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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호 후에는 고백 금지

24화 점호 후에는 고백 금지

퇴소는 유예됐다.

벌점.

특별관리 대상.

자습실 좌석 분리.

행정실 동석 통화.

장학 유지 조건부 재심.

보호자 통화 결과 확인.

점호 후 이동 적발 시 즉시 퇴소 심의 재개.

판정서는 길었다.

하지만 서윤에게 가장 크게 남은 문장은 하나였다.

남아도 된다.

회의실을 나온 뒤, 이준은 서윤보다 한 걸음 떨어져 걸었다.

규정 때문이었다.

그 한 걸음이 서운하고, 또 다행이었다.

행정동 밖으로 나오자 점심 종이 울렸다.

식당 쪽에서 밥 냄새가 났다. 누군가는 오늘도 탐구 프린트를 들고 뛰었고, 누군가는 빌보드 앞에서 자기 이름을 찾고 있었다.

세상은 아무렇지 않게 계속됐다.

서윤만 조금 달라져 있었다.

"괜찮아?"

이준이 물었다.

"안 괜찮아."

서윤은 솔직하게 말했다.

"근데 숨기는 것보다는 나아."

이준이 웃었다.

"내 말 따라 하네."

"네가 먼저 좋은 말 했잖아."

둘은 동시에 세라 조교 쪽을 봤다.

멀리서 세라 조교가 지켜보고 있었다.

둘은 동시에 표정을 정리했다.

세라 조교는 한숨을 쉬고 지나갔다.

그날 오후 행정실 통화 시간에 서윤은 엄마에게 말했다.

전부는 아니었다.

전부를 말하기에는 행정실 전화기는 너무 낡았고, 옆자리 세라 조교의 펜 소리는 너무 또렷했다.

그래도 숨기지는 않았다.

"규정 어겼어. 그래서 벌점 받았고, 특별관리 대상 됐어."

수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서윤은 눈을 감았다.

엄마가 먼저 물었다.

`퇴소는 아니야?`

"응. 남아도 돼."

`공부는?`

그 질문이 제일 아팠다.

서윤은 책상 위 통화 기록지를 봤다.

`보호자 통화 결과 확인`

빈칸이었다.

"망치지 않을게. 좋아하는 걸 핑계로 망치지는 않을게."

수화기 너머에서 엄마가 한숨을 쉬었다.

화난 숨이었고, 안도한 숨이기도 했다.

`그럼 남아서 해. 대신 네가 한 말은 네가 지켜.`

전화를 끊고 나오자 복도 끝에 이준이 서 있었다.

한 걸음 거리.

규정에 맞는 거리.

"통화했어?"

"응."

"괜찮아?"

"안 괜찮아."

서윤은 솔직하게 말했다.

"근데 이제 엄마도 알아."

이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손에 종이 한 장을 들고 있었다.

`장학 유지 조건부 재심: 다음 빌보드 3위 이내 회복 및 생활지도 추가 위반 없음`

서윤은 종이를 봤다.

"3위 안에 들어야 하네."

"응."

"나 보지 말고."

이준이 아주 작게 웃었다.

"그건 조건에 없던데."

서윤도 웃을 뻔했다.

세라 조교가 복도 끝에서 기침했다.

둘은 동시에 웃음을 접었다.

그날 저녁, 새 좌석표가 붙었다.

서윤은 A반 자습실 5열 8번.

이준은 S반 전용실 맨 앞줄.

2열 12번과 3열 12번은 끝났다.

하린은 새 자리 옆에 앉아 말했다.

"내 감시 범위 안으로 온 걸 환영한다."

"감시하지 마."

"너희는 감시가 필요해."

"알아."

하린이 잠깐 서윤을 봤다.

"오. 인정 빠르네."

"너한테 배웠어."

하린은 입술을 씰룩였다.

"그래도 봐주지는 않을 거야."

"응."

서윤은 문제집을 폈다.

국어 12번.

이번에는 답이 보였다.

좋아한다고 해서 공부가 망하는 건 아니었다.

좋아하는 걸 모르는 척하느라 망하는 거였다.

자습실은 여전히 답답했다.

누군가는 졸았고, 누군가는 손톱을 물어뜯었고, 감독 조교는 발소리 없이 복도를 지나갔다. 형광등 아래 책상들은 다 똑같아 보였지만, 서윤은 이제 자기 책상과 자기 마음을 조금 구분할 수 있었다.

자습 종료 10분 전, 하린이 책상 아래를 발로 쳤다.

"야."

"왜."

"이거 네 거야?"

하린이 접힌 쪽지를 내밀었다.

서윤은 받기 전부터 알았다.

이준의 글씨였다.

`점호 후에는 고백 금지.`

그 아래.

`그러니까 수능 끝나고, 정문 앞.`

서윤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하린이 입술을 깨물었다.

"나 이건 못 막아."

"막지 마."

하린은 서윤을 봤다.

"대신 수능 전에는 답장하지 마."

"왜?"

"네가 답장하면 걔 또 못 기다린 척할 거잖아."

서윤은 쪽지를 문제집 사이에 넣었다.

방송이 울렸다.

`자습 종료 5분 전입니다. 학생들은 책상 정리 후 점호 준비 바랍니다.`

서윤은 마지막 문제까지 풀었다.

그리고 답안지 맨 아래 빈칸에 아주 작게 적었다.

`정문 앞.`

그건 답장이 아니었다.

아직은.

점호 후에는 고백 금지.

그래서 그들은, 점호가 없는 날을 기다리기로 했다.

시즌 1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