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3일 오후 6시. 청람관 식당 한쪽 테이블.
이안이 식판을 들고 자리에 앉았다. 식판 위에 평소 저녁의 절반 양이 담겨 있었다, 위장이 그 이상을 받지 않았다. 하린이 옆자리에 앉았다.
식당 안 분위기가 평소와 달랐다. 학생들이 작은 무리로 모여 식판 위에 종이 한 장씩 펼쳐 놓고 있었다. 어떤 종이는 가채점 답안 시안, 어떤 종이는 시험지 표지에서 옮겨 적은 답, 어떤 학생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오늘 가채점은 정식 가채점이 아니었다. 평가원 공식 정답은 내일 새벽에 공개됐다, 오늘 저녁은 사설 채점 어플과 학생들끼리 비교하는 잠정 답안만 있었다. 학생들이 서로 답을 맞춰 보는 시간이었다.
하린이 식판 옆에 종이 한 장을 펼쳤다.
"...언니, 1교시 답 적어 왔지."
"...어."
"맞춰 볼래?"
"...어."
이안이 가방에서 자기 답 메모를 꺼냈다. 시험 직후 시험지 표지에 옮겨 적은 답이었다. 하린의 답과 한 문항씩 대조했다.
"...1번 1번."
"...어, 같아."
"...2번 4번."
"...어."
"...3번 2번."
"...어."
같은 답이 12문항 연속 나왔다. 13번에서 첫 번째 차이가 났다.
"...13번 3번."
"...4번이라고 적었는데."
이안이 자기 답을 한 번 더 봤다, 4번. 하린의 답이 3번. 한 사람이 틀린 거였다.
"...13번 문제, 시조였지."
"...어, 조선 후기."
"화자가 비판하는 대상이 누구냐였지."
"...어."
이안이 잠시 자기 풀이를 머릿속에서 되짚었다. 화자가 비판하는 대상을 4번 보기로 봤었다, 4번 보기가 양반층이었다. 3번 보기는 사대부였다, 사대부와 양반층이 같은 그룹이었지만 보기 안에서는 한 톤 다른 위치였다.
"...3번이 맞는 거 같아."
이안이 작게 말했다.
"...정답이 3번이면 너 한 문항 틀린 거야."
"...어."
하린이 더 이상 그 문항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다음 문항으로 넘어갔다, 두 사람의 답이 다시 같았다.
이안이 1교시 답 대조를 마쳤다. 차이가 난 문항이 두 개였다, 둘 중 한 개는 이안이 틀렸다고 추정, 한 개는 하린이 틀렸다고 추정. 정확한 정답은 내일 새벽 공개 이후에 확정.
이안이 잠정 점수를 계산했다. 화법과 작문 검토 중에 한 번 답을 바꾼 문항이 있었다, 그 문항을 포함해서 1교시 국어 추정 점수는 90점 부근.
2교시 수학 답을 펼쳤다, 하린과 대조했다. 수학은 선택과목이 두 사람이 달랐다, 22번 공통과목까지만 비교 가능했다. 22번 단답형 답 9, 같았다. 21번 단답형 답 4, 같았다. 다른 단답형도 비교했다, 같았다.
이안의 수학 추정 점수는 92점 부근. 30번 선택과목 킬러 247이 정답이면 100점 가까이, 아니면 88점 부근.
영어 절대평가. 답 대조. 차이 0개. 1등급 추정.
탐구 두 과목. 사회문화 17번에서 답을 바꿀지 망설였던 문항이 정답인지 확인. 하린이 같은 과목 응시자였다, 답이 다른 두 가지로 갈렸다. 정확한 정답은 내일 새벽 이후.
이안이 식판 옆에 잠정 점수를 적었다. 표점 변환은 정확하게 안 됐지만, 깡표합 추정으로 약 432~440 범위.
청람관 자체 환산 408이 평가원 깡표합 435 부근으로 환산되는 게 자연스러운 분포 안에 있었다. 청람관 408은 학원 내부 환산점수였고, 평가원 깡표합은 별도 지표였다. 두 점수가 1대1 대응이 아니라는 사실은 청람관 학생들이 6평과 9평을 거치면서 이미 한 번씩 경험한 분포였다.
이안이 잠정 점수를 다 적고 종이를 접었다.
같은 6시. 시우 시점. 1차 자습실.
시우가 1차 자습실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1차 자습실 분리는 수능이 끝났으므로 사실상 해제됐지만, 행정 처분 해제 통보가 도현 측에서 아직 안 나왔다. 시우는 어디로 갈지 결정하지 않은 상태로 1차 자습실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책상 위에 시우의 시험지 표지가 펼쳐져 있었다. 한 교시씩 답을 옮겨 적은 종이가 다섯 장.
시우가 답 종이를 한 번 봤다. 가채점을 의도적으로 미루고 있었다, 어플도 안 깔았고, 정답 검색도 안 했다, 다른 학생들과 답 대조도 안 했다.
가채점은 내일 새벽 평가원 정답 공개 후 자기 손으로 직접 한다, 그게 시우가 어제 결정한 방식이었다. 다른 학생들이 잠정 답안으로 점수를 추정하는 동안 시우는 정확한 답이 나올 때까지 점수에 손을 대지 않는다.
이유는 한 가지였다. 시우의 답안지가 평생 처음으로 지운 자국이 0건이었다, 자기 점수가 자기 점수로 매겨지는 게 처음이었다. 그 첫 점수를 잠정 추정으로 망치고 싶지 않았다. 정확한 정답으로 자기 손으로 매기는 게 처음 점수의 의미를 살리는 길이었다.
시우가 책상 위에 도시락 통을 정리했다. 점심에 사탕이 들어 있던 자리, 빈 자리. 시우가 그 빈 자리를 한 번 봤다.
이안과 다른 고사장에서 같은 사탕을 입에 넣은 1초를 시우가 머릿속에서 한 번 더 봤다. 두 사람이 그것을 동시에 했다는 사실을 시우가 가능성으로만 알고 있었다, 사실로 확인할 길은 없었다. 그래도 가능성이 사실보다 강한 자리가 있다는 것을 시우가 처음 알았다.
11월 14일 새벽 1시. 평가원 정답 공개.
시우가 1차 자습실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본관 보관함에서 폰을 꺼내 와 1차 자습실 책상 위에 놓고 있었다, 1차 자습실에는 감독관이 없었다, 수능 다음 날이라 자습 운영이 정지됐다. 시우 혼자 있는 자리였다.
폰의 인터넷을 켰다. 평가원 공식 사이트에서 정답을 다운로드했다, PDF 파일. 1교시 국어, 2교시 수학, 3교시 영어, 4교시 한국사와 탐구.
PDF를 열었다. 한 페이지씩 자기 답과 대조했다.
1교시 국어. 1번부터 마지막까지. 시우의 답과 정답을 1대1 대조. 틀린 문항 두 개. 90점.
2교시 수학. 1번부터 30번까지. 22번 정답 9, 시우 답 9. 30번 정답 7, 시우 답 7. 틀린 문항 두 개. 92점.
3교시 영어. 시우 답안지에 답을 다 적었던 게 평소처럼 절대평가 1등급권이었다. 듣기 17문항 다 맞음. 독해 28문항 중 두 개 틀림. 92점, 절대평가 1등급.
4교시 한국사. 만점.
탐구 1과목 생명과학 1. 18번 한 개 틀림. 47점.
탐구 2과목 화학 1. 두 개 틀림. 44점.
시우가 자기 답안지에 답을 다 적었고, 평생 처음으로 지운 자국이 없었고, 평생 처음으로 자기 손으로 정답과 1대1 대조한 결과가 책상 위에 펼쳐져 있었다.
깡표합 추정 약 432점.
시우가 책상에 손을 모았다. 큰 한숨도 짧은 한숨도 아닌 일정한 호흡이 한 번 나왔다.
432점이 시우의 점수였다. 청람관 405점이 평가원 432점으로 환산되는 자연스러운 분포 안에 있었다. 410점이 아니라 405점에서 멈춘 게 청람관 환산에서 약간 낮은 점수였지만, 평가원 깡표합에서는 더 명확한 점수가 됐다.
432점이면 의대 가군 안전선은 일부만 가능, 서울대 경영은 환산점수 적용 시 경계선, 안전 학교는 다군에 충분.
시우가 폰을 책상에 도로 놓았다. 한정수에게 점수를 보고할지 보고하지 않을지를 결정하지 않았다. 오늘 새벽 1시에 한정수에게 전화하지 않는 게 시우의 선택이었다. 점수는 정확한 성적표가 나온 다음 한정수에게 전달한다, 가채점 점수로 한정수가 다음 결정을 내리지 않게 한다.
시우가 의자에 등을 기댔다. 1차 자습실 천장이 평범한 흰색이었다. 천장을 한 번 봤다, 시선을 거뒀다, 책상 위 답안지에 다시 시선을 두었다.
자기 점수가 자기 손으로 매겨졌다. 432점이라는 숫자가 시우의 점수였다.
11월 14일 오전 8시. 4인실. 이안 시점.
이안이 침대에서 일어났다. 평소처럼 5시간 잠을 잤다, 어제 새벽 4시간보다 한 시간 더 잤다. 머리가 한 톤 가벼웠다.
세면대 앞에 섰다, 거울 안의 얼굴이 어제보다 한 톤 풀려 있었다. 다크서클은 그대로였지만 입술의 마른 색이 한 단계 회복되어 있었다.
책상 앞에 앉았다. 폰을 켰다, 평가원 정답 PDF를 다운로드했다. 1교시부터 4교시까지 자기 답과 정답을 1대1 대조했다.
1교시 국어. 화법과 작문 검토 중에 답을 바꾼 그 문항, 처음 답이 3번이었고 바꾼 답이 4번. 정답이 4번이었다. 답을 바꾼 게 맞았다. 1교시 추정 점수 88점.
13번 문항. 시조 화자 비판 대상. 정답이 3번. 이안 답이 4번. 틀렸다. 어제 식당에서 하린과 대조하면서 짐작한 결과 그대로였다.
2교시 수학. 22번 답 9, 정답 9. 30번 답 247, 정답 247. 만점 가능 영역이었다. 객관식 한 개 틀렸다, 추정 점수 92점.
3교시 영어 절대평가 1등급.
4교시 한국사 만점, 탐구 두 과목 합쳐서 두 개 틀림.
깡표합 추정 약 435점.
청람관 환산 408이 평가원 435로 환산되는 자연스러운 분포 안에 있었다. 점수가 떨어진 것도 오른 것도 아니었다, 청람관과 평가원 두 지표 사이의 자연스러운 환산이었다.
이안이 점수를 종이에 적었다. 한 번 더 적었다. 두 번 같은 숫자가 종이에 적혔다.
435점.
이안이 종이를 책상 서랍에 넣었다. 서랍 안에 시우의 종이 한 장이 그대로 있었다, '수능 끝나면 너랑 같은 자리에 앉을게. 야자가 아닌 자리.' 이안의 점수 종이와 시우의 종이가 같은 서랍 안에 있었다.
서랍을 닫았다.
오전 11시 30분, 식당.
이안이 식판을 들고 들어갔다. 평소 시우가 앉던 창가 두 번째 줄 자리가 비어 있었다, 다른 학생들도 평소보다 적었다. 수능 다음 날은 학원 외출이 자유로웠다, 절반 가까운 학생들이 집에 다녀오고 있었다.
이안이 식판을 들고 평소 자기 자리에 앉으려는데 시우가 식당으로 들어왔다.
본관 식당이었다. 1차 자습실 분리 처분이 사실상 해제된 것을 시우가 식당 위치로 알리는 거였다, 어제 본관 식당에 한 번 발을 들였던 것에 이은 두 번째 본관 식당 방문이었다.
시우가 식판을 들고 식당 안을 한 번 봤다. 이안이 평소 자기 자리에 앉으려는 동작 중이었다. 시우가 이안 쪽으로 걸어왔다, 평소 시우의 자리가 아니라 이안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이안이 시우의 식판을 봤다, 시우가 이안의 식판을 봤다. 두 사람이 같은 식당에서 같은 시간에 같은 테이블에 앉은 게 청람관 입소 이래 처음이었다.
도현이 식당 한쪽 게시판 쪽에 서 있었다. 도현이 두 사람을 봤다, 봤다는 사실을 표정에 두지 않았다. 게시판에 새 통지문을 한 장 붙이고 있었다, 두 사람을 본 다음 그 통지문을 마저 붙이고 식당에서 나왔다.
이안과 시우 사이에 한 박자 침묵이 흘렀다.
"...깡표합 얼마야."
시우가 작게 말했다, 식판 위로.
"...435."
"...."
"...너는."
"...432."
이안이 시우의 얼굴을 봤다. 시우가 같이 봤다.
두 사람의 점수가 처음으로 평등에 가까웠다. 청람관 게시판에서는 1위와 13위였던 두 사람의 점수가 평가원 깡표합에서는 3점 차였다.
"...."
시우가 더 말하지 않았다. 시우의 식판에 있는 음식을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이안도 자기 식판의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식당 안의 다른 학생들이 두 사람의 자리를 옆눈으로 봤다. 학원 시스템의 1위와 12위가 같은 테이블에 마주 앉아 점심을 먹고 있는 풍경이 다른 학생들에게 새로운 풍경이었다. 한 학생이 옆 자리에서 작게 말했다.
"...두 사람이 같이 앉는 거 처음 보네."
"...어, 수능 끝나니까 분리도 풀린 건가."
이안과 시우가 두 학생의 말을 들었다. 둘 다 그 말에 답하지 않았다, 식판 위의 식사에 시선을 두었다.
10분쯤 지나 시우가 식판을 절반쯤 비우고 멈췄다. 이안도 비슷한 양에서 멈췄다.
"...오후."
시우가 작게 말했다.
"...어."
"3시쯤 자판기 옆."
"...어."
"카메라 각도 조정된 그 자리."
이안이 잠시 멈췄다, 시우의 얼굴을 봤다. 시우가 자판기 옆 새 카메라 각도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이안이 처음 들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묻지 않았다.
"...어, 갈게."
"3시."
"3시."
시우가 식판을 들고 일어났다. 반납구로 갔다, 식판을 반납했다, 식당 출구로 나갔다. 이안이 자리에 1분 더 앉아 있다가 자기 식판을 들고 일어났다.
오후 3시, 본관 자판기 옆.
이안이 자판기 앞에 섰다. 자판기 옆 30센티 공간에 새로 달린 카메라가 있었다, 각도가 자판기 옆 사각을 절반쯤 잡는 위치. 어제 본 그 카메라.
시우가 옆에서 다가왔다. 자판기에서 캔커피 두 개를 뽑았다, 평소 시우의 동작이었다.
"...너 한 잔."
시우가 캔커피 한 개를 이안 쪽으로 내밀었다. 이안이 받았다, 차가웠다.
두 사람이 자판기 옆 사각이 아니라 자판기 정면에 서 있었다. 카메라가 두 사람을 잡고 있는 자리였다, 사각이 아니라 정면에 의도적으로 섰다.
수능이 끝났다, 1차 자습실 분리가 풀렸다, 두 사람이 자판기 앞에서 캔커피 한 개씩 손에 들고 정면 카메라 아래에 서 있는 게 더 이상 위반이 아니었다.
도현이 본관 1층 복도 끝에서 두 사람을 봤다, 한 번 봤다, 그대로 자기 사무실 쪽으로 사라졌다. 카메라가 두 사람을 잡고 있는 영상이 도현의 콘솔에 자동 저장됐을 거였다, 그 영상이 도현 측에 어떤 의미인지 도현 자신이 자기 안쪽에서 정리했을 거였다.
시우가 캔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432랑 435."
시우가 작게 말했다.
"...어."
"청람관 환산이랑 평가원이랑 다르다는 거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닮을 줄은 몰랐어."
"...3점 차."
"...3점 차."
이안이 캔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차가웠다, 단맛이 약했다.
"...정시 원서 결정 1차 컨설팅이 다음 달 5일이야. 성적표 나오는 날."
시우가 말했다.
"...어, 식당 게시판에 도현이 통지문 붙였더라."
"...어."
"환산점수표가 그날 같이 나와."
"...어, 알아."
두 사람이 캔커피를 들고 한 박자 말이 없었다. 자판기 위 벽에 11월 14일의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오고 있었다, 노란빛이었다.
저녁 7시. 4인실. 이안.
이안이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책상 서랍 안에 점수 종이와 시우의 종이가 같이 있었다. 서랍을 열지 않았다, 닫힌 채로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하린이 옆자리에서 자기 풀이 노트를 정리하고 있었다. 풀이 노트의 마지막 페이지에 가채점 점수를 적고 있었다.
"...언니, 너 깡표합 얼마야."
"...435."
"...너 1차 컨설팅에서 환산점수표 받으면 보여줄 거지."
"...어, 보여줄게."
"...나 387 정도."
"...어, 안정적이야."
"...수시 발표 기다리는 거니까."
하린이 노트를 덮었다. 자기 침대 쪽으로 갔다, 침대에 앉아서 가방을 정리했다. 4인실 다른 두 자리는 여전히 비어 있었다.
이안이 책상 서랍을 열었다. 점수 종이와 시우의 종이를 꺼냈다, 두 종이를 책상 위에 나란히 놓았다.
'435점.' '수능 끝나면 너랑 같은 자리에 앉을게. 야자가 아닌 자리.'
두 종이가 같은 책상 위에 있었다. 어제까지 시우의 종이는 청람관 안의 약속이었고, 오늘 시우의 점수와 이안의 점수가 평가원 점수표 위에서 만났다. 두 사람이 같은 자리에 앉기 위한 첫 조건이 점수의 평등이었고, 그 평등이 어제 새벽부터 시작되어 오늘 점심에 정확히 만들어졌다.
이안이 점수 종이를 접었다. 시우의 종이를 그 위에 얹었다. 두 종이를 책상 서랍에 다시 넣었다.
서랍을 닫고 형광등을 껐다. 침대 위층으로 올라갔다, 누웠다.
천장이 가까웠다. 어제와 같았다. 어제와 다르게 잠이 빨리 왔다.
수능 다음 날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