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문 위에 붙어 있는 현수막에 D-7이라고 적혀 있었다.
서하는 잠시 멈춰 섰다. 5월의 바람이 현수막 귀퉁이를 흔들었다. '중간고사 D-7 파이팅.' 글자 아래 작은 글씨로 '2학년 1학기 중간고사 5월 14일 시작'.
'1주일 남았네.'
서하는 가방끈을 고쳐 매고 정문을 지났다. 강남구 한영고등학교. 전학 첫날.
중앙 복도는 생각보다 넓고, 생각보다 차가웠다.
유리로 된 긴 통로가 A동과 B동을 연결하고 있었다. 아침 햇빛이 유리를 통과해서 바닥에 길게 깔렸지만, 이상하게 따뜻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학생들이 양쪽으로 걸어갔다. A동 쪽으로 가는 무리와 B동 쪽으로 가는 무리가 복도 한가운데에서 자연스럽게 갈라졌다.
서하는 그 갈라짐을 바라보았다.
'왜 한쪽으로 안 섞이지?'
A동으로 향하는 학생들은 손에 두꺼운 문제집을 들고 있었다. 표지에 '평가원 기출' 또는 '수능특강'이라는 글자가 보였다. B동으로 향하는 학생들은 교과서와 필기노트, 그리고 A4 클리어파일을 들고 있었다. 클리어파일 안쪽에 '세특 자료', '탐구 보고서' 같은 라벨이 붙어 있었다.
두 무리는 서로 말을 섞지 않았다. 심지어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서하는 복도 한가운데 유리 벽에 붙은 학교 안내도를 잠시 들여다보았다. A동은 '수능관', B동은 '생활관'이라고 공식 이름이 붙어 있었지만, 손으로 쓴 낙서가 그 아래 덧붙어 있었다.
A동: -정시- B동: -수시-
'공식 이름이 따로 있는 건가.'
서하는 안내도에서 눈을 떼고 교무실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교무실 앞에서 한 여선생님이 교장실 문을 닫고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40대 초반, 작은 체구, 얇은 테 안경. 얼굴에 아무 감정도 없는 척하고 있었지만 눈 밑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선생님의 손에 서류 한 뭉치가 들려 있었고, 그 위에 '2학년 7반 학생 현황'이라는 제목이 크게 적혀 있었다.
선생님이 서하를 보았다.
"아, 네가 윤서하구나. 기다리고 있었어." 담임 오지원이라고 자기 소개를 했다.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조금 지쳐 있었다. "7반으로 안내해 줄게."
서하는 인사를 했다.
"대전에서 왔다고?" 담임이 걸으면서 물었다.
"네."
"여기 아직 적응 안 됐을 텐데… 중간고사가 일주일 남아서 시기가 좀 그래. 원래는 방학 지나고 전학이 제일 편한데." 담임이 잠깐 말을 끊었다. "그래도, 여기 학생들은 중간고사 기간에 제일 정직해. 시험이 다가오면 연기할 여유가 없거든."
서하는 담임의 말 안에 들어 있는 가시를 느꼈지만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2학년 7반 교실은 복도 끝에서 두 번째였다.
문이 열리자 삼십 몇 개의 시선이 동시에 서하를 향했다. 교실 공기가 한 박자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칠판 구석에 누군가가 분필로 '중간 D-7'이라고 크게 써 놓았다. 그 아래 작은 글씨로 '지구과학 4단원 킬러 있음 주의.'
서하는 교실을 빠르게 훑었다.
왼쪽 창가 줄. 책상 위에 '수능특강 국어', '마더텅 수학', 그리고 공책. 공책 겉표지에 '오답노트 — 3월 학평'이라고 적혀 있었다. 책상에 앉은 학생들은 서하를 흘깃 보고 다시 책으로 돌아갔다.
오른쪽 복도 줄. 책상 위에 내신 교과서, 수업 프린트 뭉치, 그리고 클리어파일. 클리어파일 안쪽에 '세특 기초', '발표 주제 후보'라는 라벨. 이쪽 학생들은 서하를 훨씬 더 오래 쳐다보았다. 한 여학생이 옆 친구와 속삭였다.
"대전? 대전 내신 몇 등급이었대?"
"몰라. 전학 왔으니까 학종 싸움이지. 봉사활동도 이제 반영 안 되는데."
서하는 가운데 줄, 뒤에서 두 번째 자리로 안내됐다. 옆자리 학생이 고개를 들고 서하를 보았다. 170 정도의 키에 교복이 조금 컸다. 이어폰 한쪽을 귀에서 빼면서 눈으로 인사했다.
"이준혁." 준혁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윤서하."
"오케이." 준혁이 잠깐 창밖을 보았다가 다시 서하를 보았다. "한마디 할까."
"해봐."
"이 학교, 빨리 편 골라."
서하는 잠시 준혁을 보았다.
"편?"
준혁이 왼쪽 창가 줄을 턱으로 가리켰다.
"정시."
오른쪽 복도 줄을 가리켰다.
"수시."
"나머지는?"
준혁이 작게 웃었다. 웃을 때 눈이 거의 사라졌다.
"나머지는 편 없는 애들이야. 너랑 나 같은 애들."
조회 시간에 담임이 교탁에 서류 한 장을 올려놓았다.
"서하 환영 인사는 종례 때 다시 하고, 지금은 중요한 걸 하나 돌릴게. 이번 주까지 '입시 방향 설정 확인서'를 내야 해. 선생님이 학기 초에 말했지?"
교실이 잠깐 술렁였다. 서하 옆에서 준혁이 작게 혀를 찼다.
"이건 학교가 너희를 줄 세우려는 게 아니라, 너희가 뭘 준비해야 할지 선생님들이 더 효율적으로 도와주기 위한 거야." 담임이 평소에 많이 해본 말인 것처럼 덧붙였다. "체크 항목은 세 개야. 정시, 수시, 미정."
"미정도 있어요?" 창가 줄의 남학생 하나가 물었다.
"있어."
"미정하면 뭐 해줘요?"
담임이 잠시 대답을 찾다가 말했다.
"미정 체크하면, 선생님이 너랑 개인 상담 해."
남학생이 피식 웃었다. "상담이요? 시간 낭비네요."
담임이 남학생을 똑바로 보았다.
"너는 3월 학평 전교 몇 등이지?"
"정시파 내부 기준으로 8등이요."
"그럼 너는 정시에 체크해. 시간 낭비 안 하게."
남학생이 어깨를 으쓱하고 체크 표시를 했다.
담임이 서류를 학생들에게 돌렸다. 서하에게 왔을 때, 담임이 잠시 멈췄다가 말했다.
"윤서하는 천천히 해도 돼. 아직 하루밖에 안 됐으니까."
서하는 펜을 받아 들었다. 종이에 세 개의 동그라미 자리가 있었다.
정시. 수시. 미정.
서하의 펜 끝이 종이 위에서 잠깐 멈췄다. 교실 전체의 공기가 그 펜 끝에 모여드는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왼쪽 창가의 한 학생이 서하를 보고 있었다. 오른쪽 복도 줄의 여학생도 보고 있었다. 양쪽의 시선이 서하의 펜 끝에서 만났다.
서하는 펜을 내려놓았다.
"나중에 내도 돼요?"
담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창가 줄 학생의 입꼬리가 작게 올라갔고, 복도 줄 여학생의 눈이 가늘어졌다.
준혁이 옆에서 아주 작은 소리로 말했다.
"첫날부터 잘못 걸었네, 너."
점심시간, 급식실.
한영고의 급식실은 두 개의 영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공식적으로 나뉜 것은 아니었다. 입구에 안내문도 없었고, 선생님들이 자리를 지정해주지도 않았다. 그런데 학생들은 알아서 자리를 찾아갔다.
왼쪽 창가 쪽 긴 테이블에는 A동 학생들, 그러니까 정시파가 앉았다. 그들 앞에는 식판 대신 종이 프린트가 놓인 경우도 많았다. 밥을 먹으면서도 문제집을 펴 놓고 있었다. 한 학생이 다른 학생에게 물었다.
"3월 학평 독서 풀 때, 3번 지문 몇 분 걸렸어?"
"13분."
"진짜? 나는 9분이었는데. 4번 지문에서 말렸어."
"어. 4번은 함정 많아."
오른쪽 창가 쪽 테이블에는 B동 학생들, 수시파가 앉았다. 이쪽은 분위기가 조금 더 시끄러웠다. 손짓이 크고, 말이 빨랐다.
"너 생윤 내신 저번 1학년 때 몇 등급이었어?"
"2등급. 1컷에서 한 문제 차이로 밀렸어. 이번 중간에서 1등급 안 잡으면 고2 1학기 끝이야."
"고2 1학기가 그렇게 중요해?"
"아, 너 아직 몰라? 고2 1학기는 -누적 출발점-이야. 여기서 1등급 한 번 놓치면 평균을 끌어올리는 데 두 학기가 더 걸려."
서하는 식판을 들고 급식실 한가운데에 섰다. 왼쪽도, 오른쪽도 그의 자리가 아니었다. 가운데에 네모난 빈 테이블이 하나 있었다. 의자 네 개가 그 주변에 놓여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서하는 그 가운데 테이블에 앉았다.
양쪽의 대화가 한 박자 느려졌다.
서하는 젓가락을 들었다. 오늘 급식 메뉴는 돈가스, 양배추 샐러드, 미역국, 그리고 깍두기. 평범한 학교 급식.
가운데 테이블에 앉은 것만으로 급식실의 공기가 이상하게 바뀌었다는 것을, 서하는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그때 오른쪽 테이블 쪽에서 한 여학생이 일어섰다.
168 정도의 키, 단발머리, 교복 위에 짙은 감색 가디건. 손에는 A4 바인더. 얼굴에 표정 관리가 완벽하게 되어 있었다. 입꼬리가 올라가 있는데, 일부러 올린 게 아니라 그냥 그게 기본 표정인 사람 같았다.
여학생이 서하의 맞은편 자리에 식판을 올려놓았다.
"앉아도 돼?"
"자리는 많네요."
여학생이 웃었다.
"박채린. 2학년 7반 학생회 부회장." 채린이 손을 내밀었다. "윤서하 맞지? 전학 환영해."
서하는 잠깐 채린의 손을 보았다가 악수했다.
"고마워요."
"대전 학교 내신 1.3이라던데." 채린이 자연스럽게 말했다.
서하의 손이 잠깐 멈췄다. 전학 온 지 4시간 만에 내신 평균이 돌고 있다.
"그걸 어디서 들었어요?"
"학생회에서 전학생 명단 공유받을 때 봤어. 공식 경로야, 걱정 마." 채린이 어깨를 살짝 올렸다. "1.3이면, 중간고사만 잘 보면 여기서도 충분히 상위권이야. 수시로 한영고 1등 자리 노려볼 만해. 1등은 좀 욕심이라 치더라도, 5등 안에는 충분해."
"한영고 수시 1등이 있어요?"
"있지." 채린이 식판의 미역국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었다. "근데 지금은 2학년 학생회장이야. 이름은 말 안 해도 알 거야."
"어떻게 알죠?"
채린이 진짜로 웃었다. 이번엔 기본 표정이 아니라, 조금 날카로운 웃음이었다.
"네가 이 학교에서 누가 누군지 모르면, 3일 안에 망해."
서하는 돈가스를 한 조각 잘랐다.
"관심 가져줘서 고마워요." 서하가 말했다. "근데 저는 아직 아무것도 안 정했어요. 중간고사도 한 번 쳐봐야 알 거 같고, 학교도 더 봐야 할 거 같아서요."
"그럼 이렇게 생각해봐." 채린이 목소리를 낮추지 않고 자연스럽게 말했다. "수시 준비는 내가 도와줄 수 있어. 중간고사 족보도 줄 수 있고, 세특 주제도 네 대전 시절 기록을 한영고 기준으로 다시 포맷팅하는 거 도와줄 수 있어. 조건은—"
"조건." 서하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조건이 있네요."
채린이 잠깐 말을 멈췄다. 웃음이 유지되고 있었지만, 0.1초 정도 눈꼬리가 굳었다. 서하는 그걸 보았다.
"윤서하, 미안한데 이 학교에선 조건 없는 호의는 없어."
"그래요." 서하가 미역국을 한 숟가락 떠먹었다. "그럼 조건 들어볼게요."
"입시 방향 설정 확인서에 -수시-에 체크해 줘."
서하는 미역국을 삼켰다.
"그게 다예요?"
"그게 다야." 채린이 말했다. "그냥 종이 한 장의 체크 표시. 근데 그게 이 학교에선 제일 큰 거거든."
서하는 한참 채린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미정에 체크할 거예요."
급식실 한구석이 조용해졌다. 서하는 양쪽 테이블에서 시선이 다시 쏟아지는 것을 느꼈다.
채린의 입꼬리는 그대로였다. 하지만 서하는 그 입꼬리 뒤에서 무언가가 닫히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그래." 채린이 일어섰다. "좋은 점심 돼."
채린이 자기 테이블로 돌아가는 동안, 서하는 수저를 다시 들었다. 돈가스는 이미 식어 있었다.
방과 후.
서하가 교실에서 가방을 챙기고 있을 때, 문 쪽에서 누군가 들어왔다.
180 정도의 키, 단정한 교복, 안경. 오른손에 흰색 서류 봉투. 얼굴에 얇은 미소가 걸려 있었는데, 눈은 웃지 않았다. 왼쪽 창가 줄에서 누군가 작게 고개를 숙였다. 다른 학생 하나가 자기 가방을 챙기는 척하면서 자리를 피했다.
'쟤가 그 수시 1등?'
아니었다. 서하는 금방 알았다. 저건 정시파 쪽이었다.
"윤서하." 그가 서하의 자리 앞에 와서 멈췄다. 목소리가 낮았다. "강민재야."
서하는 가방끈을 쥔 채로 고개를 들었다.
"반가워요."
"그래." 민재가 안경을 살짝 올렸다. "바쁠 텐데 짧게 할게. 내가 여기 온 건, 네 얘기를 하고 싶어서야."
"제 얘기요?"
민재가 서류 봉투에서 A4 용지 한 장을 꺼냈다. 서하는 그 종이를 흘깃 보았다가, 본 순간 숨을 멈췄다.
거기엔 서하의 3월 학평 성적표가 있었다. 국어 원점수, 수학 원점수, 영어 등급, 탐구 점수. 그리고 서하가 다녔던 대전 학교의 이름과, 해당 시험 기준 전교 내 등수. 대전 학교 기준으로 서하는 3월 학평에서 전교 42등이었다.
서하는 그 종이를 본 적이 없었다. 학교에서 개별 통지받은 게 아니라, 학교 내부 문서였다.
"이걸 어디서 구했어요?"
민재가 가볍게 안경을 닦았다.
"구할 수 있는 곳에서 구했어."
"제 성적표예요."
"그러네." 민재가 종이를 접어 다시 봉투에 넣었다. "3월 학평 42등. 수도권 기준으로 환산하면 더 낮아질 거고, 한영고 기준 정시파 내부 서열로는 40등대 초반. 재미있네."
서하는 민재를 똑바로 보았다.
"재미있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
"그 점수면, 아직 -쓸모가 있다-는 뜻이야." 민재의 목소리가 한 톤 낮아졌다. "한영고 정시파는 전교 30등 안쪽에서만 자습실에 자리를 받아. 40등대는 대기 번호야. 근데 네가 이번 중간고사 기간을 지나고 6월 평가원 모의평가 전에 방향을 정확히 정시로 잡으면, 자습실 대기 번호를 당겨 줄 수 있어. 네가 원하면."
"원한다는 건… 조건이 있다는 거죠?"
민재가 처음으로 서하를 잠깐 흥미롭게 쳐다보았다.
"그래. 다들 그렇게 물어. 조건은 간단해. 입시 방향 설정 확인서에 -정시-에 체크해 줘. 그리고 6월 모평에서 최소 전교 20등 안쪽을 찍어 줘. 그럼 너는 정시파 정식 멤버가 된다."
서하는 짧은 침묵을 지켰다.
"질문이 있어요."
"해봐."
"한영고 정시파가 말하는 '전교 20등'이 모의고사 기준이에요, 아니면 중간고사 기준이에요?"
민재가 한 박자 멈췄다. 그 한 박자 안에, 서하를 보는 민재의 눈이 한 단계 더 날카로워졌다.
"모의고사." 민재가 짧게 말했다. "우리한테는 -내신은 등수가 아니야-. 중간고사는 수시파들이 목숨 거는 시험이고, 우리는 3월, 6월, 9월, 11월 모의고사로 전교 등수를 매겨. 너도 이제부터 그 세계에서 살 건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거야."
"저는 내신도 보는데요."
"보는 거랑 그걸로 평가받는 거는 달라." 민재가 봉투를 들어 서하 책상 위에 올렸다. "봉투 안에 네 3월 학평 답안 복사본도 있어. 어느 문제를 왜 틀렸는지는 네가 제일 잘 알 거야. 6월 모평에서 네가 보여주는 숫자로, 내가 너한테 대기 번호를 줄지 말지를 결정할게. 그리고—"
민재가 한 걸음 물러섰다.
"—5월 중간고사 기간은 너한테 의미가 없어. 우리한테도. 그 시간에 6월 모평 준비하는 게 정시파의 규칙이야."
민재가 문 쪽으로 걸어갔다. 문고리에 손을 올리고 잠깐 멈췄다.
"아, 그리고 윤서하."
"네."
"점심시간에 박채린이랑 얘기한 거 봤어. 걔는 너한테 수시로 오라고 했지?"
"…네."
"채린이 너한테 관심 가지는 건, 네가 내신 1.3이어서야. 채린의 세계에선 그 숫자가 모든 걸 결정해. 우리 세계에선 그 숫자는 -아무것도 아니야-. 어느 쪽을 고를지는 네가 정해. 근데 -미정-은 선택이 아니야. 이 학교에선."
민재가 나갔다.
서하는 책상 위의 봉투를 내려다보았다. 흰색 A4 봉투 안에, 자신이 본 적 없는 자신의 성적표가 들어 있었다.
창밖으로 5월의 햇빛이 기울고 있었다. 현수막의 글씨가 바람에 흔들렸다. 'D-7.'
서하는 봉투를 가방에 넣었다. 손 끝이 약간 차가워져 있었다.
'중간고사 성적표랑 모의고사 성적표가 완전히 다른 성적표였네, 이 학교에선.'
서하는 교실 불을 끄고 복도로 나왔다. 복도 끝에서 누군가가 서하를 기다리고 있었다. 준혁이었다.
"왜 기다렸어?"
"집 방향 같을까 해서." 준혁이 이어폰 한쪽을 다시 귀에 꽂았다. "그리고 하나만 물어볼게."
"뭔데?"
"너, 진짜 미정에 체크할 거야?"
서하는 복도 창밖, 멀리 A동 자습실 창에 아직 불이 켜져 있는 걸 보았다. 7교시가 끝난 지 한 시간이 지난 저녁이었다. 저 불빛 아래, 3월 학평 순위로 자리가 매겨진 학생들이 앉아 있었다. 그 옆 건물에선 수시파가 세특 주제 탐구를 하고 있을 것이었다.
두 건물. 두 개의 불빛. 두 개의 성적표.
서하는 가방 안에 든 봉투를 잠깐 느꼈다.
"응." 서하가 말했다. "미정에 체크할 거야."
준혁이 한참을 서하를 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너, 각오해."
"뭘."
"이 학교에서 미정은," 준혁이 잠시 말을 골랐다. "미정이 아니라 -표적-이라는 뜻이야."
두 사람은 복도 끝을 향해 걸었다. 바깥에서 바람에 현수막이 크게 한 번 펄럭였다. 'D-7'이라는 글자가 잠시 구겨졌다가 다시 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