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린은 아침까지 말을 하지 않았다.
세면대 앞에서도, 조식 줄에서도, 단어장을 넘길 때도 서윤을 보지 않았다.
침묵은 기숙학원에서 제일 큰 소리였다.
방송은 계속 울렸다.
`1교시 입실 5분 전입니다.`
`복도 이동 중 대화 금지입니다.`
`휴대폰 미제출자는 생활지도실로 오십시오.`
그 모든 소리 사이에 하린의 침묵이 있었다.
서윤은 자습실에 앉아 2열 12번을 봤다.
이준은 다시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말은 하지 않았다.
쪽지도 없었다.
하지만 자리는 비지 않았다.
그것만으로 서윤은 조금 숨을 쉬었다.
점심시간에 도겸이 이준의 식판을 들고 서윤 테이블 앞을 지나갔다.
"야, 한서윤."
하린이 눈을 가늘게 떴다.
"왜 부르는데."
도겸은 웃었다.
"차이준 어제 너 기다린 거 아니래."
서윤의 손이 멈췄다.
"내가 안 물어봤는데."
"응. 걔가 먼저 말했어. 기다린 거 아니라고."
하린이 작게 웃었다.
"말하지 말랬는데 네가 말했구나?"
도겸은 어깨를 으쓱했다.
"재밌잖아. S반 애들한테는 말 안 했어."
서윤은 고개를 들었다.
"그게 무슨 뜻이야?"
"말하면 또 난리 나잖아. 차이준이 한서윤 기다린 거 아니라고 먼저 해명한 것도 웃기고."
도겸은 이준 쪽을 봤다.
"걔 원래 해명 안 해. 성적도, 소문도, 장학도. 근데 네 건 하더라."
그 말이 식당 소음보다 크게 들렸다.
하린은 식판을 들고 먼저 일어났다.
"나 먼저 갈게."
서윤은 붙잡지 못했다.
그날 저녁, 서윤은 이준에게 쪽지를 보냈다.
`안 기다렸다며.`
답은 늦게 왔다.
`응.`
`근데 왜 도겸이한테 말해?`
더 늦게 답이 왔다.
`네가 오해할까 봐.`
서윤은 쪽지를 접었다.
오해하게 만든 사람이, 오해할까 봐 걱정했다.
자습 종료 후 복도에서 이준이 서 있었다.
"기다린 거 아니야."
서윤은 말했다.
"나도 물어보러 온 거 아니야."
"그럼 왜 왔어."
"네가 또 그런 말 할까 봐."
둘은 동시에 시간을 봤다.
서윤의 시계는 10시 26분.
이준의 시계는 10시 31분.
5분 빠른 시계.
점호 후 시간.
서윤이 물었다.
"너 시계 왜 5분 빨라?"
이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시계를 풀어 서윤에게 내밀었다.
"오늘은 네가 갖고 있어."
"왜."
"내가 기다렸는지 아닌지."
그가 아주 작게 말했다.
"네가 보면 아니까."
서윤은 시계를 받았다.
시계는 뜨거웠다.
손목에 오래 닿아 있던 온도였다.
뒤쪽 계단에서 하린이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
이번에도 아무 말 없이.
서윤은 시계를 주머니에 넣지 못했다.
숨기면, 또 누군가를 다치게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