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하린은 서윤의 물병을 보고 말했다.
"너 어제 뭐 했어?"
물병 라벨이 반쯤 뜯겨 있었다.
서윤은 병을 뒤로 밀었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닌 애가 라벨을 그렇게 뜯어?"
"원래 그래."
"원래는 끝까지 뜯잖아. 오늘은 중간에 멈췄네."
하린은 이상한 걸 잘 봤다.
서윤은 국어 프린트를 펼쳤다.
첫 수업은 독서였다. 강사는 12번을 표시하라고 했다. 서윤은 문제보다 앞줄에 앉은 이준의 등을 봤다.
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제 문 뒤에서 숨을 참던 호흡이 자꾸 생각났다.
쉬는 시간, 하린이 서윤 옆으로 붙었다.
"차이준이랑 아는 사이야?"
"아니."
"근데 왜 걔가 너 봐?"
서윤은 고개를 들었다.
복도 끝에 이준이 있었다.
그는 서윤을 보고 있다가, 하린과 눈이 마주치자 바로 시선을 돌렸다.
하린이 낮게 웃었다.
"아는 사이 아니면 더 이상한데."
"정말 아니야."
"안 사귀면 왜 숨겨?"
서윤은 펜을 떨어뜨렸다.
"뭐?"
"너 지금 들킨 얼굴이야."
그 말이 하루 종일 따라다녔다.
저녁 자습 때 이준은 쪽지를 넘겼다.
`오늘은 오지 마.`
서윤은 그 쪽지를 한참 봤다.
오지 말라는 말은 이상했다.
오라고 한 것도 그쪽이었다.
서윤은 쪽지 뒷면에 적었다.
`내가 갈 생각이었다고 누가 그래?`
쪽지는 다시 앞자리로 넘어갔다.
이준의 어깨가 아주 작게 흔들렸다.
웃은 건지 참은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날 밤, 서윤은 가지 않았다.
그런데 10시 31분이 되자 눈이 저절로 문으로 갔다.
하린이 침대에서 말했다.
"안 간다며."
"안 가."
"그럼 문은 왜 봐."
서윤은 물병을 잡았다.
라벨이 끝내 뜯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