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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호 후에는 고백 금지

14화 밀어내면 더 보인다

이준은 서윤을 피했다.

식당에서는 도겸 옆에 앉았다.

복도에서는 의대관 계단 대신 본관 뒤쪽 계단을 썼다.

자습실에서는 쉬는 시간마다 먼저 일어났다.

기숙학원은 피하기 쉬운 곳이 아니었다.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줄에서 밥을 받고, 같은 방송에 따라 움직이고, 같은 자습 종료 종에 맞춰 책을 덮는 곳이었다.

그래서 피하는 사람은 더 잘 보였다.

2열 12번이 비면, 그 빈자리가 이준보다 크게 보였다.

서윤은 문제를 풀었다.

풀었다고 생각했다.

답안지에는 같은 번호가 두 번 적혀 있었다.

하린이 봤다.

"너 이러다 망해."

"알아."

"아는데 왜 기다려?"

"기다린 적 없어."

하린은 서윤의 시선을 따라갔다.

2열 12번.

비어 있었다.

"그럼 저 빈 의자는 뭔데."

서윤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날 점심, 소문은 조금 바뀌어 있었다.

처음에는 둘이 사귀냐는 말이었다.

이제는 달랐다.

"한서윤 성적 오른 거 봤냐."

"차이준은 떨어지고?"

"둘이 붙어 다니더니 성적도 바꿔 먹었네."

하린이 식판을 세게 내려놓았다.

"말 가려서 해."

상대 애가 웃었다.

"네가 왜 화내?"

하린의 얼굴이 굳었다.

서윤은 그때 처음 알았다.

자기가 이준 때문에 흔들리는 동안, 하린도 자기 때문에 계속 상처를 삼키고 있었다.

야자 2차가 끝난 뒤, 서윤은 자습실에 혼자 남았다.

남으면 안 됐다.

점호 전 복도 순찰이 시작될 시간이었다.

그래도 남았다.

2열 12번 책상에 지우개 하나가 있었다.

이준의 것이었다.

하얀 지우개 한쪽에 작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보지 마.`

서윤은 웃음이 나왔다.

보지 말라는 글씨를 남겨놓고 간 사람.

그게 더 보라는 말처럼 느껴졌다.

문이 열렸다.

이준이 들어왔다.

"그거 내 거야."

"알아."

"왜 들고 있어."

"네가 보지 말라며."

"그건..."

이준은 말을 멈췄다.

서윤은 지우개를 내밀었다.

"나 피하지 마."

"피해야 돼."

"왜."

"너 있으면."

그가 손목시계를 만졌다.

"내가 다시 1위 할 생각을 안 해."

서윤은 지우개를 놓지 않았다.

이준도 잡았다.

둘의 손가락이 지우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닿았다.

자습실 형광등이 하나 꺼졌다.

이어 복도 방송이 울렸다.

`점호 10분 전입니다. 학생들은 생활관으로 이동 바랍니다.`

둘 다 손을 떼야 했다.

아무도 먼저 떼지 않았다.

문 밖에서 하린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서윤."

서윤은 굳었다.

하린은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두 사람의 손과 지우개를 봤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돌아섰다.

지우개에는 두 사람 손자국이 남았다.

하린의 표정도 같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