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밤 11시 30분.
이안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고 있었다. 형광등은 꺼져 있었고, 상수가 낮게 깔린 어둠 속에 하린의 숨소리가 들렸다. 난방 파이프가 가끔 틱, 틱, 하고 금속이 식는 소리를 냈다.
야간자습 2차 신청서를 내지 않았다.
오후에 도현의 말을 들은 직후 접수 창구에서 그냥 지나쳤다. 손끝이 종이를 쥐었다가 놓았다, 신청 명단에 이름을 적지 않은 것은 청람관에 들어온 이후 처음이었다.
'오늘은 자. 자야 돼, 새벽 공부 금지, 11시 취침. 상담사가 그랬잖아.'
눈을 감았다, 눈꺼풀 안쪽이 환했다. 감아도 형광등이 보였다. 자습실 천장에 매달린 긴 막대 네 개, 지이이, 하는 소리, 12번 자리의 칸막이, 31번 자리에서 고개를 돌려 이쪽을 보는 시우의 머리카락.
눈을 떴다.
시계를 봤다. 머리맡의 탁상시계가 12시 12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잠든 줄 알았는데 잠들지 않았다, 40분 동안 눈을 감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게 뭐야.'
천장을 다시 봤다. 룸메이트의 침대 쪽에서 하린이 뒤척였다, 이불이 부스럭거렸다, 다시 조용해졌다.
12시 20분, 12시 30분, 12시 42분.
숫자를 셌다, 분 단위로. 1분이 지나가는 것이 이렇게 느린 적이 있었나. 초침이 움직일 때마다 몸의 어딘가가 긁혔다.
12시 50분.
몸이 먼저 일어났다.
머리로는 '안 돼'라고 말하고 있었다, 발은 이미 바닥에 내려와 있었다. 슬리퍼를 신었다, 학원복 위에 후드를 하나 걸쳤다. 하린의 방향을 봤다, 이불 너머로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었다, 복도에 나와 살며시 닫았다.
복도는 어두웠다. 비상등만 켜져 있었고 녹색이었다. 오른쪽 계단은 2층 자습실로, 왼쪽 계단은 지하 1층 야간자습실로 이어졌다. 왼쪽으로 발이 움직였다.
'야간자습 신청 안 했잖아.'
'신청 안 해도 출입은 돼, 그냥 출석 기록이 안 남을 뿐이야.'
'그건 핑계야. 그래도 가고 있잖아.'
자신의 발소리를 들으며 계단을 내려갔다. 1층을 지났다, 로비를 건넜다. 상담실의 문은 닫혀 있었다, 불은 꺼져 있었다. 도현은 오늘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다행이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한 것도 이상했다.
지하 1층 계단, 형광등 불빛이 아래에서 올라왔다. 희고 푸른 빛이었다, 공기에서 종이 냄새와 난방 냄새가 섞여 올라왔다.
야간자습실의 문을 밀었다.
자습실에는 세 명이 있었다.
모르는 남학생이 입구 근처 7번 자리에서 문제집을 풀고 있었다. 중간쯤에 한 여학생이 엎드려 자고 있었다, 뒤쪽 45번 자리에 또 한 명. 다 고개를 들지 않았다. 새벽 자습실에서는 시선을 서로 맞추지 않는 게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12번 자리로 걸어갔다. 평소와 같은 걸음, 평소와 같은 자세로 가방을 내려놓고 의자를 뺐다.
앉기 전에 31번 자리를 봤다. 비어 있었다.
칸막이에 불이 꺼져 있었다. 책상 위는 텅 비어 있었고 의자는 책상 안쪽으로 밀어 넣어져 있었다. 시우가 쓰고 간 흔적이 전혀 없었다, 오늘은 안 왔거나 아직 안 왔거나.
시계를 봤다, 12시 58분. 2분 뒤면 1시, 그리고 15분.
'올지도 몰라, 안 올 수도 있고.'
'안 올 거야, 어제 자기가 내일부터 안 나오겠다고 했잖아.'
의자를 당겨 앉았다. 가방에서 문제집을 꺼냈다. 수학 기출, 어제 풀다 만 30번 문제였다. 펜을 쥐었다.
손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펜촉이 종이에 닿기 전에 31번 자리가 시야의 끝에서 흔들렸다. 문제를 보는데 문제가 보이지 않았다. 31번 자리만 보였다. 불이 꺼진 칸막이, 의자의 높이, 시우가 거기에 앉았을 때의 어깨 높이.
'집중해. 집중해. 집중.'
펜을 내려놓았다, 다시 들었다. 1번 선지를 읽었다, 2번 선지로 눈을 옮겼다, 2번에서 다시 1번으로 돌아갔다. 문장이 눈에 안 들어왔다. 같은 문장을 세 번 읽었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1시 정각, 감독관의 의자가 밀리는 소리, 열쇠 꾸러미,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 감독관이 교대를 위해 1층으로 올라갔다, 뒤에 남은 자리의 모니터 램프만 희미하게 깜박였다.
15분이 시작됐다.
15분.
평소였다면 고개를 들어 31번 쪽을 봤을 시간이었다. 평소였다면 시우가 의자를 뒤로 밀고 기지개를 켜거나 창문을 조금 열거나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까지 한 바퀴 돌았을 시간이었다.
창문은 닫혀 있었다, 자습실의 공기가 그대로 고여 있었다.
뒤쪽 45번 자리의 학생이 일어나 출입구 쪽으로 갔다. 화장실에 가는 것 같았다, 문이 여닫혔다. 이안의 심장이 한 번 멎었다가 다시 뛰었다. 시우가 들어오는 소리가 아니었다.
'안 오는구나. 맞아, 안 온다고 했잖아.'
펜이 문제지 위에서 멈춰 있었다, 종이에 작은 점이 번지고 있었다. 잉크가 한 자리에 고여서, 손을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뜻이었다. 얼마나 멈춰 있었는지 몰랐다.
1시 7분.
일어섰다.
의자 다리가 바닥을 끌며 소리를 냈다. 입구 근처 학생이 고개를 들었다가 도로 숙였다. 가방을 그대로 두고 문제집만 엎어놓고 출입구 쪽으로 걸었다.
'어디 가. 몰라. 자리로 돌아가. 몰라.'
자습실을 나왔다. 계단을 올라왔다, 1층 로비는 조용했다. 2층으로 올라갔다. 남학생층은 3층부터였다, 3층까지 갈 이유는 없었다. 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계단을 올라갔다.
3층 복도 자판기 앞.
자판기의 흰 불빛이 복도를 푸르게 물들이고 있었다. 자판기 옆에는 쓰레기통, 정수기, 그리고 복도 벽이 있었다. CCTV 한 대가 자판기 반대편 천장에 달려 있었다, 빨간 램프가 깜박였다.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냈다, 500원짜리 두 개, 자판기에 넣었다. 기계가 동전을 삼키는 소리, 500원, 1000원. 캔커피 버튼 위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여긴 남자 층 경계야. 그냥 커피 뽑고 내려가.'
복도 반대편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었다.
시우였다.
검정 후드집업에 머리카락이 한쪽 눈을 가리고 있었다. 양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복도를 걸어오고 있었다. 이안을 본 순간 시우의 발이 멈칫했다, 잠깐. 그리고 다시 걸었다, 자판기 앞까지 왔다.
두 사람이 자판기 앞에 마주 섰다.
"안 나온다며."
이안이 먼저 말했다,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새벽이라 그런 것이기도 했고 다른 이유도 있었다.
"너도 안 나온다며."
시우가 말했다.
둘 다 입을 닫았다. 자판기가 윙, 하는 낮은 진동을 냈다. 자판기의 내부 조명이 시우의 얼굴 아래쪽을 푸르게 비췄다. 턱선, 입술, 그림자가 드러났다. 시우의 눈은 어두워서 표정이 잘 안 보였다.
"...커피."
이안이 눈을 자판기 쪽으로 돌렸다. 버튼이 아직 눌리지 않은 채로 있었다. 손가락을 뗐다, 캔 떨어지는 소리 없이. 동전이 반환구로 달가닥 떨어졌다, 500원짜리 두 개였다.
동전을 줍지 않았다.
시우가 자판기의 버튼을 눌렀다, 다른 걸로. 따뜻한 캔커피, 이안이 평소 뽑던 것. 캔이 떨어졌다, 시우가 캔을 꺼내 이안에게 내밀었다.
받았다.
캔이 따뜻했다, 손바닥에 온도가 번졌다. 3층 복도의 공기는 차가웠다, 난방이 일부 끊긴 시간이었다. 캔의 열이 유일한 따뜻함이었다.
"...못 끊겠어."
시우가 말했다.
이안이 캔을 내려다봤다.
"나도."
시우가 짧게 숨을 내쉬었다, 웃음인지 한숨인지 구분이 안 가는 소리였다. 자판기 위로 손을 뻗어 벽에 기댔다, 이안의 얼굴 쪽으로 기울어졌다.
"자리에 앉아도 안 읽혀서."
이안이 말했다.
"같은 줄을 세 번 읽었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31번 자리 계속 보게 되고, 펜 들고 있는 시간이 길어서 잉크가 번지고."
"..."
"잠자려고 했는데 잠도 안 오고, 눈 감으니까 형광등이 보이고, 네가 나한테 '내일부터 안 나올게'라고 한 순간이 계속 돌아오고."
말을 이렇게 길게 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나서야 알았다. 통제를 놓고 있었다, 새벽이라, 자판기 불빛이라, 시우가 앞에 있어서. 이 세 가지가 겹치면 이안은 다른 사람이 됐다.
"너도 그래?"
이안이 물었다.
"..."
"너도 잠 안 왔어?"
시우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자판기의 유리창을 봤다. 캔 음료들이 줄지어 놓여 있는 것, 자기 얼굴이 그 유리 위에 흐릿하게 비쳤다.
"안 왔어."
마침내 말했다.
"누우니까 형광등이 보여서."
"..."
"31번 자리가 보였어. 근데 12번 자리가 더 크게 보여서, 그래서 나왔어. 신청 안 했으니까 자습실엔 못 가고."
시우의 목소리가 낮았다. 건조한 톤이었다. 하지만 그 건조함 안에 이제는 다른 것이 섞여 있었다, 건조함으로 덮고 있는 무언가가.
"그래서 3층에 올라왔어."
"왜 3층."
"...몰라."
"자판기?"
"자판기 핑계."
이안이 캔을 내려다봤다. 따뜻했다, 손이 흔들리지 않았다. 아까는 손이 흔들렸다, 문제지 위에서. 지금은 캔이 따뜻해서, 아니면 시우가 앞에 있어서, 둘 중 어느 이유 때문인지 구분이 안 됐다.
"...이상한 거 같아."
이안이 말했다.
"뭐가."
"너 만나면 손이 안 떨려, 혼자 있으면 떨려."
시우가 이안의 손을 봤다. 캔을 쥔 손이었다. 검지가 캔의 둘레를 천천히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흔들리지 않았다. 평소의 이안이었다, 통제된 이안이었다.
"..."
"근데 너 만나려고 하면 성적이 떨어져. 너를 만나면 손이 떨리지 않는데 너를 만나는 자체가 손을 떨게 해. 이게 앞뒤가 안 맞아."
말하면서 이안이 자기의 말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상한데 맞았다, 앞뒤가 안 맞는 게 맞는 거였다.
"시우야."
시우가 이안을 봤다.
"이거 뭐야?"
"...아직도 그거 물어?"
"이번엔 진짜 대답해."
시우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자판기의 윙, 하는 소리가 다시 올라왔다. 복도의 불은 비상등만 켜져 있었다, 천장의 CCTV 빨간 램프가 깜박였다. 자판기와 벽 사이의 좁은 틈, 기계 옆 30센티 공간, 그 안쪽에 들어가면 카메라 각도에서 가려지는 구역이 있었다. 시우는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눈이 한 번 천장을 훑고 내려왔다.
"...중독."
시우가 말했다.
숨을 들이쉬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 이게 뭔지 모르겠는데 한 가지는 알겠어. 끊으려고 하는데 안 끊어져, 끊어야 한다는 것도 알아, 근데 못 끊어."
"..."
"그거 중독이잖아."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작게 한 번.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입 밖으로 말하고 나니까 단어가 더 무거워졌다. 중독, 이안이 평생 자신과 반대편에 두려고 했던 단어였다. 절제, 통제, 계획의 반대. 중독은 약한 사람들이 빠지는 거라고 생각해왔다, 의지가 부족한 사람들, 자기관리에 실패한 사람들.
이안은 평생 그런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살아왔다.
"...그럼 어떻게 해."
이안이 물었다.
"몰라."
시우가 짧게 말했다.
"몰라가 뭐야."
"몰라, 그냥 몰라."
대답이 아닌 대답, 그런데 이상하게 그 '몰라'가 편했다. 도현의 상담실에서는 대답이 정해져 있었다, 엄마의 전화에도 대답이 정해져 있었다. 성적표에도, 게시판에도, 이안의 1일 계획표에도, 모든 것이 '이렇게 해야 한다'고 정해져 있었다.
시우의 '몰라'는 청람관에서 이안이 들은 가장 솔직한 말이었다.
시우가 몸을 움직였다.
자판기의 왼쪽으로, 벽 사이의 좁은 틈으로. 이안의 팔을 잡아당기지 않고 이안이 따라오기를 기다렸다. 이안이 한 걸음 옮겼다, 두 걸음. 자판기 옆, 기계의 몸통과 복도 벽 사이의 30센티 공간 안으로 들어갔다. 서로의 어깨가 닿을 듯 말 듯한 거리였다.
CCTV의 각도에서는 이 틈의 안쪽이 보이지 않는다. 시우가 확인한 게 그거였다.
이안은 자판기의 옆면에 손을 댔다, 기계가 내는 진동이 손바닥으로 전해졌다. 시우의 손이 이안의 손 옆에 자리 잡았다. 자판기의 금속 옆면에 두 손이 나란히 놓였다.
시우가 자기의 손을 이안의 손 쪽으로 옮겼다. 옮기는 게 아니라 미끄러뜨리듯. 새끼손가락이 이안의 새끼손가락에 닿았다, 그게 먼저였다. 그다음에 약지, 중지, 검지. 손가락이 하나씩 포개졌다, 손바닥이 손등에 닿기까지는 3초쯤 걸렸다.
이안이 숨을 멈췄다.
시우의 손이 이안의 손을 감싸 쥐었다. 완전히가 아니라 절반쯤, 힘이 들어가 있지 않았다. 꽉 쥐는 게 아니라 얹어놓는 것이었다.
자판기가 윙, 소리를 냈다, 복도는 조용했다. 3층의 이 시간, 이 구석, 이 틈. 청람관에서 유일하게 이안과 시우가 의도적으로 손을 포갠 장소였다.
의도적.
그 단어가 이안의 머리 안에 남았다. 옥상에서 시우가 이안의 머리카락을 넘겨줬을 때는 그게 우연인지 의도인지 경계선이 모호했다. 자습실에서 펜을 건넬 때 손끝이 닿은 것은 사고였다. 며칠 전에 이안이 시우의 손목을 잡은 것은 감정의 과잉이었다.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은 두 사람이 이 자판기 뒤로 와서 CCTV 각도를 피해서 손을 포갰다. 이것은 사고가 아니고 과잉이 아니고 우연이 아니었다, 의도였다.
그 의도에 이안의 이름이 들어가 있었다.
"..."
"..."
둘 다 말하지 않았다. 자판기의 진동, 복도 끝에서 먼 공조기 소리. 시우의 손이 따뜻했다, 3층 복도의 공기는 차가웠지만 시우의 손은 따뜻했다. 체온이 있다는 것이 이렇게 분명하게 느껴진 적이 있었나.
2분쯤 지났을 것이다, 정확히는 모르겠다. 시우가 먼저 손을 뺐다.
"가야 돼."
"..."
"1시 15분 지났어, 감독관 교대 끝났을 거야."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손이 갑자기 차가워지는 걸 느꼈다. 시우의 손이 없어지자마자 온도가 빠져나갔다. 손을 쥐었다, 온도를 가두려는 것처럼.
자판기 옆 틈에서 나왔다. 복도로, CCTV 각도 안으로. 두 사람은 이제 다시 학생 둘이 우연히 자판기 앞에 서 있는 장면이 됐다. 그 전과 후의 차이를 CCTV는 기록하지 못한다.
"먼저 가."
시우가 말했다.
"너는."
"나 5분 있다 갈게, 같이 내려가면 의심 사."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섰다. 계단 쪽으로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째에 이안이 시우 쪽을 돌아봤다.
시우는 자판기 앞에 그대로 서 있었다. 이안이 준 캔을 아직 손에 들고 있지 않았다, 자기 캔은 뽑지 않았다. 처음부터 목이 마르지 않았던 것이다.
눈이 마주쳤다.
시우가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안이 돌아섰다, 계단을 내려갔다.
2층 복도.
계단참을 돌았다, 심장이 아직 뛰고 있었다. 평소보다 빨리, 손 안쪽에 시우의 온도가 있었다. 그 온도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해서 손을 쥐었다.
그 순간 1층에서 2층으로 올라오는 계단 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몸이 굳었다.
발소리는 천천히, 규칙적으로 들렸다. 감독관의 걸음이 아니었다, 감독관의 걸음은 신발 소리가 묵직했다. 이건 가벼운 슬리퍼 소리, 여학생이었다.
계단 모퉁이에 하린이 서 있었다.
얼굴이 반쯤 잠이 덜 깬 채였다. 학원복 위에 모포처럼 생긴 카디건을 걸쳤다, 머리가 부스스했다. 이안을 보고 있었다.
"...언니?"
하린이 말했다.
이안이 대답하지 못했다.
"언니 화장실 간다고 했잖아, 30분 넘었어."
"...잠이 안 와서."
"화장실은 우리 층이잖아."
"..."
"왜 2층에 있어?"
이안의 입이 벌어졌다, 대답이 준비돼 있지 않았다. 평소의 이안이었다면 거짓말이 이미 입에서 나와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손 안쪽에 아직 시우의 온도가 남아 있어서 머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언니."
하린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위에서 내려왔지."
"..."
"3층에서."
이안이 말하지 못했다.
하린의 눈이 이안의 어깨 너머 계단 위쪽을 한 번 봤다. 3층 방향, 어두운 계단, 위쪽은 불이 꺼져 있었다. 하린이 다시 이안을 봤다. 하린은 시우가 올라오고 있는지 아닌지는 모를 것이다, 하린이 올라온 타이밍이 이안이 계단을 내려오는 순간과 겹쳤으니까. 하지만 이안이 3층에서 내려왔다는 것은 봤을 수 있다, 봤을 가능성이 높다.
하린이 입을 열려다가 닫았다.
"...일단 방으로 가자."
작게 말했다.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린이 먼저 돌아서서 4층 계단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안이 그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의 슬리퍼 소리만 복도에 떨어졌다.
올라가면서 이안은 3층 쪽을 돌아보지 않았다.
시우가 아직 자판기 앞에 서 있을까. 그 질문을 삼켰다, 하린이 옆에 있었다.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하린이 자기 침대에 앉았다, 이안이 자기 침대에 앉았다. 두 사람 사이에 조그만 탁상, 그 위에 하린의 물병, 이안의 시계가 놓여 있었다.
1시 28분이었다.
하린이 한참 말하지 않았다, 이안도 말하지 않았다. 하린이 먼저 숨을 내쉬었다.
"...언니."
"응."
"나 아무것도 안 봤어."
이안이 고개를 들었다.
하린이 이안을 보고 있었다. 잠이 덜 깬 얼굴이었지만 눈은 맑았다, 생각보다 맑았다.
"지금 말이야, 위에서 언니가 내려오는 거. 난 화장실 가려고 나온 거였고 언니가 계단에서 내려오는 것만 봤어. 3층인지 2층인지는 정확히 안 봐, 복도 불 꺼져 있었잖아."
"..."
"내일 되면 나 기억 안 나, 잠결이었으니까."
하린의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평소의 밝은 톤이 아니었다, 낮고 천천히 말했다.
"근데 언니."
"...응."
"편의점 빵 말이야, 침대 밑에 있던 거."
이안의 숨이 걸렸다.
"그거 언니가 산 거 아니잖아, 그치."
"..."
"누가 주더라도 언니가 받을 사람이 아닌데, 받았잖아. 먹기까지 했고."
하린의 말이 차분했다. 추궁하는 톤이 아니었다, 사실을 나열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피할 곳이 없었다.
"하린아."
"응."
"...너 뭐 물어보고 싶어?"
이안이 말했다, 자신도 놀랐다. 지금 말고 물러날 수 있었다, '잠결이었다며'라고 받고 덮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 피곤했다, 더 숨길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하린이 잠깐 말을 고르는 것 같았다.
"...언니, 지금 무슨 일 있어?"
부드러운 질문이었다. 정확한 질문이기도 했다. 하린은 '누구냐'고 묻지 않았다, '언제부터냐'고도 묻지 않았다. 물어야 할 것의 순서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가장 안쪽부터.
이안이 숨을 한 번 내쉬었다.
"...모르겠어."
말하고 보니 그게 가장 정확한 답이었다.
"정말 모르겠는 거야, 아니면 말하기 싫은 거야?"
"...둘 다."
하린이 작게 웃었다, 웃음 끝에 한숨이 섞였다.
"언니, 나 언니 편이야. 그건 알지?"
"알아."
"근데 언니가 지금 잘못되면 나 혼자 못 버텨, 이 방에서."
이안이 하린을 봤다.
하린의 눈에 이 순간 처음 보이는 것이 있었다. 잠결의 부드러움 밑에 걱정, 진짜 걱정이었다. 이 방에서, 이 학원에서, 오늘 새벽 2시에, 자기가 눈을 떴는데 옆 침대가 비어 있었을 때 느낀 그 종류의 걱정이었다.
"...미안."
이안이 말했다.
"미안하지 마, 나 화내는 거 아니야."
"알아, 근데 미안해."
손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시우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하린이 있어서였다. 누군가가 이안의 새벽에 대해 걱정하고 있어서, 그 걱정이 엄마의 전화와 다른 종류여서, 상담사의 상담과 다른 종류여서. 순수하게 옆 침대가 비어 있었다는 이유로 걱정하는 사람이 있어서였다.
"...하린아."
"응."
"나 요즘 내가 누군지 잘 모르겠어."
이안이 말했다. 목소리가 갈라지지 않았다, 울지도 않았다. 단어를 하나씩 내려놓는 것처럼 말했다.
"1등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거든. 근데 7등이 돼 보니까...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더라고. 여전히 나는 나인데 숫자만 바뀌었어. 근데 내가 익숙하지 않은 '나'야, 내가 아는 나가 아니야."
하린이 듣고 있었다.
"그리고 새벽에 자꾸 나와. 잠이 안 오는 게 아니라 자려고 하면 발이 문 쪽으로 가. 내가 원해서 나가는 건지 몸이 시키는 건지 모르겠어."
"..."
"그게 무서워, 내가 나를 통제 못 하는 게."
침묵이 방 안에 내려앉았다, 난방 파이프가 틱, 하고 식었다.
하린이 작게 숨을 내쉬었다.
"언니."
"응."
"언니는 지금 너무 혼자야."
하린이 말했다. 그 문장이 이안의 안쪽에 가서 닿았다. 익숙한 단어들인데 익숙하지 않은 조합이었다. 너무 혼자, 청람관의 기숙 1등이었던 사람에게 누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나. 엄마도, 도현도, 선생들도 안 했다, 그 단어를 쓰는 게 금지된 것처럼.
이안의 눈이 젖었다. 고개를 숙였다, 얼굴을 두 손으로 가렸다.
"안 울어도 돼."
이안이 손 안에서 말했다.
"울어도 돼."
하린이 말했다.
"여기 CCTV 없잖아."
그 문장을 이안은 어디서 들어봤다. 두 달 전, 야간자습실 12번 자리, 새벽 1시 반. 한 사람이 캔커피를 놓고 갔다, 비슷한 말을 했다.
하린의 입에서 그 문장이 나왔다. 하린이 시우의 말을 알 리 없었다.
이안이 고개를 들었다, 눈물이 한 줄 떨어졌다. 닦지 않았다, 하린을 봤다.
"...고마워."
"언니가 '고마워' 하는 거 진짜 오랜만인데."
하린이 웃었다, 자기 침대에서 베개를 끌어당겨 안았다.
"자자, 지금 더 얘기하면 나도 운다."
"...응."
불이 꺼졌다. 이안이 누웠다, 천장을 봤다. 이번에는 형광등이 보이지 않았다, 하린의 숨소리가 들렸다, 평소보다 느리게. 하린이 자는 척하는 건지 진짜 자는 건지 몰랐다, 어느 쪽이어도 괜찮았다.
손 안쪽에 아직 시우의 온도가 남아 있었다.
눈을 감았다.
'중독.'
그 단어를 속으로 발음했다, 두 번, 세 번.
청람관의 이안은 중독된 적이 없었다. 커피에도, 게임에도, SNS에도. 모든 것을 시간표대로 통제했다, 감정도, 수면도, 식사도, 야간자습도.
그런 사람이 이제는 새벽 1시에 3층 자판기 뒤에서 한 사람의 손 위에 손을 포개는 것을 원하고 있었다. 그게 얼마나 위험한지 알면서도 원하고 있었다. 성적이 떨어지고 있는데도, 도현이 눈치채고 있는데도, 하린이 방금 이안이 3층에서 내려오는 것을 봤는데도.
'못 끊겠어.'
시우의 말이었다, 이안의 말이기도 했다.
성적이 그리는 하강 곡선과 감정이 그리는 상승 곡선이 엇갈려 가는 방향으로 이미 너무 멀리 와 있었다. 중간 지점에서 돌아갈 수 있는 자리를 지나버린 것 같았다.
그래도 눈은 감았다.
이번에는 잠이 올 것 같았다, 손이 따뜻했으니까.
하린이 아래 침대에서 한 번 더 작게 숨을 내쉬었다. 그 숨이 잠이 든 사람의 숨이 아니라는 걸 이안은 알았다, 알았지만 아무 말 하지 않았다. 하린이 깨어 있어주는 것이 오늘은 더 견딜 만했다.
천장 어딘가에 새벽 4시 무렵까지 두 사람의 호흡이 어긋난 채로 흘렀다.
이안의 책상 위에는 풀다 만 수학 문제집이 그대로 펼쳐져 있었다. 30번 단답형 자리, 답란이 비어 있었다.
그 빈 답란을 누군가 채우게 될지, 아니면 끝까지 비어 있을지, 이안은 더 이상 자기 손으로 결정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다만 손이 따뜻한 채로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