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율이 숨을 쉬고 있었다.
지하도서관 안쪽, 담요를 깔아 만든 임시 침상. S등급 구역에서 가져온 흡입제를 투여하고 두 시간이 지나자 쌕쌕거리던 호흡이 가라앉았다. 파랗게 질렸던 입술에 혈색이 돌아오고, 작은 가슴이 규칙적으로 오르내렸다.
시우는 잠든 동생 옆에 앉아 보냉 파우치를 내려다보았다. 앰플 열한 개와 흡입기 하나.
'3개월분.'
손가락이 파우치 위를 스쳤다.
'3개월 안에 끝내야 한다.'
소율이 잠결에 뒤척였다. 작은 손이 허공을 더듬다가 시우의 소매를 잡았다. 놓지 않으려는 것처럼. 시우는 그 손을 건드리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아침이 밝기 전, 지하도서관의 긴 나무 테이블에 세 사람이 모였다.
시우. 윤서. 그리고 시우가 처음 보는 남자.
서른 초반. 깡마른 체격에 깊은 눈. 안경테가 낡았지만 렌즈는 깨끗했다. 손가락이 길고 마른 것이 분필을 많이 잡아 본 사람의 손이었다.
"강민혁이야." 윤서가 소개했다. "넘버리스 리더."
강민혁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목소리가 의외로 부드러웠다.
"한시우 군.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리더'라는 단어에 어울리지 않는 말투였다. 교육공정화법이 통과되기 전에 중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쳤다고 윤서가 말해줬었다. NAS가 시작되고 학교가 폐쇄된 후, B등급에서 F등급으로 강등. 칠판 앞이 아닌 하수도 아래에서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있다.
부드러운 사람. 하지만 부드러운 사람이 부드러운 조직을 이끌지는 않는다. 시우는 그 점이 오히려 신경 쓰였다.
테이블 위에 검은 카드가 놓여 있었다. 금색 글씨가 백열등 아래에서 희미하게 빛났다.
[S-CLASS INTEGRATION PROGRAM — 한시우]
"함정이야." 윤서가 먼저 입을 열었다. 팔짱을 낀 채 카드를 노려보고 있었다. "가는 순간 잡혀. 서정원이 그냥 보내줄 리 없어."
"그런데." 강민혁이 카드를 집어 들었다. 길고 마른 손가락이 금색 글씨를 훑었다. "NAS 내부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는 이것뿐이야."
"기회가 아니라 미끼예요."
"미끼를 물면서도 낚시꾼의 손을 무는 물고기가 있지." 강민혁이 카드를 내려놓으며 시우를 보았다. "시우, 네 생각은?"
시우는 카드를 바라보았다. 서정원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부드럽고, 계산적이고, 모든 것을 예상하고 있다는 듯한.
'자네의 진짜 점수를 돌려줄 준비가 되었나?'
"가겠습니다."
윤서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미쳤어?"
"서정원은 나를 잡으려는 게 아니야." 시우가 말했다. 목소리가 낮았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잡으려면 어제 통로에서 잡았어. 보안요원이 아니라 혼자 왔잖아."
"그건—"
"서정원은 나를 -쓰려는- 거야. 뭔진 모르겠지만, 필요로 하고 있어." 시우가 카드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이 안에 아버지 행방에 대한 정보가 있다고 했어. 함정이든 아니든, 거기에 내가 필요한 게 있어."
강민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판단이야. 서정원이 시우를 NAS 안으로 끌어들이고 싶은 거지, 제거하고 싶은 게 아니야. 적어도 지금은."
"그래서 가라고요?" 윤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래서 백업이 필요한 거야." 강민혁이 종이를 펼쳤다. 볼펜으로 그린 중앙평가센터 약도. 아날로그. "시우가 안에 들어가면 우리는 바깥에서 움직인다. 통신 방법, 탈출 루트, 긴급 상황 프로토콜. 3시간 내에 연락이 없으면 비상 발동."
윤서가 입술을 깨물었다. 반대하고 싶지만 논리로 밀리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시우가 윤서를 보았다. "윤서, 넌 나를 지하도서관으로 데려왔잖아. '혼자 하지 마'라고 했고."
"..."
"혼자 안 가. 너희가 바깥에 있으니까."
윤서의 주먹이 풀렸다. 아직 불안이 가시지 않은 눈이었지만, 고개를 돌리며 작게 말했다.
"죽으면 진짜 죽는다."
시우는 대답 대신 카드를 주머니에 넣었다.
중앙평가센터. 아침 8시.
유리와 강철의 건물이 아침 햇살에 눈이 멀 정도로 빛났다. 한 달 전에는 F등급 수험자로 이 문을 들어갔다. 의도적으로 오답을 눌러가며.
검은 카드를 1층 로비의 보안 스캐너에 대었다.
[S-CLASS INTEGRATION PROGRAM 확인. 지하 3층 접근 허가.]
엘리베이터가 내려갔다. B1, B2를 지나 B3.
문이 열렸다.
지상의 유리와 강철과는 다른 세계였다. 벽면이 어두운 목재로 마감되어 있고, 바닥에 카펫이 깔려 있었다. 조명은 은은한 간접등. 발소리가 흡수되어 사라졌다.
복도 끝 방. 문이 열려 있었다.
서정원이 안에 서 있었다. 깔끔한 정장, 은테 안경, 그 미소.
"정시에 왔군."
안으로 들어갔다. 넓은 공간. 한쪽 벽은 통유리로 되어 있었는데, 유리 너머에 모니터가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수십 개의 화면에 데이터가 흘렀다. NAS의 심장부가 유리 너머에서 맥박치고 있었다.
중앙에 테이블. 의자 네 개. 세 사람이 이미 앉아 있었다.
"INTEGRATION PROGRAM의 다른 후보자들이야." 서정원이 말했다.
스무 살쯤의 여자. 서른 초반의 남자. 시우와 비슷한 또래의 소년. 모두 깔끔한 차림에 손목의 S등급 코드가 빛나고 있었다.
"이들도 자네처럼 — 특별한 사람들이야."
빈 의자에 앉았다. 셋의 시선이 닿았다. 탐색. 경계. 무관심. 세 종류의 눈.
서정원이 테이블 끝에 섰다.
"S-CLASS INTEGRATION PROGRAM. NAS 시스템의 다음 세대 관리자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이야. S등급 중에서도 상위 0.01%." 잠깐 멈추었다. "시스템을 이해하고, 관리하고, 개선할 수 있는 인재."
'개선.'
'소율이를 F등급에 가둔 시스템을 -개선-한다?'
벽면 스크린에 커리큘럼이 떴다. 수리논리 심화, 정책 시뮬레이션, NAS 관리 실무. 시우는 화면을 훑었다. 입을 열지 않았다. 듣는 쪽이 유리했다.
"오늘은 간단한 세션으로 시작하지. 수리논리."
화면에 문제가 떴다. 비선형 최적화. 확률 모델링. NAS 데이터 구조 분석.
시우의 눈이 문제를 읽었다.
답이 보였다. 물이 경사를 따라 흐르듯.
'여기서는 숨기면 안 돼.'
서정원은 이미 시우의 실력을 알고 있다. 일부러 틀리면 오히려 의심을 산다. 넘버리스의 스파이가 아니라 NAS에 순응하는 인재로 보여야 한다.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처음으로 — 모든 문제에 진짜 답을 입력했다.
손끝에서 숫자가 쏟아졌다. 변수를 분리하고, 행렬을 재구성하고, 해를 도출했다. 4년 동안 일부러 틀려온 답들이 둑이 무너진 것처럼 터져 나왔다.
세션이 끝났다.
점수: 992.
맞은편 여자의 눈이 커졌다. 옆의 남자가 입술을 깨물었다.
서정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시우를 보았다. 은테 안경 너머의 눈이 미세하게 좁아졌다. 만족인지, 계산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시우는 아무 표정도 짓지 않았다. 하지만 가슴 어딘가에서 해방감 같은 것이 치밀었다. 숨기지 않아도 되는 순간. 자신이 자신인 순간.
그리고 곧바로 자기 혐오가 목을 조였다.
'소율이가 외곽거주구에서 숨을 못 쉬는 동안, 여기서 해방감을 느끼고 있어?'
테이블 아래에서 주먹을 쥐었다. 아무도 보지 못하게.
세션이 끝나고 서정원이 시우를 불러 세웠다.
"잠깐."
다른 참가자들이 나간 뒤, 강의실에 두 사람만 남았다. 서정원이 테이블 위에 은색 봉투를 놓았다.
"자네의 S등급 임시 코드야. 정식 발급."
봉투 안에 검은색 밴드가 있었다. 어젯밤 윤서가 채워준 위조 코드와 비슷한 형태이지만, 이것은 NAS 공식 발급품이었다. 금색 NAS 로고가 새겨져 있다.
"이 코드로 S등급 시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 거주구 이동, 의료, 식량. 전부." 서정원이 밴드를 시우에게 내밀었다. "물론, 프로그램에서 이탈하면 즉시 비활성화되지만."
시우는 밴드를 받아 들었다. 가벼웠다. 위조 코드보다 훨씬 가벼운데, 손에 놓인 무게는 비교할 수 없이 무거웠다.
"한 가지 묻겠습니다."
"뭐든."
"제 동생이 있습니다. 한소율, 13세. 이 코드로 동생의 의료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서정원의 미소가 깊어졌다. 예상했다는 듯이.
"당연하지. 가족 의료 케어는 S등급의 기본 권한이야."
'함정이야.'
알고 있었다. 소율의 의료 지원이 미끼라는 것을. 프로그램에서 이탈하면 소율의 약도 끊긴다는 것을. 쇠사슬의 한쪽 끝이 소율에게 묶여 있다.
하지만 3개월분의 약이 떨어지면 소율은 다시 쓰러진다.
선택지가 없었다. 처음부터.
"수락하겠습니다."
서정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왼쪽 손목에 밴드를 찼다. S등급 코드가 활성화되며 미세한 전류가 흘렀다. 원래의 F등급 코드 위에 S등급 코드가 덮였다.
[인증 완료 — 한시우 / S등급 / INTEGRATION PROGRAM 등록]
두 개의 코드. 두 개의 등급. 두 개의 얼굴.
밤. 지하도서관.
시우가 돌아오자 윤서와 강민혁이 기다리고 있었다. 테이블에 앉아 오늘 있었던 일을 보고했다. 종이와 볼펜. 아날로그로.
"INTEGRATION PROGRAM. S등급 관리자 양성. 후보자 세 명과 나, 총 네 명. 서정원이 직접 지도."
"다른 후보자들 정보는?" 강민혁이 물었다.
"아직. 내일부터 함께 교육을 받으니까 파악할 수 있을 겁니다."
"S등급 임시 코드." 윤서가 시우의 손목을 보았다. 새 밴드가 빛나고 있었다. "진짜네."
"서정원이 직접 발급했어. F등급 코드 위에 덮는 형태. 양쪽을 넘나들 수 있어."
강민혁이 턱을 만졌다. "넘버리스의 스파이가 NAS 내부에 들어간 건 처음이야. 뭘 봐야 하는지 정리하자."
종이를 펼쳤다.
"우선순위. 첫째, S-0001 코드의 전체 이력. 서정원이 NAS 이전에 뭘 했는지. 둘째, 127명 보정 대상자의 완전한 프로파일. 왜 하필 이 사람들인지." 강민혁이 멈추었다.
"셋째." 시우가 말했다. "한정호의 행방."
강민혁이 시우를 보았다. 그리고 적었다.
시우는 종이 위의 글씨를 보았다. 볼펜으로 쓴 아버지의 이름. 2년 동안 NAS의 자동 응답뿐이었던 그 이름이, 처음으로 누군가의 목표 목록에 올라갔다.
윤서가 시우의 어깨를 쳤다. 세게는 아니었지만 분명하게.
"하나만 기억해."
"뭐."
"거기서 따뜻한 밥 먹는다고 이쪽 잊지 마."
시우가 윤서를 보았다. 장난기가 도는 눈이었지만, 그 아래에 진심이 보였다.
"배급 감자 맛을 잊을 리가 있겠어."
윤서가 코웃음을 쳤다.
소율이 자고 있는 간이 침상으로 갔다.
여전히 고른 숨소리. 약이 효과를 보고 있었다. 시우는 동생 옆에 앉았다.
손목의 S등급 코드가 희미하게 빛났다. 그 빛이 소율의 이불 위에 떨어졌다.
'이중 코드. 낮에는 S등급. 밤에는 F등급.'
'어느 쪽이 진짜야, 한시우.'
소율의 이마에 손을 대었다. 열이 내렸다. 작은 아이가 잠결에 시우의 손을 잡았다.
답은 분명했다. 여기가 진짜였다.
하지만 진짜를 지키려면 가짜가 되어야 했다.
내일부터 두 개의 세계를 산다. 서정원의 눈을 속이면서 넘버리스를 위한 정보를 빼낸다. 한 번이라도 들키면 — 소율의 약이 끊기고, 자신은 아버지처럼 사라진다.
독 안에 들어간 쥐.
하지만 이 쥐는 독을 갉아먹을 이빨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