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 커트라인이 조정되었습니다."
공동식당의 벽걸이 TV에서 서정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부드럽고, 차분하고, 내일 날씨를 알려주는 것 같은 톤. 그 목소리가 누군가의 삶을 박살 내는 숫자를 읽어도 사람들은 숟가락을 멈추지 않았다.
한시우는 배급 식판 위의 콩나물국을 떠 넣었다. 미지근했다. 늘 미지근했다. F등급 배급소의 국은 뜨거워본 적이 없다.
"D등급 커트라인은 482점에서 485점으로, C등급 커트라인은 614점에서 617점으로 각각 상향 조정되었습니다."
3점.
식당 여기저기서 작은 신음이 흘렀다. 숟가락을 놓는 소리. 3점이 누군가를 D에서 F로 밀어 넣었을 것이다. 24시간 내 짐을 싸서 이쪽으로 와야 한다. 곰팡이 냄새 나는 콘크리트 블록 속으로.
"콜록, 콜록."
옆에서 소율이 기침했다. 작은 어깨가 들썩거렸다. 시우가 손을 뻗어 동생의 등을 쓸었다.
"괜찮아?"
"응. 그냥 좀 걸려."
소율이 씩 웃으며 숟가락을 들었다. 열세 살. F등급 외곽거주구에서 태어나 F등급 배급으로 자란 아이. B등급 이상의 음식이 어떤 맛인지 모른다. 병원이 어떤 곳인지도.
TV 속에서 서정원이 미소 지었다. 은테 안경 너머의 눈이 카메라를 똑바로 보고 있었다.
"결함 있는 데이터는 교정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NAS의 원칙이며, 공정한 사회를 향한 우리 모두의 약속입니다."
'결함 있는 데이터.'
시우는 콩나물국에 시선을 떨어뜨렸다. 여기 앉아 있는 모든 사람이 그 '결함 있는 데이터'였다.
중앙평가센터는 용산 한복판에 서 있었다. 유리와 강철로 된 거대한 건물. 아침 햇살에 눈이 멀 정도로 반짝거렸다. F등급 거주구의 회색 콘크리트에 익숙한 눈에는 그 빛 자체가 폭력이었다.
시우는 평가센터행 셔틀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 안은 조용했다. 모두가 태블릿이나 문제집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긴장하고, 초조하고, 자기 점수만 생각하는 사람들.
"한시우."
옆자리에 누군가 앉았다.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누군지 알았다.
곽태준. 같은 외곽거주구 7-F. 같은 나이. 같은 F등급.
하지만 같지 않은 게 하나 있었다. 태준은 손목의 NAS 코드를 잘 보이게 하고 다녔다. 소매를 항상 걷어 올린 채. 선전포고처럼 — 나는 여기서 올라갈 거라고.
"이번 달 몇 점 나올 것 같아?"
시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490점은 넘길 거야. 수리논리 파트를 완벽하게 잡았거든." 태준이 태블릿을 들어 보였다. 빽빽한 풀이 노트. "3개월 연속 D 커트 넘으면 승급이야. 알지?"
"알아."
"그럼 넌? 올릴 생각 없어?"
시우는 창밖을 보았다. 버스가 한강을 건너고 있었다. 강 너머로 삼성타워 특별거주구의 첨탑이 아침 안개 속에 떠 있었다.
"F등급이 편하니, 한시우?"
"편한 건 아니지."
"그럼 왜 매번 바닥이야. 머리가 나쁜 것도 아닌데."
시우가 처음으로 태준을 보았다. 깔끔하게 정돈된 얼굴. F등급치고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공부하는 놈답게 눈 밑에 그림자가 졌지만, 눈만은 또렷했다. 믿음으로 가득 찬 눈. 시스템을 믿는 눈.
"노력하면 올라갈 수 있어. 시스템이 그렇게 만들어져 있잖아."
'시스템이 그렇게 만들어져 있잖아.'
시우는 대답 대신 다시 창밖을 보았다. 어떤 말도 이 사람의 믿음을 깨뜨리지 못한다. 아직은.
중앙평가센터 1층 로비. 벽면 전체를 덮은 전광판에 전국 실시간 순위가 흐르고 있었다. 숫자가 폭포처럼 쏟아졌다. 이름, 등급, 점수, 순위. 5천만 명의 데이터가 끊임없이 갱신되었다.
시우는 생체 인증 게이트를 통과했다. 왼쪽 손목의 NAS 코드가 스캐너에 닿자 차가운 전자음이 울렸다.
[인증 완료 — 한시우 / F등급 / 좌석 F-7824]
개인 부스에 앉았다. 1.5m x 1.5m의 밀폐된 공간. 모니터 하나, 키보드 하나. 평가가 시작되면 문이 잠긴다. 5과목, 순서대로.
시작 알림이 울렸다.
첫 번째 과목. 언어추론. 묵묵히 풀었다. 적당히 맞추면 됐다.
두 번째 과목. 수리논리.
화면에 첫 번째 문제가 떴다. 비선형 연립방정식의 해를 구하는 문제.
시우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답은 이미 보였다. 문제를 읽는 것과 거의 동시에. 물이 아래로 흐르듯, 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x = 3, y = -2, z = 7.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멈추었다.
천천히. 의도적으로. 오답을 입력했다.
x = 4, y = -1, z = 5.
다음 문제. 확률과 통계를 결합한 응용 문제. 역시 답이 보였다. 역시 틀렸다.
30문제 중 22문제. 틀린 것이 아니라 '틀려준' 것이다.
나머지 과목도 마찬가지였다. 악기를 연주하듯 정밀하게 점수를 조율했다. F등급을 유지할 수 있는 딱 그 범위. 너무 높지도, 너무 낮지도 않게.
'올라가면 눈에 띈다. 눈에 띄면 위험해진다.'
'아버지처럼.'
그 생각이 스칠 때 손이 잠깐 멈추었다. 그리고 다시, 묵묵히 오답을 눌렀다.
평가가 끝나고 거주동으로 돌아오니 소율이 공동주거동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낡은 패딩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고 벽에 기대선 작은 아이. 그 모습이 가슴을 쥐어짰다.
"오빠!"
소율이 뛰어왔다. 시우는 동생의 머리를 쓸어 넘겼다.
"밥 먹었어?"
"응! 배급소에서 감자 줬어. 오빠 거 아껴뒀어."
주거동 6층의 작은 방. 10평도 안 되는 공간에 이층 침대, 싱크대, 접이식 테이블이 전부였다. 벽에는 습기 얼룩이 지도처럼 번져 있었다.
소율이 테이블 위의 감자를 시우 앞으로 밀었다. 식어서 딱딱해진 배급 감자.
"오빠, 있잖아."
"응."
"오늘 배급소에서 B등급 아줌마가 나한테 웃어줬어."
시우의 손이 멈추었다.
"B등급이 왜 여기에?"
"모르겠어. 근데 진짜 웃어줬어. 처음이야, 다른 등급 사람이 나한테 웃어준 거."
소율의 눈이 반짝거렸다. 시우는 아무 말 하지 못했다. B등급 사람이 F등급 배급소에 올 이유는 없다. 강등 직전의 사람이었을 것이다. 곧 이쪽으로 떨어질 사람.
"오빠."
"응."
"우리 아빠는 언제 와?"
공기가 얼어붙었다.
시우는 감자를 한 입 베었다. 씹었다. 삼켰다. 그 시간을 벌어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아빠는... 일 때문에 멀리 갔잖아. 얘기했지?"
"근데 벌써 2년이야."
"응. 알아."
소율이 시우를 올려다보았다. 큰 눈에 뭔가 더 물으려는 기색이 보였지만, 오빠의 표정을 읽었는지 입을 다물었다.
2년 전. 아버지 한정호. D등급이었다. 그달 커트라인이 올라 F등급으로 강등, 2주 만에 사라졌다. 행방불명. 경찰 — 아니, F등급에게 경찰 서비스는 제공되지 않는다. NAS 관리국에 실종 신고를 넣었지만, 돌아온 것은 "해당 데이터에 대한 추적 권한이 없습니다"라는 자동 응답뿐이었다.
"오빠, 나 B등급 되면 병원 갈 수 있어?"
시우의 턱이 경직되었다. 소율이 또 기침했다. 작은 기침. 하지만 지난주보다 잦아졌다.
"소율아."
"응?"
"오빠가 꼭 올려줄게. 여긴... 네가 있을 곳이 아니야."
소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직 그 말의 무게를 모른다. 시우는 그게 다행이었다.
자정이 넘었다.
소율이 이층 침대 위칸에서 잠든 것을 확인하고, 시우는 조용히 방을 나왔다. 거주동 옥상. F등급 거주구의 밤하늘에는 별이 없었다. 공장 지대의 매연과 가로등의 주황빛이 하늘을 탁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바람이 차가웠다. 후드를 눌러 쓰고 콘크리트 바닥에 앉았다. 등 뒤로 녹슨 환풍기가 덜컹거렸다.
구형 태블릿을 꺼냈다. 아버지가 남긴 것이었다. NAS 이전 세대의 모델. 정부의 감시 소프트웨어가 깔려 있지 않은 희귀품.
태블릿을 켜고 접속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다크넷에서 구한 해킹 도구. 익명의 업로더가 '선물'이라는 제목으로 올려놓은 것이었다. 출처는 알 수 없지만, 작동은 확실했다.
화면에 검은 터미널 창이 열렸다. 커서가 깜박거렸다.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달렸다. NAS의 외부 방화벽은 견고했지만, 이 도구는 평가 데이터 아카이브의 구형 서버를 노렸다. 2027년 시스템 초기 데이터가 마이그레이션될 때 생긴 보안 허점.
10분이 걸렸다. 이마에 땀이 맺혔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손끝이 뜨거웠다.
접속 성공.
자신의 이름을 검색했다. 한시우. 주민등록번호. NAS 코드 F-7824.
화면에 기록이 쏟아졌다. 매월 평가 점수. F, F, F, F... 4년간의 기록이 일렬로 늘어섰다.
스크롤을 내렸다. 더 깊이. 더 과거로.
그리고 멈추었다.
2027년 8월. NAS 최초 평가. 시우가 13세 때.
화면의 숫자가 눈에 꽂혔다.
-원본 점수: 987 / 1000-
S등급 기준: 980점.
입이 벌어졌다. 심장이 한 박자 쉬었다가 두 배 속도로 뛰기 시작했다.
그 옆에 또 다른 필드가 있었다.
-보정 후 점수: 312 / 1000-
'보정.'
누군가 자신의 점수를 987에서 312로 '보정'했다. S등급에서 F등급으로. 처음부터. NAS가 시작된 그 첫 달부터.
손이 떨렸다. 태블릿 화면의 빛이 얼굴을 하얗게 물들였다. 옥상의 바람이 불었지만 느끼지 못했다.
4년.
4년 동안 F등급 거주구에서, 배급 감자를 먹으며, 아픈 동생의 병원조차 가지 못하며.
그것이 누군가의 '의도'였다.
"...뭐야 이게."
목소리가 바람 속으로 스며들었다. 손목 위 검은 테이프 아래의 NAS 코드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F-7824.
그 숫자가, 처음으로 낯설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