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자습 전, 서윤은 이준을 자판기 옆으로 불렀다.
정확히는 불렀다고 하기 애매했다.
쪽지에 한 줄 썼다.
`와.`
이준은 왔다.
그게 더 화가 났다.
"왜 안 했어?"
"뭘."
"아니라고."
이준은 자판기 유리에 비친 서윤을 봤다.
"말하면 끝났을까?"
"적어도 조용해졌겠지."
"너는 조용해졌을까?"
서윤은 대답하지 못했다.
이준이 가까이 오지 않았다.
딱 한 걸음 거리.
규정으로는 문제가 안 되는 거리.
감정으로는 너무 가까운 거리.
"네가 아니라고 말해."
서윤이 말했다.
"지금."
이준은 손목시계를 만졌다.
진심을 참을 때의 버릇이었다.
"한서윤."
"말해."
"아니라고 하면."
그가 말을 멈췄다.
"네가 그걸 듣고 괜찮을지 모르겠어."
서윤은 웃으려다 실패했다.
"웃기지 마. 너 그렇게 다정한 척하지 마."
"다정한 척 아니야."
"그럼 뭔데."
이준은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자판기 유리에 두 사람이 비쳤다.
한 걸음 떨어져 있는데, 같은 화면 안에서는 붙어 보였다.
점호 예비 방송이 울렸다.
이준은 먼저 물러났다.
"오늘은 먼저 가."
"너는?"
"너 가는 거 보고."
그 말이 대답보다 나빴다.
서윤은 뒤돌아 걸었다.
자판기 유리에 이준이 끝까지 서 있는 게 보였다.
아니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
먼저 보내고도 끝까지 보는 사람.
서윤은 그날 밤 처음으로 인정했다.
소문이 무서운 게 아니었다.
소문이 틀리지 않을까 봐 무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