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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자습

4화 경계선

발소리가 4층에서 멈췄다.

이안은 숨을 죽였다. 시우의 손이 이안의 팔을 잡아 벽 쪽으로 끌었다. 반대편 비상계단, 5층과 4층 사이. 콘크리트 벽이 등에 닿았다. 차가웠다. 시우의 손은 더 차가웠다.

발소리가 다시 움직였다. 아래로. 4층 비상구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 삐걱. 쾅.

멀어졌다.

이안은 3초를 더 기다렸다가 숨을 내쉬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벽에 기대지 않았으면 주저앉았을 것이다.

"…누구야."

"몰라. 야간자습 학생인 듯." 시우가 이안의 팔을 놓았다. "4층에서 돌아갔으니까 옥상까지는 안 온 거야."

"안 온 거지?"

"안 왔어."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이면서도 심장이 가라앉지 않았다. 적발되지 않았다. 아무도 옥상에 두 사람이 있었다는 걸 모른다. 괜찮다.

'괜찮은 게 아니야.'

야간자습 이탈. 이성 학생과 단둘이 옥상. 새벽 1시. 이 중 하나만 걸려도 퇴원이다. 세 개를 동시에 저질렀다.

시우가 먼저 계단을 내려갔다. 이안이 뒤를 따랐다. 3층에서 갈라졌다. 시우는 남자 층으로, 이안은 여자 층으로. 아무 말 없이. 복도에서 눈이 마주쳤다가 갈라졌다.

방에 돌아왔다. 하린은 자고 있었다. 이불 속에서 고른 숨소리가 들렸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봤다.

잠이 오지 않았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아까 시우의 손을 잡았던 손. 시험지를 들었던 손. 비상계단에서 벽을 짚었던 손.

'들킬 뻔했어.'

그 문장이 머릿속에서 반복됐다. 들킬 뻔했어. 들킬 뻔했어. 들킬 뻔했어.

그런데 — 그 공포 아래에 다른 감각이 있었다. 시우의 손이 팔을 잡아당겼을 때의 힘. 벽 쪽으로 끌려갈 때 코끝에 스친 시우의 냄새.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의 후드집업에서 나는, 섬유유연제와 찬바람이 섞인 냄새.

'이러면 안 돼.'

눈을 감았다. 감아도 잠은 오지 않았다.

새벽 4시까지 천장을 보다가, 5시에 겨우 눈이 감겼다. 6시 30분 기상벨이 울렸을 때 이안의 눈 밑은 전날보다 더 짙었다.


오후 2시. 자습 시간.

핸드폰이 진동했다. 청람관은 수업 시간 핸드폰 수거지만, 오후 자습 시간에는 사물함에서 꺼낼 수 있다.

화면에 '엄마'.

위장이 뒤틀렸다. 이안은 핸드폰을 들고 복도로 나왔다. 빈 교실 하나를 찾아 들어갔다. 문을 닫았다.

"여보세요."

"이안아."

엄마의 목소리는 평소와 같았다. 차분하고 정돈된 목소리. 하지만 이안은 알고 있었다. 이 목소리가 가장 무서운 목소리라는 걸.

"상담 선생님한테 전화 왔어."

"…네."

"성적이 떨어졌다고. 3주 연속."

"컨디션이—"

"이안아." 엄마가 말을 잘랐다. "엄마는 네가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했지?"

"…네."

"근데 8점이 떨어진 건 최선이 아니잖아."

대답하지 못했다. 엄마의 말은 비난이 아니었다. 실망도 아니었다. 사실이었다. 8점은 최선이 아니다. 1등에서 3등으로 떨어진 건 최선이 아니다.

"야간자습을 줄이래. 수면 부족이 원인이래. 네 생각은 어때?"

'야간자습을 줄이면 시우를 못 만나.'

그 생각이 떠올랐을 때 이안은 자기 자신에게 소름이 돋았다. 성적이 떨어진 이유를 묻는 엄마 앞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게 '시우를 못 만난다'였다.

"줄일게요."

"그래. 엄마는 네가 알아서 잘할 거라 믿어. 항상."

전화가 끊겼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빈 교실 창밖을 봤다. 12월의 오후. 하늘이 회색이었다. 학원 건물 너머로 대치동 학원가의 간판들이 보였다.

'항상 믿는다.'

그 말이 "실망이야"보다 더 무거웠다. 믿는다는 말 뒤에는 항상 조건이 붙어 있었다. 네가 1등이니까 믿는다. 네가 최선을 다하니까 믿는다. 네가 흔들리지 않으니까 믿는다.

화장실로 갔다. 세면대 물을 틀었다. 물소리가 타일 벽에 울렸다. 양손으로 세면대 가장자리를 잡았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물소리에 묻어 아무도 듣지 못할 만큼 작은 숨소리를 냈다. 울음이 아니었다. 울지 않았다. 그냥 —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아서. 그것뿐이다.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봤다. 다크서클이 눈 밑에서 광대뼈까지 내려와 있었다. 입술이 갈라져 있고, 눈이 충혈돼 있었다.

'이게 최선을 다하는 얼굴이야?'

수도꼭지를 잠갔다. 얼굴을 닦고 교실로 돌아갔다.


그날 야간자습 1차가 끝나고,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3층 복도. 자판기 앞을 지나가는데 — 자판기 위에 무언가가 올려져 있었다.

편의점 빵. 크림빵. 비닐 포장 위에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도 없었다. 복도가 비어 있었다.

빵을 집어 들었다. 뒤집어봤다. 유통기한은 내일까지. 오늘 산 것이다.

'누가.'

시우.

확신은 없었다. 증거도 없었다. 하지만 알았다. 이안이 점심을 반도 못 먹는 걸 본 사람. 밥을 제대로 삼키지 못하는 걸 아는 사람. 그런 것을 말하지 않고 빵 하나를 올려놓고 가는 사람.

치우려고 했다. 받으면 안 된다. 이건 선을 넘는 일이다. 야간자습에서 15분 동안 이야기하는 것과, 빵을 주고받는 것은 다르다. 눈에 보이는 흔적이 남는다.

비닐을 뜯었다.

먹었다.

크림이 달았다. 목에서 내려갔다. 오늘 하루 제대로 삼킨 첫 번째 음식이었다.


새벽 1시 4분.

야간자습실. B1. 형광등이 지이이, 울었다.

이안은 12번 자리에 앉아 있었다. 상담사가 줄이라고 했다. 엄마도 줄이라고 했다. 그런데 여기 있었다.

31번 자리에 시우가 있었다.

감독관이 나갔다. 발소리가 멀어졌다. 15분.

시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13번에 앉았다. 이안의 맞은편.

"빵 먹었어?"

"…네가 놓은 거야?"

"아니."

"거짓말."

시우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거짓말인지 어떻게 알아."

"아니까."

침묵이 흘렀다. 형광등 소리. 난방 파이프의 우르릉.

"우리 이거 뭐야."

시우가 말했다. 형광등을 올려다보며. 이안을 보지 않고.

이안의 심장이 멈췄다가 다시 뛰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닌 게 매일 새벽에 만나?"

"만나는 게 아니라 같은 시간에 자습하는 거야."

"그리고 같은 시간에 이야기하고, 같은 시간에 옥상에 올라가고, 같은 시간에 손을 잡고."

대답하지 못했다. 시우의 말은 사실이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 하지만 인정하면 — 인정하는 순간 이것은 '감정'이 되고, 감정은 '관계'가 되고, 관계는 이 학원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 된다.

"…그렇다고 치자."

시우가 말했다. 이안을 보지 않은 채.

"뭘."

"아무것도 아닌 거. 그렇다고 치자."

이안은 시우의 옆얼굴을 봤다. 형광등 아래에서 시우의 표정은 무심했다. 하지만 그 무심함이 예전과 달랐다. 예전의 무심함은 진짜 무관심이었다. 지금의 무심함은 — 참고 있는 것이었다.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었다. '아무것도 아니야'가 거짓말이라는 걸. '그렇다고 치자'가 양보라는 걸. 아직 이름을 붙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서로를 지킬 수 있다는, 근거 없는 믿음.

시계를 봤다. 1시 14분.

"감독관 와."

이안이 말했다.

시우가 일어나 31번으로 돌아갔다. 평소와 같은 걸음. 느리고 무심한 걸음.

문제지를 보며 펜을 잡았다. 풀리지 않았다. 15분 전에도 풀리지 않았고, 15분 후에도 풀리지 않을 것이다.


야간자습이 끝났다. 새벽 2시.

B1 계단을 올라와 1층 로비를 지나갔다. 시선이 상담실 쪽으로 갔다.

불이 켜져 있었다.

새벽 2시에 상담실에 불이 켜져 있는 건 이상했다. 상담사 김도현의 근무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다. 야간에 상담실을 쓰는 건 특별한 경우뿐이다.

그냥 지나가야 했다. 하지만 발이 멈췄다. 상담실 문의 유리창 — 불투명 유리지만 빛은 통과하는 — 너머로 김도현의 실루엣이 보였다.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다.

문 옆에 섰다. 문이 1센티미터 열려 있었다.

모니터 화면이 보였다. 야간자습 2차 출석 기록. 날짜별 명단.

12월 2일 — 서이안, 한시우 12월 3일 — 서이안, 한시우 12월 4일 — 서이안, 한시우 12월 5일 — 서이안, 한시우

매일. 같은 두 이름이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다. 다른 학생들은 들어왔다 나가고, 교대하고, 빠지기도 했다. 이 두 이름만 매일 빠짐없이.

도현이 마우스를 움직였다. 화면이 스크롤됐다. 더 이전 날짜로. 11월부터의 기록. 이안과 시우의 이름이 매일 겹쳐 있었다.

소리 없이 물러났다. 심장이 목까지 뛰었다.

'알고 있어.'

'상담사가 알고 있어.'

'아직 확신은 아닐 수도 있어. 같은 시간에 자습하는 게 잘못은 아니니까. 하지만—'

발소리를 죽이며 복도를 걸었다. 계단을 올라가 여자 층으로. 방.

침대에 누웠다. 하린이 뒤척이다 조용해졌다.

천장의 어둠을 봤다.

'경계선이 있어.'

넘으면 돌아올 수 없는 선. 지금까지는 그 선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걸어왔다. 아무것도 아닌 척. 자습하는 사이인 척. 손이 닿은 적 없는 척.

하지만 상담사가 기록을 보고 있다. 패턴을 읽고 있다. 이 학원에서 패턴은 곧 증거다.

'그만둬야 해.'

'야간자습을 줄여야 해.'

'시우를 만나지 말아야 해.'

그런데 — 눈을 감으면 크림빵의 단맛이 떠올랐다. 시우가 "우리 이거 뭐야"라고 물었던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다고 치자"라는 말의 무게가 가슴 위에 올라와 있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잖아.'

'아무것도 아닌 게 왜 이렇게 무거운 건데.'

잠이 오지 않았다.

형광등 소리 대신 어둠이 있었다. 난방 파이프 소리 대신 하린의 숨소리가 있었다. 그리고 이안의 머릿속에는 — 상담실 모니터 위에 나란히 찍힌 두 이름이 떠나지 않았다.

서이안, 한시우. 서이안, 한시우. 서이안, 한시우.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자리.

'아무것도 아닌 것들은 기록에 남지 않아.'

이안은 알고 있었다.

이것은 이미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