더라도 이안이 가는 자리는 정해져 있었다, 야자가 아닌 자리.
옥상 문 앞.
어제 비상계단에서 시우의 톤이 날카로워졌다가 다시 누그러졌을 때, 시우가 잠깐 옥상 쪽을 봤다. 시우는 그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이안은 봤다. 오늘 시우가 분리됐다면 시우가 자기 방에서 빠져나와 갈 곳은 옥상 외에 없었다.
이안의 예감은 그 정도였다. 예감 외에 다른 근거는 없었다.
오후 2시 12분, 학원장실 옆 자료실. 도현 시점.
도현이 책상 위 노트를 펼쳐 한 줄을 적었다.
'11/6 목 13:55 한정수 학원장실 도착. 검정 양복, 가죽 가방.'
도현의 자리는 학원장실에서 한 칸 떨어진 자료실 안쪽이었다. 두 방 사이 벽에 작은 환기구가 있었고, 그 환기구는 학원장실 안의 대화를 자료실에서 들을 수 있는 정도의 두께였다. 이걸 학원장이 아는지 모르는지는 도현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오늘 도현이 자료실에 앉아 있는 건 도현이 부른 자리가 아니었다. 학원장이 도현에게 "오후 면담 끝나면 자료 정리 부탁한다"고 말했고, 도현은 그 부탁을 받아 자료실에 들어왔다. 부탁을 받고 자료실에 앉아 환기구 쪽으로 머리를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까지가 학원장이 의도한 흐름인지 아닌지는 도현도 모르는 채로 그냥 앉아 있었다.
학원장실 안에서 한정수의 첫 마디가 들렸다.
"도현 상담사가 보내준 자료는 검토했습니다."
도현의 어깨가 한 번 움직였다. 한정수가 도현의 이름을 부른 게 첫 마디였다.
학원장의 답이 이어졌다.
"네, 변호사님. 답안지 지운 자국 패턴, 그리고 출석 기록 일치 두 가지가 핵심입니다."
"답안지 지운 자국은 변호사 입장에서 증거능력이 약합니다. 채점 과정의 정상적인 행위라고 학생이 주장하면 그 주장을 뒤집을 객관 자료가 없어요."
한정수의 톤은 낮았고 평평했다. 화를 내는 톤이 아니었다, 의견을 진술하는 톤이었다.
"답안지 회수 후 학생 본인이 다시 손을 댄 정황이 없는 한, 지운 자국의 의미를 일의적으로 해석할 수 없습니다. 그동안 의도적으로 답을 깎았다는 결론은 학원 측 추론입니다."
도현이 노트에 한 줄 적었다.
'한정수: 증거능력 방어 1차.'
학원장이 잠깐 말이 없었다.
"출석 기록은요."
"두 학생이 같은 시간대 자습실에 있었다는 사실이 사적 접촉의 증거는 아닙니다. 같은 학년 학생 50명 중 야간자습을 신청한 학생이 누구든 그 사이에 일치 패턴은 생깁니다.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일치인지 검증된 적이 없습니다."
도현이 또 한 줄 적었다.
'한정수: 출석 일치 = 우연 패턴 방어 2차.'
학원장이 한 박자 뒤에 말했다.
"변호사님 말씀 이해합니다. 다만 학원 입장에서는 이 학생들이 이 상태로 수능까지 가는 게 학원의 운영 통계에 영향이 있어서요. 정시 합격률이 학원의 광고 자료에 직접 들어가는 수치니까."
"그럼 학원 입장에서 원하시는 게 무엇입니까."
"한시우 학생 1차 자습실 분리, 주말 외출 무기한 정지. 변호사님께서 매주 금요일 학원 방문해 점수 직접 확인. 이게 학원의 1차 제안입니다."
도현이 펜을 멈췄다. 1차 제안이 한정수의 방문이라는 부분에 도현이 처음 듣는 항목이 있었다. 학원장이 이 카드를 도현에게 말하지 않고 한정수에게 직접 던졌다.
한정수의 답이 짧게 나왔다.
"받아들이겠습니다. 단, 시우의 면담은 제가 직접 합니다. 학원 측은 참관만 하시고요."
"네."
"한 가지 더. 시우가 1차 자습실 분리 처분을 받았다는 사실이 외부에 새지 않도록 해주세요. 청람관 내부 게시판까지는 어쩔 수 없다고 봅니다만, 학원 외부 학부모 커뮤니티에는 절대 노출되지 않게."
"학원 측 공지 권한 안에서 관리하겠습니다."
학원장실 안의 대화가 잠깐 끊겼다. 의자가 움직이는 소리, 종이가 넘어가는 소리, 한정수의 가방이 책상에 놓이는 소리.
한정수의 다음 말이 작게 들렸다.
"시우는 어디 있습니까."
"4층 면담실 1호에서 대기 중입니다. 1시간 전부터."
"가보겠습니다."
학원장실 문이 열리고 닫혔다. 한정수의 발소리가 복도 쪽으로 멀어졌다.
도현이 환기구에서 머리를 뗐다. 노트의 마지막 줄을 한 번 더 봤다.
'한정수 방문 매주 금요일 + 시우 면담 직접 + 처분 외부 비노출.'
세 가지가 한정수의 조건이었다, 학원장이 그 세 가지를 다 받아들였다. 그 의미를 도현이 안쪽에서 한 번 정리했다.
이 시점부터 시우의 처분 결정 권한은 학원 측에서 한정수 쪽으로 절반 이상 넘어갔다. 도현이 시우에게 가할 수 있는 1차 칼이 이미 한정수의 방패 안쪽으로 들어와 있었다. 도현이 가진 카드는 행동 증거뿐이었고, 그 행동 증거가 1차 자습실 분리 이후 더 추가될 가능성은 낮았다. 시우가 더 이상 야자에 내려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도현이 노트를 덮었다. 의자에 등을 기댔다, 천장을 봤다.
다음 단계의 카드는 시우 쪽이 아니라 이안 쪽에서 잡아야 한다는 결론이 자료실 안에서 도현 안쪽으로 들어왔다. 이안의 어머니가 금요일 14시에 학원에 온다. 그 면담 자리에서 도현이 한 가지 정보를 어머니에게 흘릴 수 있다. 흘릴지 말지를 이번 주 안에 정해야 했다.
도현이 잠깐 망설였다. 한 사이클의 학원 상담사로서 도현은 학생을 학부모 쪽에 넘기는 카드를 가능한 한 마지막 단계에 꺼냈다. 이번에는 그 카드가 1차 카드가 되어가고 있었다.
자료실 창문 밖으로 11월의 햇살이 비쳤다, 노란빛이었다. 도현이 햇살 쪽으로 잠깐 시선을 줬다.
'한 번만, 한 번만 더 생각해보고.'
도현이 펜을 들었다, 노트에 한 줄을 더 적으려다 멈췄다. 적지 않은 한 줄이 도현 안쪽에서 한 번 통과해 갔다.
오후 3시 27분, 시우 시점. 4층 면담실 1호.
시우가 면담실 의자에 앉아 있었다. 1시간 27분 전에 도현이 시우를 이 자리에 앉히고 나갔다. 면담실 안의 시계가 똑딱똑딱 같은 박자로 움직이고 있었다.
문이 열렸다.
한정수가 들어왔다. 검정 양복, 가죽 가방, 머리카락이 정수리에서 한 줄로 단정히 가르마가 타져 있었다. 한정수가 시우의 맞은편 의자를 빼서 앉았다.
"앉아 있었네."
"...네."
"학원 상담사에게 자료 받았다. 점수 조작 의심."
"..."
"그게 사실인지는 묻지 않을게. 사실이든 아니든 학원 측이 그렇게 본다는 게 중요해. 학원 측 판단은 변경이 어렵다. 그래서 내가 학원장과 합의한 게 있다, 들어볼래."
"...네."
"이번 주부터 너는 1차 자습실에서 분리된다. 별도 책상, 감독관 직접 시야. 주말 외출 무기한 정지. 내가 매주 금요일 학원에 와서 점수 직접 확인. 이 세 가지가 합의 내용이다."
시우가 한정수의 얼굴을 봤다. 한정수가 시우의 얼굴을 보지 않고 가방 안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고 있었다.
"...아버지."
"말해."
"...제 의견은요."
한정수가 서류를 책상 위에 놓았다, 시우를 봤다.
"네 의견을 묻는 자리는 다음 주 금요일이다. 첫 점수 확인 끝나고 그때 너의 다음 행동에 대해 합의한다."
"...지금 한 가지만 말씀드려도 돼요."
"말해."
시우가 한 번 숨을 들이쉬었다.
"...의대 가요. 단, 학교는 제가 골라요."
한정수의 펜이 책상 위에서 한 번 멈췄다. 멈춘 다음 다시 움직였다, 펜이 서류 위에 한 줄을 그었다.
"환산점수로 가군은 내가 정한다."
"...나군 다군은요."
"성적표 나온 다음 합의한다."
"...네."
시우가 더 말하지 않았다. 한정수가 서류를 가방에 다시 넣었다, 가방 잠금을 잠갔다. 의자를 뒤로 밀고 일어났다.
"시우야."
"...네."
"이번엔 410점이었다. 다음 주에도 400점대 유지해. 학원 측 의심을 더 키우면 합의가 깨진다."
"...네."
한정수가 면담실 문을 열고 나갔다. 문이 닫히고 시우가 의자에 한참 앉아 있었다. 책상 위에 한정수가 놓고 간 펜이 그대로 있었다. 잊고 간 게 아니라 두고 간 것이었다. 다음 면담에서 다시 가져가겠다는 의미였다.
시우가 펜을 들지 않았다. 의자에서 일어서지도 않았다. 면담실 시계가 똑딱똑딱 같은 박자로 계속 움직였다.
10분쯤 지나 시우가 일어섰다. 펜은 책상 위에 그대로 두고 문을 열고 나왔다. 복도가 비어 있었다, 도현도 학원장도 없었다.
시우가 4층 복도 끝까지 걸었다. 끝에 비상계단이 있었다, 어제 밤 이안과 만난 그 계단이었다. 시우가 비상계단 문 앞에 잠깐 섰다. 손잡이에 손을 댔다, 댔다가 뗐다.
지금 비상계단을 올라가면 이안이 거기 없다는 걸 시우가 알고 있었다. 비상계단은 어제 밤의 자리였다, 오늘 오후의 자리가 아니었다.
시우가 손을 떼고 1차 자습실 쪽으로 걸었다. 1차 자습실에서 별도 책상으로 분리되는 첫 시간이 30분 뒤였다.
밤 1시 15분.
이안이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처음에는 5층까지만 올라가다가, 5층 복도 끝에 닿았을 때 멈추지 않았다. 5층에서 옥상으로 가는 계단은 좁고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져 있었다. 비상등이 두 개, 그중 하나는 깜빡이고 있었다. 이안이 그 깜빡임을 보면서 한 칸씩 올라갔다.
옥상 문 앞에 도착했다.
문이 잠겨 있었다. 손잡이를 한 번 당겼다, 움직이지 않았다. 옥상 문이 잠겨 있다는 사실은 이안이 알고 있었다, 청람관 옥상은 학생 출입이 금지된 공간이었다, 시우와 함께 갈 때마다 시우가 어떻게 열었는지 이안은 묻지 않았다.
오늘 이안은 옥상 안으로 들어가려고 온 게 아니었다. 옥상 문 앞에 시우가 와 있을지 보러 온 거였다.
문 앞에 시우가 없었다.
이안이 문 손잡이에서 손을 뗐다. 한 칸 아래 계단에 앉았다. 무릎에 팔꿈치를 올리고 손바닥에 턱을 괴었다. 깜빡이는 비상등의 빛이 한 박자씩 이안의 얼굴에 닿았다.
'시우가 안 왔어.'
당연한 일이었다. 시우는 어제 오후부터 1차 자습실 분리 상태였다, 별도 책상에서 감독관 시야 안에 있어야 했다. 야자 시간에 자기 자리에서 빠져나오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그 당연한 사실이 이안의 가슴에서 한 칸 떨어졌다.
이안이 필통을 꺼내 옆에 놓았다. 사탕 세 개가 남아 있었다, 노란 포장지였다. 한 알을 꺼내려고 손가락이 움직였다, 멈췄다. 도로 필통에 넣었다.
'아직 필요할 때 아니야.'
이안이 자기 안쪽에서 한 번 더 정리했다. 시우가 안 온 것이 시우의 잘못이 아니었고, 옥상 문이 잠겨 있는 것이 이안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러면 누구의 잘못인지를 따지는 건 의미가 없었다. 잘못을 따질 수 있는 상대가 도현이고 학원장이고 한정수고 어머니이고, 결국 이안이 부딪쳐야 하는 건 그 모두를 합친 시스템이었다.
이안이 잠시 더 앉아 있다가 일어났다. 다시 5층 복도로 내려와 자기 방으로 향했다. 복도 끝에서 한 번 옥상 쪽을 돌아봤다, 깜빡이는 비상등의 빛이 계단 위쪽에서 한 박자씩 새고 있었다.
방에 돌아왔다. 하린은 자고 있었다, 이불이 어깨까지 덮여 있었다. 책상 앞에 앉아 형광등을 켰다.
책상 위에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이안의 책상 위에 이안이 두지 않은 종이가 놓여 있었다. 노트를 찢어낸 종이였다, 한쪽 모서리가 거칠게 잘려 있었다.
이안이 종이를 들었다. 글씨가 적혀 있었다, 하린의 글씨였다.
'언니, 내일 내 부모도 학원에 와. 1시.'
이안의 손이 종이 한쪽 끝을 쥐었다, 다른 쪽 끝이 살짝 떨렸다.
하린의 부모도 학원에 온다. 내일 1시. 시우의 아버지는 어제 왔고, 이안의 어머니는 모레 금요일에 온다. 하린의 부모는 내일 목요일과 금요일 사이, 정확히 어른 셋의 방문이 일렬로 늘어선 사이에 끼어 있었다.
이안이 종이를 천천히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같은 학원 안에서 같은 한 주에 세 명의 학부모가 따로 호출됐다. 시우의 1차 자습실 분리, 이안의 어머니 면담, 하린의 부모 호출. 세 가지가 한 라인 위에 정렬되고 있었다.
도현이 카드를 한 장씩 꺼내고 있는 게 아니었다, 카드 전부를 같은 주에 한꺼번에 펼치고 있었다.
이안이 형광등을 껐다. 창문 너머가 어두웠다, 깜빡이는 비상등은 보이지 않았다. 이안이 침대에 누웠다, 눈을 감았다.
어제 밤에는 잠이 오지 않았다, 오늘 밤도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도 눈을 감았다.
하린의 종이가 책상 위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글씨 여덟 글자.
'내일 1시.'
내일 1시에 무엇이 시작될지 이안은 알지 못한 채 눈을 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