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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자습

5화 체온

토요일 아침은 청람관에서 유일하게 고요한 시간이다.

주중의 기상 벨이 없었다. 대신 8시에 조식이 열리고 오전 자습이 시작된다. 토요일 오후에는 성적 상위 10명에게 4시간의 외출이 허용된다. 그 4시간이 일주일을 견디게 해주는 학생들이 있었다.

이안은 외출 대상이었다. 이번 주 모의고사에서 395점, 4위였다. 지난주보다 5점 떨어졌고 1위와의 거리는 더 벌어졌다. 외출 대상이라는 사실이 위안이 되어야 했는데 되지 않았다.

외출 명단이 게시됐다, 이안의 이름 옆에 '외출 가능' 표시가 있었다.

"언니, 나가?"

하린이 물었다. 하린은 중위권이라 외출 대상이 아니었다.

"아니."

"왜? 밖에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와. 맛있는 거라도 먹고."

"공부할 거야."

하린이 이안을 봤다. 무슨 말을 하려다 삼켰다.

진짜 공부할 생각이었다. 외출 4시간이면 수학 기출 모의고사 2회분을 풀이할 수 있다. 미적분 한 회분, 확통 한 회분. 효율적인 선택이다. 밖에 나가봤자 학원 앞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시고 돌아올 뿐이다.

'시우는 나가지 않겠지.'

생각이 스치자마자 밀어냈다. 시우와 상관없다, 공부를 해야 하니까 안 나가는 거다.


오후 1시, 토요일 외출 시간이 시작됐다.

복도에서 외출 가능한 학생들이 옷을 갈아입고 로비로 내려갔다. 외출 명단은 이 건물의 약 5퍼센트였다. 그 5퍼센트가 빠지자 청람관 안이 평소보다 한산했다. 책상 사이의 빈자리가 띄엄띄엄 도드라졌고 복도의 발소리가 옅어졌다. 남은 학생들은 대부분 방에 있거나 자습실에 있었다.

이안은 자습실에 내려갔다. 지하 1층, 평소 야간에만 오던 곳이었다. 낮에 보니 다른 공간처럼 느껴졌다. 형광등은 똑같이 켜져 있었지만 창문 높은 곳에서 오후의 햇빛이 비스듬히 들어왔다, 먼지가 빛 속에서 떠다녔다.

12번 자리에 앉았다. 문제지를 펼쳤다, 수학 미적분이었다.

10분 후 계단을 내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느리고 가벼운 발소리였다. 고개를 들지 않았다, 들지 않아도 알았다.

시우가 31번 자리에 앉지 않았다. 이안의 맞은편, 13번에 앉았다.

"외출 안 나가?"

"나가면 뭐해."

"밖에 나가면 사람 사는 세상이 있어."

"여기도 사람 사는 데야."

시우가 피식 웃었다. "여기가?"

펜을 내려놓지 않은 채, 문제를 풀면서 풀리지 않으면서 말했다.

"공부해."

"넌 왜 안 나갔어."

"공부해야 하니까."

"거짓말."

"...또 그래."

"또 맞으니까."

펜을 내려놓았다, 시우를 봤다. 시우는 팔짱을 끼고 의자에 기대 앉아 있었다. 검정 후드집업에 머리카락이 눈을 반쯤 가린 채였다.

"넌 왜 안 나갔어."

"나가면 뭐해, 밖에 돌아다녀봤자."

"외출 대상이잖아."

"대상이라고 꼭 나가야 하는 건 아니잖아."

시우의 목소리에는 아무런 감정이 실려 있지 않았다. 나갈 수 있는데 안 나가는 사람, 1등을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사람. 다만 이안은 이제 알고 있었다, 그 무관심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자습실에 두 사람만 있었다.

감독관도 없고 다른 학생도 없고 15분이라는 시간 제한도 없었다. 토요일 오후의 텅 빈 자습실, 처음으로 두 사람에게 주어진 제한 없는 시간이었다.

"30번 풀이 한 번 더 보여줘."

이안이 말했다.

시우가 눈을 깜빡였다. "...갑자기?"

"지난번 모의고사 30번. 선택 단답형, 자연수 답. 네가 짚어준 분기 말고 처음 식을 어디서 세웠는지 궁금해."

"넌 토요일 오후에도 수학이야."

"당연하지."

시우가 한숨을 쉬었다. 다만 이안의 문제지를 가져다 여백에 짧게 적기 시작했다. 식을 처음부터 끌지 않았다, 두 줄, 그 사이에 화살표, 그 위에 작은 글씨로 '여기 보기 먼저 안 봐'.

"이 문항 변형, 작년 9평 27번에서 본 적 있어. 그때도 보기 먼저 보면 시간이 죽었어. 보기 다음에 표가 있는데, 표 안 줄 보고 거꾸로 가는 게 더 빨라. 그래서 이번에도 보기 안 봤어."

"그래서 시간 안 죽고 답이 자연수로 떨어진 거야."

"응."

이안은 그 풀이를 지켜봤다. 군더더기가 없었다. 4단계 정공 풀이를 시우는 두 줄로 갈음했다, 시우의 수학은 식이 아니라 풀이 경로의 기억이었다. 작년 시험의 어느 변형이 어디서 시간을 잡아먹는지 외워두고 있다가 비슷한 구조가 나오면 한 번에 분기를 친다, 그게 시우 쪽 우위였다.

이안이 펜으로 가리켰다.

"이거 너 작년 9평에서 27번 틀렸어?"

"...틀렸지."

"틀려본 사람이 두 번째에는 그 길로 안 가는 거구나."

"그건 그래."

"...넌 진짜 나보다 잘해."

이안이 말했다, 처음으로 입 밖에 내는 인정.

시우의 손이 멈췄다. 이안을 봤다.

"잘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닌데."

"나한테는 중요해."

"그러니까 네가 힘든 거야."

대답하지 못했다. 시우의 말이 너무 정확해서였다. 잘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힘들다, 1등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힘들다. 그걸 알면서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더 힘들다.

문제지 위에 시우의 글씨와 이안의 글씨가 섞여 있었다. 삐뚤빼뚤한 것과 반듯한 것, 압박 속의 해석과 깔끔한 계산. 두 사람의 수학이 한 페이지 위에 나란히 있었다.


오후 3시, 자습실에서 두 시간을 보냈다.

수학 풀이가 끝나고 국어 기출로 넘어갔을 때 시우가 일어섰다.

"어디 가."

"옥상."

"...낮에?"

"낮에도 잠겨 있어. 괜찮아."

따라가지 않으려 했다. 문제지가 펼쳐져 있고 풀어야 할 문항이 남아 있고 시간은 유한하다.

시우가 계단 입구에서 돌아봤다. 말하지 않았다, 그냥 봤다.

이안이 일어났다.

5층 옥상. 낮의 옥상은 밤과 달랐다. 콘크리트가 마르고 따뜻해져 있었다. 하늘은 회색이었지만 밤보다 밝았다. 주변의 낮은 건물들이 한눈에 보였다. 멀리 서울 방향의 아파트 단지, 그 너머 희미한 산 윤곽이 보였다. 10월 중순의 오후 햇빛이 옥상 끝의 난간에 묽게 걸려 있었다.

시우가 난간에 기대섰다.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지 않고 입에 물었다.

이안은 시우에게서 2미터 떨어진 곳에 섰다. 항상 이 거리, 이안이 설정한 물리적 경계였다.

"형 이야기 해줄까."

시우가 뜬금없이 말했다.

"...형?"

"우리 형, 시현이 형." 하늘을 올려다봤다. "서울대 경영, 아버지의 자랑, 집안의 빛, 뭐 그런 거."

이안은 기다렸다.

"형은 완벽했어. 내신 1등급, 수능 만점에 가까운 점수, 수석 비슷한 거. 아버지가 원하는 걸 다 해냈어. 그래서 나도 그래야 했지. 형이 못 가본 학부, 의대로."

담배를 입에서 뗐다, 손가락으로 돌렸다.

"근데 형이 다 해놨으니까 나는 안 해도 되는 줄 알았어. 형이 아버지 기대를 다 충족해줬잖아, 나까지 할 필요 없잖아."

"그런데."

"그런데 안 해도 되는 거랑 안 해서 괜찮은 거랑은 다르더라."

시우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바람이 불었다, 10월 중순의 시원한 바람이 두 사람의 머리카락을 흩뜨렸다. 영하는 아니었다, 다만 후드 지퍼를 끝까지 올리고 싶어지는 정도의 바람이었다.

"형이 잘하면 잘할수록 나는 투명해졌어. 아버지 눈에 안 보이는 사람이 됐어. 잘해도 형만큼은 안 되고, 못하면 왜 못하냐고. 그래서 아예 안 하기로 했어. 안 하면 비교를 안 당하니까."

이안은 시우의 옆얼굴을 봤다. 바람에 머리카락이 걷히면서 왼쪽 귀의 흉터가 보였다. 하얗고 얇은 선이었다, 그 흉터의 의미를 묻지 않았다, 아직은.

"...그래서 일부러 시험을 망쳤어?"

"처음엔 진짜 공부를 안 했어. 그다음엔 일부러 망쳤어. 올해는 적당히. 2등이면 아버지가 포기는 안 하는데 만족도 안 하잖아, 그 애매한 자리. 견딜 만한 자리."

"애매한 게 편해?"

"편하진 않아. 그냥, 견딜 만한 거지."

그 말이 자신에게도 해당된다는 걸 알았다. 1등이 편한 게 아니라 견딜 만한 것, 야간자습이 효율적인 게 아니라 견딜 만한 것. 새벽 1시에 시우와 이야기하는 것이 견디는 것이 아니라 숨 쉬는 것이었다.

바람이 한 번 더 세졌다. 이안이 어깨를 움츠렸다. 학원복 위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올라왔다, 영하는 아니지만 옥상의 바람은 안과 달랐다.

시우가 후드집업 지퍼를 내렸다. 벗었다, 이안의 어깨에 걸쳤다.

"추울 텐데."

"안에 긴팔 입었어, 괜찮아."

후드집업이 시우의 체온을 머금고 있었다, 따뜻했다. 거부해야 했다, "괜찮아, 나도 안 추워"라고 말해야 했다. 이안의 시스템은 타인의 도움을 받는 것을 약함으로 규정한다.

거부하지 않았다.

후드집업을 어깨 위에서 여몄다. 시우의 냄새가 났다. 섬유유연제와 비누, 그리고 시우의 냄새였다.

시우가 이안을 봤다. 이마에 머리카락 한 가닥이 바람에 날려 눈 위에 걸려 있었다. 시우의 손이 움직였다. 손가락으로 그 머리카락을 넘겼다, 귀 뒤로 가볍게.

이안이 숨을 멈췄다.

시우의 손가락이 관자놀이를 스쳤다. 0.5초, 그 0.5초 동안 세계가 정지했다. 형광등 소리도, 엄마의 목소리도, 성적 게시판의 빨간 화살표도, 장학 라인 그래프도 전부 사라졌다.

시우가 손을 내렸다, 아무 일 아닌 것처럼.

"들어가자, 더 있으면 시려."

고개를 끄덕였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돌아서는 순간 손끝이 스쳤다. 시우의 손과 이안의 손이었다. 이번에는 움츠리지 않았다.


저녁, 기숙사 방.

침대에 앉아 문제지를 보고 있었다. 시우의 풀이가 적힌 여백, 삐뚤빼뚤한 글씨였다. 풀이가 아닌 다른 것을 읽고 있었다.

하린이 샤워를 마치고 들어왔다.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면서 이안의 침대 아래를 봤다.

"언니."

"응."

"이거 뭐야."

하린이 침대 밑에서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 비닐 봉지, 편의점 빵 봉지, 크림빵을 먹고 남은 빈 봉지였다.

이안의 손이 멈췄다.

"언니 편의점 안 가잖아. 자판기 커피 빼고는."

"...아, 그거. 자판기 옆에 있던 거 주운 거야."

"빵을 왜 주워."

"배고파서."

하린이 빵 봉지를 이안에게 돌려주지 않고 쳐다봤다. 평소의 밝은 표정이 아니었다, 이안을 관찰하는 눈이었다.

"요즘 누가 뭐 갖다 주는 거 아니야?"

"무슨 소리야."

"아니면 좋고."

빵 봉지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자기 침대에 누우며 말했다.

"언니, 나 바보 아니거든. 그냥 말해두는 거야."

이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문제지를 덮고 불을 끄고 누웠다.

어둠 속에서 하린의 숨소리가 들렸다. 잠들지 않은 숨소리였다, 다만 더 묻지 않았다.

어깨에는 아직 시우의 후드집업이 걸려 있었다. 방에 돌아오면서 벗지 않은 것을 하린이 봤을 수도 있고 안 봤을 수도 있다.

후드집업을 벗어 접었다, 베개 옆에 놓았다.

시우의 체온이 천에서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 온기가 사라지기 전에 손을 올렸다. 천의 표면, 아직 미지근한.

'이러면 안 돼.'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손을 거두지 않았다.

하린의 눈이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상담사의 모니터에 이름이 겹치고 있었다, 빵 봉지 하나가 증거가 될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조여오고 있었다.

그런데 시우의 손가락이 머리카락을 넘겨줬을 때의 감각이 관자놀이에 남아 있었다. 0.5초의 접촉, 그것이 24시간을 지배하고 있었다.

'체온이야.'

이안은 생각했다, 이 학원에서 유일하게 따뜻한 것이라고.

눈을 감았다. 이번에는 잠이 왔다, 오랜만에. 시우의 후드집업을 손으로 잡은 채였다.

다만 아래 침대에서 하린은 잠들지 않고 있었다. 천장을 보고 있었다, 이안이 잠든 뒤에도 한참을.

천장 어딘가에 평소 보이지 않던 작은 물건이 있었다, 하린은 그 형광등의 끝자락을 본 게 아니라 그 너머를 보고 있었다.

자기가 어디까지 모른 척해줘야 하는지, 어디까지가 막아야 하는 일인지, 답이 아직 없었다. 하린은 답이 없을 때는 일단 묻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게 하린이 사람을 지키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천장만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