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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자습

1화 형광등 아래

펜 끝이 떨렸다.

서이안은 왼손으로 오른손목을 감싸 쥐었다. 힘을 주자 떨림이 멈췄다. 멈추면 됐다. 원래 이 시간이면 그랬다. 새벽 한 시. 수면 부족, 카페인 과다, 눈의 피로. 원인은 명확하고, 해결도 간단하다.

문제 될 것 없다.

B1 야간자습실은 형광등 소리가 지배하는 공간이었다. 지이이, 하는 고주파 진동. 거기에 난방 파이프가 간헐적으로 우르릉 울리고, 이안의 펜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섞였다. 그게 전부. 50개의 칸막이 책상 중 불이 켜진 곳은 다섯. 그중에서도 이 시간까지 남아 있는 건 언제나 둘이었다.

자신과, 31번 자리.

이안은 시선을 들지 않았다. 들 이유가 없었다. 수학 기출 분석 3회독. 2024학년도 수능 킬러 문항 5개. 각 문항당 풀이 시간 4분 이내 목표. 지금 3번째 문항에서 7분째다. 3분 초과. 비효율.

'집중해.'

형광등이 한 번 깜빡였다. 이안은 눈을 들지 않았다.


청람관의 아침은 6시 30분에 시작된다.

기상 벨이 울리기 10분 전, 이안의 눈은 이미 떠 있었다. 5시간 수면. 그 이상은 사치고, 그 이하는 비효율. 정확히 5시간. 알람보다 먼저 깨는 것까지가 자기관리의 일부다.

이불을 개고 세면대 앞에 섰다. 거울 속 얼굴. 다크서클이 관자놀이까지 번져 있었지만, 이안은 거울을 1초 이상 보지 않았다. 볼 필요가 없다. 얼굴은 변수가 아니다.

"언니, 진짜… 좀비 같아."

아래 침대에서 유하린이 이불을 뒤집어쓴 채 중얼거렸다. 하린은 이안보다 생일이 두 달 늦다. 같은 나이인데 한 학년 차이가 나는 그 두 달이 '언니'라는 호칭을 만들었다.

"일어나. 식당 줄 서야 돼."

"5분만…"

"3분."

이안은 세면을 마치고 학원복으로 갈아입었다. 청람관 지정 체육복 상의에 검정 트레이닝 바지. 머리카락을 높이 묶고, 볼펜 두 자루와 수정테이프를 필통에 넣었다. 오늘은 월요일. 성적 게시일.

위장이 조금 뒤틀렸다. 이안은 그 감각을 무시했다.


1층 로비의 대형 모니터 앞은 이미 학생들로 붐볐다.

매주 금요일 모의고사, 월요일 성적 게시. 청람관의 리듬은 이 두 날을 축으로 돌아갔다. 성적이 올랐는지 떨어졌는지, 특실을 유지하는지 4인실로 쫓겨나는지. 모든 것이 저 화면 위의 숫자로 결정됐다.

이안은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모니터를 봤다.

-1위 — 서이안 / 408점 / ▲2점-

숨을 내쉬었다. 아주 조금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괜찮아. 유지했어.'

그런데 '괜찮다'는 건 뭘까. 1등인데 왜 안도하는 걸까. 1등이면 당연한 건데, 왜 매주 이 화면 앞에서 심장이 빨라지는 걸까.

이안은 그 생각을 밀어냈다. 불필요한 감정 분석은 시간 낭비다.

시선이 자연스럽게 2위로 내려갔다.

-2위 — 한시우 / 404점 / ▼3점-

4점 차. 지난주보다 벌어졌다. 시선을 옮기려는데, 로비 끝에서 해당 이름의 주인이 눈에 들어왔다.

한시우. 검정 후드집업에 손을 찔러넣고, 성적 게시판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식당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길어서 눈을 반쯤 가렸다. 2등인 사람의 걸음이 아니었다. 꼴등인 사람의 걸음도 아니었다. 성적 따위 존재하지 않는 사람의 걸음이었다.

'저 사람은 왜 여기 있는 걸까.'

이안은 그 의문도 밀어냈다. 남의 사정은 변수가 아니다.

"야, 서이안 또 1등이다." "저년은 진짜 기계냐—" "아 조용히 해, 들리잖아."

뒤에서 수군거림이 들렸다. 이안은 귀를 닫았다. 듣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 오래전에 배운 기술이었다.


청람관의 하루는 촘촘하다.

오전 6:50 조식. 7:30 국어. 9:00 수학. 10:30 영어. 점심. 오후 자습 4시간. 석식. 야간자습 1차(19:00~22:00). 취침 준비. 야간자습 2차(23:00~02:00, 신청제).

이안은 야간자습 2차를 빠진 적이 없었다. 입학 첫날부터.

"서이안 학생, 오늘도 야간자습 2차 신청이네요."

감독관이 명단을 체크하며 말했다. 특별한 의미 없는 확인이었다.

"네."

"컨디션 괜찮아요? 매일은 좀—"

"괜찮습니다."

B1 계단을 내려갔다. 지하로 내려갈수록 공기가 무거워졌다. 환기 시스템이 오래됐다. 건조한 난방 공기에 먼지 냄새가 섞여 있었다. 청람관 전체가 밀폐된 공간이었지만, 이 야간자습실은 그중에서도 가장 깊은 곳이었다.

자리에 앉았다. 12번. 자신의 자리.

형광등이 켜지고, 세계가 축소됐다. 칸막이 안쪽, 책상 위, 문제지와 펜. 그 바깥은 존재하지 않는다.

11시 10분. 여덟 명. 11시 40분, 다섯 명. 자정, 세 명.

새벽 12시 30분. 두 명.

언제나 그랬다. 마지막까지 남는 건 자신과 31번 자리.

이안은 시선을 들었다. 오늘따라 왜인지 그 자리가 신경 쓰였다.

31번. 칸막이 너머로 보이는 건 검정 후드의 등과 이어폰 줄. 책상 위에 펼쳐진 건 — 문제지가 아니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다. 팔짱을 끼고 형광등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공부를 안 하면서 왜 새벽까지 여기 있는 거지.'

이안은 시선을 내렸다. 남의 사정이다. 변수가 아니다.

펜을 다시 잡았다. 4번째 킬러 문항. 풀이 시간 4분 목표.

그런데 펜이 움직이지 않았다.

31번 자리에서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의자가 삐걱거리는 소리. 일어나는 소리. 발소리.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지나갔다. 자습실 뒤쪽 출입구 방향으로.

이안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돌릴 이유가 없었다. 화장실이겠지. 아니면 자판기.

1분 후 발소리가 돌아왔다. 이안의 자리 옆을 지나갔다.

스치듯 봤다. 시우의 옆얼굴. 형광등 아래 창백한 피부. 머리카락 사이로 보인 왼쪽 귀. 귀 뒤에 작은 흉터 같은 것이 있었다. 1센티미터 정도. 하얗게 아문 자국.

'…뭐지.'

이안은 시선을 내렸다. 문제지. 4번 문항. 점화식을 세우고—

펜 끝이 떨렸다.

이번에는 손목을 쥐는 것으로 멈추지 않았다.


새벽 1시 27분.

거의 한 시간째 같은 문항을 붙들고 있었다. 풀이를 적다 지우고, 다시 적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집중력이 밑빠진 독처럼 새어나가고 있었다.

형광등의 고주파 진동이 유난히 크게 들리는 시간이었다. 감독관이 새벽 1시에 마지막 순찰을 돌았고, 다음 감독관은 1시 15분에 와야 했다. 오늘은 1시 20분이 넘어도 오지 않았다. 교대가 늦어진 모양이었다.

자습실에는 두 명만 남아 있었다.

이안은 문제를 풀고 있었다. 아니, 풀고 있는 척하고 있었다. 15분 전부터 같은 문제를 보고 있었다. 머리가 작동하지 않았다. 눈앞의 숫자들이 의미를 잃었다.

'왜 이러지. 집중해. 집중하면 돼. 집중—'

펜을 내려놓았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숨을 쉬었다. 들이쉬고, 내쉬고. 괜찮다. 괜찮은 거다. 피곤해서 그런 거다. 내일은 괜찮을 거다.

그런데 '내일'은 오늘과 같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내일도 새벽까지 여기 앉아 있을 거고, 내일도 손이 떨릴 거고, 내일도 "괜찮다"고 말할 거다. 모레도. 그다음 날도. 수능 날까지.

'엄마가 전화했을 때 뭐라고 했지.'

'"이안아, 엄마는 네가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해. 근데 최선을 다하면 당연히 1등이잖아?"'

'당연히.'

눈에서 물기가 번졌다.

소리를 내지 않았다. 소리를 내면 들킨다. 여기는 자습실이다. 울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어디에도 울 수 있는 곳 따위는 없다.

손가락으로 눈 밑을 눌렀다. 닦았다. 또 번졌다. 닦았다. 멈추지 않았다.

'그만. 그만해. 약한 거 아니야. 피곤해서 그런 거야. 호르몬. 수면 부족. 원인은 명확하고—'

의자가 삐걱거렸다.

31번 자리에서.

발소리가 다가왔다. 가볍고 느린 발소리. 이안은 얼굴을 감싼 채 굳었다. 몸이 돌이 됐다.

'가. 제발 그냥 지나가.'

발소리가 멈췄다. 바로 옆에서.

무언가가 책상 위에 놓이는 소리. 딱. 플라스틱이 나무에 닿는 소리.

그리고 목소리.

"…울어도 돼. 여기 CCTV 없으니까."

낮은 목소리. 건조한 톤. 위로도 아니고 동정도 아닌, 그냥 — 사실을 말하는 것 같은 목소리.

이안이 손가락 사이로 고개를 들었다.

한시우가 서 있었다. 후드를 눌러쓴 채, 캔커피 하나를 이안의 책상 위에 올려놓고, 이안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표정은 없었다. 동정도, 관심도, 불편함도 없는 얼굴.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이안의 눈은 젖어 있었고, 시우의 눈은 건조했다.

그 대비가 형광등 아래에서 이상하리만큼 선명했다.

이안은 입을 열려 했다. "괜찮아" 혹은 "필요 없어" 혹은 "나가줘". 어떤 말이든. 통제를 되찾을 수 있는 말이면 됐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시우가 한 박자 기다렸다가, 아무 말 없이 돌아갔다. 31번 자리로. 의자에 다시 앉는 소리가 들렸다.

이안은 책상 위의 캔커피를 봤다. 차가운 캔에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자습실의 따뜻한 공기와 만나 표면에 물기가 번지고 있었다.

이안의 눈에도 물기가 번지고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 이번에는 닦지 않았다는 것.

형광등이 지이이, 하고 울었다.

새벽 1시 34분. 야간자습실. 12번 자리와 31번 자리 사이에, 아직 이름이 없는 무언가가 생겼다.

이안은 그것을 모른 척했다.

하지만 손이 떨리는 건 멈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