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행자는 이준하의 부하가 아니었다.
시우가 중앙평가센터에서 나와 셔틀 정류장으로 걸을 때, 또 누군가 따라오고 있었다. 이번에는 발소리가 달랐다. 더 가볍고, 더 작고, 더 빨랐다.
골목 모퉁이에서 잡으려 했지만, 상대가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잡지 마요. 이야기하러 온 거예요."
소녀였다. 열다섯쯤. 마른 체구에 큰 눈. 낡은 패딩을 입고 있었는데 F등급 거주구에서 흔히 보는 종류였다. 하지만 눈이 달랐다. 겁먹지 않은 눈. 무언가를 결심한 사람의 눈.
"누구야."
"박은채. 15살. F등급." 소녀가 숨을 고르며 말했다. "당신이 NAS에 출입하는 거 봤어요. S등급 코드로."
시우의 눈이 좁아졌다.
"어떻게 알았어."
"매일 중앙평가센터 앞에서 지켜봤으니까." 은채가 시우의 손목을 가리켰다. "이중 코드죠? S등급이 F등급 거주구로 돌아오는 사람은 없어요. 코드를 두 개 가진 것 아니면 말이 안 돼요."
날카로운 관찰이었다. 시우는 경계와 다른 무언가 사이에서 판단을 유보했다.
"왜 나를 찾는 건데."
은채가 주머니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 몇 번이고 접고 편 흔적.
"나도 점수 조작 당한 사람이에요."
지하도서관. 은채를 데리고 왔다.
윤서가 처음에는 경계했지만, 은채가 보여준 데이터에 태도가 바뀌었다.
"원본 점수 945." 윤서가 종이를 읽었다. "S등급 수준."
"3년 전에 스스로 알아냈어요." 은채가 테이블에 앉았다. 작은 몸이 의자에 비해 더 작아 보였다. "NAS 코드가 이상하게 깜박거리길래 — 처음에는 오작동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패턴이 보였어요. 코드가 가끔 S로 바뀌었다가 돌아가는 거요."
시우가 고개를 들었다. 자신에게도 같은 현상이 있었다. F가 S로 깜박거렸던 0.5초. NAS 코드의 이상 반응.
"혼자 조사했어요. 부모님은 없고, 의지할 사람도 없어서. 다크넷에서 해킹 도구를 구해서 — 근데 IT 쪽은 약해서 겨우 제 기록만 열어봤어요."
"거기서 보정 기록을 찾은 거야." 시우가 말했다.
은채가 고개를 끄덕였다. "945가 298로. 처음부터."
강민혁이 은채의 기록과 넘버리스가 보유한 127명 리스트를 대조했다. 박은채 — 17번째.
"127명 중 한 명이 직접 찾아온 건 처음이야." 강민혁이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자기가 조작당했다는 걸 모르고 있어."
"저도 몰랐으면 좋았을 거예요." 은채가 조용히 말했다. "알고 나니까 더 참을 수가 없거든요."
시우는 은채를 보았다. 소율보다 두 살 많을 뿐이었다. 눈 속의 분노는 시우 자신과 닮아 있었다. 다만 시우는 냉소로 가렸고, 은채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은채. 하나만 물어볼게."
"네."
"왜 하필 -나-를?"
은채가 주머니에서 또 다른 종이를 꺼냈다. 이번 것은 더 낡았다. 누렇게 변색된 종이에 연필로 쓴 글씨.
"넘버리스의 오래된 통신 채널에 남아 있던 거예요. 우연히 발견했어요. 암호가 걸려 있었는데 숫자 패턴이 보여서 풀었어요."
시우가 종이를 받아 들었다.
손이 떨렸다.
아버지의 필체였다. 한정호의 글씨. 2년 동안 보지 못한 그 필체가 종이 위에 살아 있었다.
"이거..." 목소리가 갈라졌다. "어디서 나온 거야."
"넘버리스 통신 채널이요. 2029년 11월에 남겨진 메시지. 실종 직전이에요."
시우가 종이를 읽었다. 글씨가 급했다. 떨리는 손으로 쓴 것 같았다.
'수신: 넘버리스 전원'
'이것이 내 마지막 통신이 될 수 있다.'
'NAS의 점수 보정은 127명에게만 적용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시작일 뿐이다.'
'종합평가는 학력을 측정하는 시스템이 아니다.'
다음 줄에 눈이 고정되었다.
'NAS가 진짜 분류하는 것은 학력이 아니다. 유전자다.'
지하도서관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윤서가 시우의 어깨 너머로 읽고 있었다.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유전자..." 강민혁이 중얼거렸다.
"종합평가가 단순한 학력 평가가 아니라는 거예요." 시우가 말했다. 머릿속의 톱니바퀴가 미친 듯이 돌았다. "평가센터에서 생체 인증 하잖아. NAS 코드 스캔, 지문, 홍채. 그 과정에서 유전자 데이터를 수집하는 건 기술적으로 가능해."
"학력 평가와 유전자 수집을 동시에." 윤서가 말했다. "5천만 명의 유전자를 매달 갱신하면서."
"그리고 특정 유전자 변이를 가진 사람을 — 분류한다." 시우가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127명이 전부 같은 유전자 마커를 공유하고 있다고 했지?"
강민혁이 서가에서 파일을 꺼내 왔다. 넘버리스가 수집해 온 127명의 데이터.
"맞아. 의료 기록이 확보된 23명을 분석한 결과, 전원이 특정 유전자 변이를 가지고 있어. 하지만 이 변이가 뭘 의미하는지는 아직—"
"왜 그 사람들을 F등급으로 만드는지." 시우가 끊었다. "S등급이 될 수 있는 사람을 바닥으로 떨어뜨린 이유."
침묵.
은채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뭔가 위험한 거 아닐까요. NAS한테."
그 말이 지하 공간에 떠돌았다. 아무도 반박하지 못했다.
다음 날. INTEGRATION PROGRAM.
오후 교육이 끝나고 서정원이 시우를 불렀다.
"잠깐 시간 되나."
교육실이 아닌 서정원의 개인 사무실. 처음 들어가는 곳이었다.
방은 넓었다. 한쪽 벽 전체가 책장이었다. NAS 체제에서 종이 책은 사실상 불법이지만, 서정원의 사무실에는 수백 권이 꽂혀 있었다. 법 위의 사람에게 법은 적용되지 않는다.
"앉아."
가죽 의자에 앉았다. 등이 차가운 가죽에 닿았다.
서정원이 책장 앞에 섰다. 한 권을 뽑아 들었다.
"자네의 아버지 이야기를 하고 싶어."
심장이 한 박자 쉬었다. 얼굴은 움직이지 않았다.
"한정호." 서정원이 책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영리한 사람이었어. 자네와 비슷하게. 데이터를 읽는 눈이 있었지."
"알고 계셨습니까."
"물론이야. D등급에서 F등급으로 강등된 후 NAS의 이상 데이터를 추적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지켜보고 있었어." 서정원이 돌아보았다. "하지만 영리한 것과 현명한 것은 다르지."
"무슨 뜻입니까."
"영리한 사람은 진실을 찾아. 현명한 사람은 진실을 찾은 후 -어떻게 할지-를 안다." 서정원이 책을 시우에게 건넸다. "자네의 아버지는 영리했지만, 현명하지 못했어."
책을 받았다. 유전학 논문 모음집. 표지에 — '인간 유전체와 인지 능력의 상관관계: 2020-2025 연구 종합'.
'유전자.'
아버지의 메시지와 연결되었다.
"이 논문을 왜 저한테 주는 겁니까."
"자네가 알고 싶어하는 것의 일부가 거기에 있으니까."
시우가 서정원을 올려다보았다. 은테 안경 너머의 눈. 부드럽지만 계산적인. 모든 것을 예상하고, 예상한 대로 움직이는 사람의 눈.
"한 가지 더." 서정원이 책상으로 돌아갔다. "개인적인 과제를 주겠어. INTEGRATION PROGRAM 정규 과정은 아니야."
"뭡니까."
"NAS 보정 알고리즘의 수학적 구조를 분석해 봐. 자네의 수리논리 실력이면 2주면 가능할 거야." USB 하나를 내밀었다. "여기에 알고리즘의 기초 데이터가 있어."
'보정 알고리즘. 127명의 점수를 조작한 바로 그것.'
USB를 받았다. 차가운 금속이 손바닥에 닿았다.
이것은 시험이었다. 서정원이 시우를 시험하고 있다. 알고리즘을 분석할 수 있는지, 분석한 후 어떻게 반응하는지.
"감사합니다."
목소리에 감정을 담지 않았다.
서정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서는 순간, 시우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책장.
수백 권의 책 사이, 한쪽 구석. 책과 책 사이에 끼워진 사진 한 장.
흑백 사진이었다. 회색 콘크리트 건물이 빼곡히 들어선 거리. 전광판. 좁은 골목.
외곽거주구였다. F등급 거주구의 풍경.
'왜 서정원의 책장에 F등급 거주구 사진이 있지.'
시선을 빠르게 거두었다. 서정원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아니면 — 눈치채고도 모른 척하는 것인지.
"오늘은 여기까지야. 내일 봐."
사무실을 나왔다. 복도를 걸으며 USB를 주머니에 넣었다.
아버지의 메시지. 유전자 분류. 127명의 비밀. 서정원의 사진.
그리고 서정원의 말.
'영리한 것과 현명한 것은 다르다.'
아버지에게 한 말인 동시에, 시우에게 하는 경고였다.
밤. 지하도서관.
시우가 돌아오자 윤서와 강민혁, 은채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 메시지 후반부." 시우가 말했다. "해독됐어?"
은채가 고개를 끄덕이며 종이를 내밀었다.
'127은 시작이다. 진짜 숫자는 더 크다.'
'NAS 위에 NAS가 있다.'
'아키텍트를 찾아라.'
'아키텍트.'
시우가 종이에서 눈을 들었다.
"아키텍트." 강민혁이 반복했다. "NAS 위에 NAS. 서정원이 최고 관리자라고 생각했는데 — 위에 또 누군가 있다?"
"S-0001이 서정원의 코드잖아요." 윤서가 말했다. "보정 명령을 내린 것도 S-0001이고. 근데 서정원이 최종 결정자가 아니라면..."
시우가 USB를 꺼내 테이블에 놓았다.
"서정원이 준 거야. NAS 보정 알고리즘 데이터."
"함정 아니야?" 윤서가 경계했다.
"함정일 수도 있고, 시험일 수도 있어. 하지만 이 안에 127명의 조작 구조가 들어 있다면 — 아키텍트의 흔적도 있을 수 있어."
"분석할 수 있어?" 강민혁이 물었다.
"할 수 있습니다. 2주면."
강민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표정이 밝지 않았다.
"문제가 하나 더 있어. 이준하."
시우가 강민혁을 보았다.
"이준하가 NAS 지역 관리소에 방화를 시도했어. 오늘 새벽."
윤서의 얼굴이 굳었다.
"미수야." 강민혁이 이었다. "화재 감지 시스템에 걸려서 진압됐지만, NAS 보안이 외곽거주구 수색을 시작했어. 7-F 전체를 대상으로 지하 시설 점검이 예고됐어."
침묵이 내려왔다. 무거운 종류의 침묵.
"이동해야 합니다." 시우가 말했다.
강민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결정은 이미 내려져 있다는 표정이었다.
"이동한다." 목소리가 지하 공간에 울렸다. 주변의 조직원들이 고개를 들었다. "지하도서관의 모든 자료를 옮긴다. 48시간 내로."
"어디로요?" 은채가 물었다.
"백업 거점." 윤서가 대답했다. "외곽거주구 3-F. 서쪽으로 12킬로. 폐쇄된 지하철 노선 터널."
시우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벽면의 책들. 바닥에서 천장까지 가득한 종이 책들. NAS 이전 시대의 기억들.
이곳에서 소율이 처음 그림책이 아닌 책을 읽었다. 이곳에서 시우가 처음 넘버리스를 만났다.
이 모든 것을 옮겨야 한다. 이준하의 독단 때문에.
'분노가 분노를 부르고, 결국 전부를 태운다.'
윤서가 다가왔다. "소율이는 내가 데리고 이동할게."
"고마워."
"고마운 건 나중에 해. 지금은 뛸 시간이야."
윤서가 돌아서서 뛰어갔다. 조직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책을 상자에 담고, 파일을 묶고, 칠판의 다이어그램을 지웠다.
시우는 테이블 위의 종이들을 챙겼다. 아버지의 메시지. 127명 리스트. 서정원의 USB.
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단어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아키텍트를 찾아라.'
'NAS 위에 NAS가 있다.'
서정원은 NAS의 얼굴이었다. S-0001. 최고 관리자.
하지만 최고 관리자 위에 — 또 다른 존재가 있다.
시스템을 만든 자. 설계한 자. -아키텍트-.
USB를 손에 쥐었다. 이 안에 답의 실마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더 깊은 함정이.
지하도서관의 백열등이 하나둘 꺼지고 있었다. 3년간 저항의 거점이었던 이 공간이 어둠에 잠기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텅 비어가는 책장을 보았다. 나무 선반에 남은 먼지 자국이 책의 윤곽을 그리고 있었다.
돌아서서 계단을 올라갔다. 밤공기가 차가웠다. 외곽거주구 7-F의 하늘에는 여전히 별이 없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도 방향은 있었다.
아키텍트. NAS 위의 NAS.
아버지가 가리킨 그 이름을 향해, 한 발. 다시 한 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