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윤은 하린에게 말한 뒤로 이준의 등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차이준 좋아해.
말은 하린에게 했는데, 이상하게 이준에게 들킨 것 같았다.
자습실은 새벽까지 건조했다.
형광등은 눈을 찔렀고, 난방기는 켜져 있는데도 발끝은 차가웠다. 누군가 졸음을 참으려고 캔커피를 따는 소리, 샤프심을 한꺼번에 쏟은 소리, 감독 조교가 출석부를 접는 소리가 얇게 이어졌다.
이준의 공기계가 울린 건 그때였다.
한 번.
두 번.
세 번.
이번에는 이준이 바로 끄지 못했다.
서윤은 뒤에서 그 진동을 들었다.
이준의 어깨가 굳었다.
그는 결국 일어났다.
서윤도 일어났다.
하린이 옆에서 낮게 말했다.
"가."
서윤은 놀라서 돌아봤다.
하린은 문제집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대신 숨었다고 생각하지 마."
그 말이 허락보다 무거웠다.
복도 끝 비상구 앞에서 이준이 말했다.
"오지 마."
"혼자 들을 거야?"
"내 문제야."
"그 말 이제 지겨워."
이준은 공기계를 꺼냈다.
부재중 통화가 여러 개였다.
음성메시지 하나.
그는 재생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서윤이 손을 내밀었다.
"같이 들어."
"들으면 네가 더 신경 써."
"이미 해."
그 말은 이번에도 쉽게 나왔다.
이준은 서윤을 봤다.
눈 밑이 어두웠다. 빌보드 4위보다, 장학 문자보다, 동생의 부재중 통화가 그를 더 낮게 끌어내린 얼굴이었다.
그가 재생을 눌렀다.
어린 여자아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형, 오늘 보호자 확인서 괜찮아. 선생님한테 말했어. 그러니까 나 때문에 공부 망치지 마.`
짧은 메시지였다.
끝에 울음을 삼키는 숨이 있었다.
서윤은 그 숨을 알 것 같았다.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은 대부분 괜찮지 않았다.
이준은 화면을 끄지 못했다.
"나 때문에 공부 망치지 말라는데."
그가 아주 낮게 말했다.
"나한테는 자꾸 네가 먼저 보여."
서윤은 대답 대신 그의 손을 잡았다.
이번에는 순찰 때문이 아니었다.
숨을 곳도 없었다.
그냥 잡았다.
이준이 말했다.
"이건 진짜 걸리면 안 돼."
"응."
"근데 왜 잡아."
서윤은 손을 놓지 않았다.
"혼자 듣지 말라고."
"한서윤."
"그리고."
서윤은 비상구 유리창에 비친 두 사람 손을 봤다.
"나 좋아한다고 말해놓고, 필요할 때만 모르는 척 못 해."
이준은 숨을 멈췄다.
서윤도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뒤늦게 알았다.
비상구 유리창에는 두 사람 손이 비쳤다.
이번에는 누가 봐도 변명하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멀리서 조교의 발소리가 들렸다.
서윤은 손을 놓지 않았다.
이준도 놓지 않았다.
그래서 둘 다, 처음으로 같은 잘못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