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5일 금요일 오전 9시 20분. 4인실 책상 위에 봉투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이안이 봉투를 보면서 5분째 손을 대지 않고 있었다. 봉투 안에 평가원 수능 성적표가 들어 있었다. 9시 정각 평가원 공식 발표 직후 학원 사무실이 학생 성적표를 한꺼번에 수령해 각 방으로 배포했다, 오전에 도현이 직접 4인실 책상 위에 한 장씩 놓고 갔다.
봉투의 색이 평범한 흰색이었다. 평가원 로고가 한쪽 모서리에 작게 인쇄되어 있었다, 가운데에 이안의 이름이 인쇄되어 있었다. 봉투 안에 든 게 평생 처음 받는 수능 성적표였다.
가채점으로 깡표합 추정 435점이 나왔다. 정답 공개 이후 평가원 정답과 1대1 대조했을 때 추정한 점수와 1점 이상 차이 나기는 어려운 자리였다. 성적표 안의 점수가 435점 부근에서 ±2점 안쪽일 가능성이 90퍼센트 이상이었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이안은 봉투를 5분 동안 안 뜯었다. 봉투를 뜯는 손동작 한 번이 5개월 동안의 자기관리, 11년 동안의 1등 자리, 어머니의 모든 단어를 한 번에 정리해버리는 동작이었기 때문이었다.
옆자리에서 하린이 자기 봉투를 들고 있었다. 하린도 봉투를 뜯지 않고 있었다.
"...언니, 같이 뜯을까."
"...어."
"하나, 둘, 셋."
두 사람이 동시에 봉투를 뜯었다. 봉투 안에서 성적표 한 장씩 나왔다. 이안이 자기 성적표를 펼쳤다.
수능 표준점수.
국어 132 / 수학 140 / 영어 1등급 / 한국사 1등급 / 사회문화 67 / 생활과 윤리 98.
깡표합 추정 약 437. 가채점 435와 2점 차. 백분위 합도 별도 칸에 인쇄되어 있었다.
이안이 점수를 한 번 더 봤다. 두 번 봤다. 점수가 437점이었다, 가채점 시점에서 추정한 435점보다 2점 높았다. 평가원 정답 공개 직후 자기 손으로 매긴 점수와 정확한 표점 환산 점수가 2점 차이.
청람관 자체 환산 408이 평가원 깡표합 437로 환산되는 자연스러운 분포였다. 평가원 점수가 청람관 환산점수보다 약 30점 정도 높게 형성되는 게 청람관 학생들의 평균 환산비였다, 이안의 격차가 그 평균에 정확히 들어갔다.
이안이 성적표를 책상 위에 놓았다. 손이 차가웠다, 손을 한 번 비볐다.
437점이었다. 1등도 아니고 12등도 아니고 13등도 아니었다. 평가원 표점 437점이라는 한 가지 숫자였다.
"...언니, 너 얼마야."
"...437."
"...어, 잘 나왔다."
"...너는."
"...389. 가채점이랑 2점 차."
"...수시 발표 다음 주."
"...어."
하린이 성적표를 자기 책상 서랍에 넣었다. 이안도 같이 넣었다, 서랍 안에 시우의 종이 한 장과 학교 후보 종이가 같이 있었다.
오전 10시. 시우 시점. 시우 방.
시우가 책상 위 봉투를 천천히 뜯었다. 한정수가 도착하기 전에 자기가 먼저 확인하기로 어제 저녁 결정했다, 한정수와 함께 확인하는 게 두 사람의 표준이었지만 오늘 시우가 먼저 봤다.
봉투 안에서 성적표가 나왔다. 시우가 펼쳤다.
수능 표준점수.
국어 130 / 수학 142 / 영어 1등급 / 한국사 1등급 / 생명과학 1 65 / 화학 1 62.
깡표합 추정 약 432점. 가채점 432와 일치.
시우가 점수를 한 번 봤다. 다시 한 번 봤다. 432점이 정확히 가채점 추정 점수 그대로였다, 자기 손으로 매긴 점수와 평가원 표점 환산이 1점 차이도 없었다. 자기 답을 자기가 정확하게 채점했다는 의미였다.
평생 처음으로 자기 답을 자기가 매긴 점수가 자기 점수였다, 그 점수가 정확하게 432점이었다.
시우가 성적표를 책상 위에 놓았다. 의자에 등을 기댔다, 잠시 천장을 봤다. 평범한 흰색 천장이었다.
432점.
가군 의대 안전선 환산 435점, 시우의 432점은 안전선 아래 3점. 일부 의대 합격 가능, 일부 의대 합격 어려움. 한정수가 가군에 정해놓은 의대가 시우의 432점으로 추가합격 대기권에 들어가는 학교였다, 합격 확률 50퍼센트 부근.
서울대 경영 환산 안정선 약 438점. 시우의 432점은 안정선 아래 6점, 환산 적용 시 경계선이지만 합격 가능권.
다군 안전 학교 약 425점. 시우의 432점은 안정 합격.
세 가지 라인 위에서 시우가 자기 점수의 위치를 한 번 정리했다. 어느 라인에 가군을 쓸지 나군을 쓸지 다군을 쓸지가 시우의 결정이었다.
폰이 울렸다. 한정수였다.
"...네, 아버지."
"성적표 봤어."
"...네, 432점입니다."
"...."
한정수가 한 박자 말이 없었다. 432점이 한정수가 기대한 점수보다 약간 낮았다, 한정수가 기대한 점수는 435점 이상이었다. 가군 의대 안전 합격을 위한 최소 점수.
"...오후에 학원으로 갈게."
"...네."
"3시 정도."
"네."
한정수가 전화를 끊었다. 시우가 폰을 책상 위에 놓고 한 박자 더 천장을 봤다.
11시. 청람관 정시 컨설팅 통지.
식당 게시판에 공지가 붙었다. '12월 5일 오후 2시부터 학생별 1차 컨설팅 시작. 환산점수표 학생별로 배포. 학부모 동석 권장.'
이안이 게시판 앞에서 자기 이름을 확인했다, 오후 4시 컨설팅. 어머니가 그 시각에 도착 예정.
옆에서 시우의 이름을 봤다, 오후 3시. 시우의 한정수도 같은 시각에 도착 예정.
두 사람의 컨설팅 시각이 한 시간 차로 붙어 있었다. 같은 컨설팅실에서 한 시간 간격으로 두 가족이 들어왔다 나갔다 한다.
이안이 게시판에서 떨어져 식당 안쪽으로 걸어갔다. 시우가 식당 입구에서 들어오는 게 보였다. 두 사람이 식당 한가운데서 마주쳤다.
"...너 432."
"...어, 본인 가채점이랑 일치."
"...나는 437. 가채점이랑 2점."
"...."
"3시랑 4시."
"...어."
"오늘."
"...오늘."
두 사람이 점심을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먹었다. 평일 정규 점심시간이었다, 식당 안에 학생들이 절반쯤 있었다. 식판 위 음식이 시우는 절반, 이안은 절반 좀 안 됨. 두 사람이 한 박자 침묵 안에 식사를 마쳤다.
오후 1시 50분. 어머니 도착.
이안이 정문 앞에서 어머니를 맞이했다. 어머니가 마을버스에서 내려 정문 안으로 걸어왔다, 검정 코트, 단정한 머리. 한 달 전 면담실에서 본 모습과 같았다.
"...왔어."
"...어."
"성적표 봤지."
"...어, 437."
어머니가 한 번 끄덕였다. 어머니의 표정에 놀라움도 안도도 없었다, 평소의 어머니였다.
"...컨설팅 4시지."
"...어."
"엄마가 같이 들어가도 돼."
"...어, 같이 들어가."
두 사람이 청람관 정문 안으로 같이 걸어 들어갔다. 4층 컨설팅실 쪽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3층 복도에서 한정수와 시우가 마주 걸어왔다. 두 사람이 3시 컨설팅을 막 시작하러 가는 길이었다, 시우의 컨설팅이 1시간 먼저였다.
이안의 어머니와 한정수가 복도에서 짧게 마주쳤다. 두 사람이 서로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가벼운 묵례만 오갔다. 시우가 이안을 잠깐 봤다, 이안이 시우를 같이 봤다.
1초였다. 두 사람의 부모가 같은 복도에서 동시에 학원에 와 있는 게 처음이었다, 그 1초의 시선이 두 사람 사이의 한 가지 신호였다.
한정수가 시우에게 "올라가자"고 짧게 말했다, 시우가 끄덕였다. 두 사람이 4층 쪽으로 사라졌다.
이안과 어머니가 3층 복도에서 잠시 멈췄다.
"...저 분이 한시우 아버님이야?"
어머니가 작게 물었다.
"...어."
"...."
"...왜."
"아니야, 그냥."
어머니가 더 묻지 않았다. 두 사람이 3층 자습실 쪽으로 잠시 걸었다, 자습실 빈 자리에 앉아서 이안의 컨설팅 시간을 기다렸다.
오후 3시. 시우 시점. 4층 컨설팅실.
시우와 한정수가 컨설팅실에 들어갔다. 도현이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책상 위에 시우의 성적표와 환산점수표가 펼쳐져 있었다.
"한시우 학생, 한정수 변호사님, 자리에 앉으세요."
도현이 두 사람에게 자리를 가리켰다. 한정수가 가운데 의자에 앉았다, 시우가 옆에 앉았다.
도현이 성적표를 한정수 쪽으로 돌렸다.
"한시우 학생 깡표합 432점입니다. 가군 의대 안전선 아래 3점, 서울대 경영 안정선 아래 6점, 다군 안전 학교 안정 합격선 위입니다."
한정수가 성적표를 봤다. 손가락으로 점수 칸을 한 번 짚었다.
"가군 의대 어디 가능한가요."
"한정수 변호사님이 정해두신 학교는 한시우 학생 432점으로 추가합격 대기권입니다. 합격 가능성 약 50퍼센트입니다. 가군에 한 단계 낮은 의대로 옮기시면 안전 합격선에 들어갑니다."
"안전 합격 의대는 어디입니까."
도현이 환산점수표를 한 장 더 펼쳤다, 가군 의대 후보 표였다.
"이 표의 4번째와 5번째 학교가 한시우 학생 점수로 안정 합격선입니다. 1번째 학교가 한정수 변호사님이 정해두신 학교인데, 432점으로는 추합 대기. 합격 확률 50퍼센트."
한정수가 표를 한참 봤다. 잠시 후 한정수가 시우 쪽을 봤다.
"...시우야."
"...네."
"네 의견은."
시우가 한 박자 멈췄다. 한정수가 시우에게 직접 의견을 물은 게 11월 6일 면담실 이후 두 번째였다, 그때 시우가 "의대 가요, 단 학교는 제가 골라요"라고 말했다. 그 단어를 한정수가 한 달 가까이 안쪽에 두고 있었다.
"...아버지, 가군은 아버지가 정해. 나군과 다군은 제가 정해."
시우가 말했다.
"...나군은."
"서울대 경영."
"...다군은."
"안전 환산 학교 한 곳."
한정수가 시우의 얼굴을 봤다, 시우가 같이 봤다. 두 사람이 잠시 마주봤다.
"...의대 아니어도?"
한정수가 작게 물었다.
"...의대도 가능해요. 단 가군에만."
시우가 답했다.
한정수가 한 박자 더 멈췄다. 도현 쪽을 봤다.
"...상담사님 의견은요."
"한시우 학생 의견은 합리적입니다. 가군에 의대 1장, 나군에 서울대 경영, 다군에 안전 학교. 분산이 효율적이고, 가군 의대가 추합 안 되더라도 나군과 다군 두 라인이 안정 합격선입니다."
"...."
한정수가 한 번 끄덕였다. 작은 끄덕임이었다, 동의의 끄덕임이었다.
"...가군은 내가 1번 학교 그대로 가자. 추합 대기 50퍼센트라도 시도. 나군 서울대 경영, 다군 시우 네가 정한 안전 학교."
한정수가 말했다. 시우가 끄덕였다. 한정수의 단어가 처음으로 합의의 단어였다.
오후 4시. 이안 시점. 4층 컨설팅실.
이안과 어머니가 컨설팅실에 들어갔다. 도현이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책상 위에 이안의 성적표와 환산점수표가 펼쳐져 있었다.
"서이안 학생, 어머님, 자리에 앉으세요."
도현이 자리를 가리켰다. 어머니가 가운데 의자에 앉았다, 이안이 옆에 앉았다.
도현이 성적표를 어머니 쪽으로 돌렸다.
"이안 학생 깡표합 437점입니다. 백분위도 같이 보여드릴게요. 어머님이 정해놓으신 학교 환산점수 안정선이 약 420점입니다. 이안 학생의 점수는 그 안정선 위 17점, 정시 합격 거의 확정입니다."
어머니가 성적표를 봤다. 한 번 더 봤다.
"...어, 잘 나왔어. 이안이가."
"네, 어머님. 이안 학생 점수로 갈 수 있는 학교가 더 있습니다."
도현이 환산점수표 다섯 장을 한 줄로 펼쳤다.
"이안 학생 환산점수가 다섯 곳 학교에 안정 합격선입니다. 어머님 정하신 학교 외에 상경계열 두 곳, 인문계열 한 곳, 사회과학계열 두 곳. 어머님 학교가 1순위인지는 이안 학생과 함께 결정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어머니가 환산점수표 다섯 장을 천천히 봤다. 손가락으로 학교 이름을 한 줄씩 짚어 내려갔다. 어머니의 손가락이 두 번째 학교에서 잠깐 멈췄다, 상경계열 학교였다.
"...상담사님."
"네."
"우리 애 환산점수, 어떻게 보세요."
도현이 한 박자 멈췄다.
"어머님, 이안 학생 환산점수는 어머님이 보신 학교 외에도 다섯 곳에 안정 점수입니다. 어머님 학교가 1순위인지는 이안 학생과 같이 결정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도현의 단어가 한 달 전 면담실에서의 도현과 한 톤 달랐다. 한 달 전에는 도현이 어머니 쪽 결정을 거의 지지하는 톤이었다, 오늘은 학생 의견을 함께 보라는 톤이었다. 청람관 정시 합격률 통계가 어머니 결정 한 가지가 아니라 학생-학부모 합의 결정에서 더 안정적으로 나오는 게 도현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어머니가 도현의 단어를 한 박자 안쪽에서 받았다. 이안 쪽을 봤다.
"...이안아."
"...네."
"엄마는 네가 정한 데로 갈게."
이안의 손이 무릎 위에서 한 번 떨렸다, 떨렸다는 사실이 떨림으로만 남았다. 어머니의 단어가 11월 7일 면담실에서의 단어보다 한 단계 더 명확했다. "네가 결정한 대로 하자"에서 "네가 정한 데로 갈게"로 옮겨졌다.
이안이 어머니의 얼굴을 봤다. 어머니가 평소의 어머니였다, 표정에 큰 변화가 없었다. 평소 어머니의 톤으로 평소 어머니가 쓰지 않는 단어를 말하고 있었다.
"...엄마, 다음 주에 한 번 더 같이 봐도 돼."
"...어, 그래."
"...환산점수 시뮬 더 돌려보고."
"...어."
도현이 두 사람의 합의를 한 줄로 정리했다.
"두 분이 다음 주까지 환산점수 시뮬 돌리시고, 1차 결정은 12월 22일 마감 일주일 전까지 부탁드립니다. 정시 원서 마감이 12월 30일입니다."
"네."
어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안도 일어났다. 컨설팅실에서 나왔다, 복도에서 잠시 마주봤다.
"...이안아."
"...네."
"엄마가 너한테 미안한 거 있어."
"...어."
"엄마가 너 점수에 너무 매달렸어. 11년 동안. 미안해."
이안이 어머니의 얼굴을 봤다. 어머니의 단어가 11년 동안 어머니가 한 번도 쓴 적이 없는 단어였다, 그 단어가 어머니의 입에서 평소 톤으로 나왔다.
"...엄마."
"...어."
"...미안할 거 아니야. 엄마가 매달려준 거니까 내가 1등 자리에 있었던 거잖아."
"...."
"엄마, 정말 고마워."
이안이 말했다. 어머니가 한 번 끄덕였다. 두 사람이 더 말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1층 쪽으로 걸어 내려가는 동안 이안이 복도 끝에서 같이 봤다.
오후 6시. 하린 시점. 4인실.
하린이 부모와 통화 중이었다.
"...언니, 1차 컨설팅 끝났대. 환산점수 후보 다섯 곳."
"수시는 다음 주."
"...어, 다음 주 발표."
"엄마, 내가 어차피 정시 안 쓰는 거 알지."
"어."
"...그러니까 청람관에는 다음 주까지 있을게. 발표 끝나면 집에 갈게."
"그래."
"...어, 끊을게."
하린이 폰을 침대 위에 놓았다. 이안이 4인실에 들어오는 게 보였다.
"...언니, 컨설팅 잘 됐어?"
"...어, 환산점수 후보 다섯 곳 더 있대."
"...어머니는."
"...엄마가 내가 정한 대로 가자고 하셨어."
하린이 끄덕였다. 더 묻지 않았다.
저녁 8시 30분, B1 자습실. 12번과 31번 자리.
이안이 12번 자리에 앉아 있었다. 환산점수 시뮬 종이 다섯 장을 책상 위에 펼쳤다. 어머니 학교, 상경계열 두 곳, 인문계열 한 곳, 사회과학계열 두 곳. 매 학교마다 안정선, 합격선, 모의지원 갱신.
시우가 31번 자리에 앉아 있었다. 시우의 책상 위에 환산점수 시뮬 종이 세 장이 있었다. 가군 의대, 나군 서울대 경영, 다군 안전 학교.
자습실 안에 다섯 명의 학생만 있었다. 12번과 31번 외에 다른 세 자리, 그들도 자기 환산점수표를 펼쳐 놓고 있었다.
이안이 시우 쪽을 한 번 봤다. 시우의 책상 위 종이 세 장이 가운데에 모여 있었다. 시우가 이안 쪽을 같이 봤다. 두 사람의 시뮬 종이가 같은 자습실 두 책상 위에 펼쳐진 채로 있었다, 1년 동안 두 사람이 답안지를 두고 마주 앉던 그 자리에 환산점수표가 펼쳐진 거였다.
이안이 자기 종이를 한 번 더 봤다. 어머니 학교가 1순위인지 아닌지를 자기 안쪽에서 정리했다. 어머니가 "네가 정한 데로 갈게"라고 했다, 정한 사람은 이안이었다. 정하는 자리에 처음 와 있는 거였다.
이안이 종이 위에 두 가지를 적었다.
'다군에 새 학교 한 곳.'
'어머니 학교를 가군이 아닌 나군으로.'
새 라인이 만들어졌다. 어머니 학교를 1순위가 아닌 보험 자리로 바꾸고, 다군에 이안이 정한 새 학교를 1순위로 올린다. 이안이 정한 자리가 1순위가 되는 게 처음이었다.
저녁 9시. 자습 종료.
이안과 시우가 자습실에서 같이 일어났다. 출구 쪽으로 같이 걸었다.
"...이안."
"...어."
"...아버지 학교 가군 정해놨어. 나군부터 내가 정할게."
시우가 말했다.
이안이 한 박자 멈췄다, 같이 답했다.
"...나는 환산점수가 가리키는 학교 쓸 거야. 어머니가 정한 가군 쓰지 않아도 되는지 다음 주 결정."
두 사람이 자기 학교를 자기가 쓰겠다고 입 밖에 낸 게 처음이었다. 1년 동안 두 사람이 자기 점수를 두고 자기 학교를 결정하는 자리에 한 번도 와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가 정해주는 자리, 한정수가 정해주는 자리가 두 사람의 자리였다. 오늘 처음으로 두 사람이 자기 학교를 자기 손으로 쓰기로 했다.
자습실 출구에서 두 사람이 같이 멈췄다. 잠시 서로의 얼굴을 봤다.
"...12월 22일."
이안이 작게 말했다.
"...열흘 좀 넘게 남았어."
"...어."
"...."
두 사람이 출구를 같이 나왔다. 복도 끝에서 각자 방 쪽으로 갈라졌다. 이안이 4인실 쪽으로 걸었다, 한 번 시우 쪽을 돌아봤다, 시우가 자기 방 문 앞에서 같이 돌아봤다.
두 사람이 동시에 끄덕였다. 한 번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