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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수능

6화 선배의 그림자

토요일 오전. 노원역 3번 출구 앞 카페.

김도현이라는 이름을 처음 검색한 것은 사흘 전이었다. 서라벌고 졸업생 커뮤니티. '2024학년도 서울대 경영학과 합격' 게시글에 축하 댓글이 30개 넘게 달려 있었다. 프로필 사진은 없었다.

메시지를 보냈다. '선배님, 서라벌고 3학년 한시우입니다. 서울대 경영 정시 준비 중입니다. 조언 부탁드려도 될까요.'

답장은 다음 날 새벽 1시에 왔다. '토요일 11시, 노원역 앞 카페에서 봐.'

카페 안은 주말 오전이라 한산했다. 2층 창가 자리에 앉아 아메리카노를 시켜 놓고 기다렸다.

11시 5분.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

김도현 선배는 마른 체형에 안경을 쓰고 있었다. 대학 1학년. 하지만 나보다 나이 들어 보였다. 다크서클이 깊고, 눈이 피곤했다. 파란색 후드티에 백팩.

"한시우?"

"네, 선배님. 감사합니다, 시간 내주셔서."

도현 선배가 맞은편에 앉으며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백팩에서 노트북을 꺼내다가, 내 얼굴을 한 번 훑고는 다시 넣었다.

"그냥 이야기하자. 뭐가 궁금해?"

준비해 온 질문이 있었다. 노트에 다섯 개를 적어 왔다.

"첫 번째 질문입니다. 서울대 경영 정시, 표준점수 합산 몇 점으로 합격하셨습니까?"

도현 선배가 피식 웃었다.

"바로 본론이네. 국어 140, 수학 139, 탐구 합산 130. 총 409. 영어 1등급. 작년 기준으로 합격선이 407 부근이었으니까, 간신히 걸친 거야."

409점. 600점 만점에서 국어와 수학이 각각 140점 안팎, 탐구 합산이 130점. 탐구는 두 과목을 합친 점수니까 과목당 65점 수준.

노트에 적었다. 이 숫자들이 내 목표의 실체였다.

"두 번째 질문. 수학 공부 루트가 어떻게 되셨어요?"

"미적분. 킬러 대비는 기출 반복이 전부였어. 30문제, 50문제 수준이 아니라 같은 유형을 100번 넘게 풀었어. 손이 먼저 움직이게."

'서연이 말한 것과 같다.'

"6월까지는 개념 완성, 9월까지는 킬러 대비, 수능 전까지는 실전 감각. 이 루트를 벗어나면 안 돼. 특히 9월 모의고사가 중요해. 9월까지 수학 안정적 1등급 만들어. 6월은 연습이야."

노트에 적었다. 9월까지 수학 1등급.

"세 번째 질문. 사탐은요? 선배님도 경제 선택하셨습니까?"

"아니, 나는 생윤에 사문이었어. 근데 경제 선택한 건 좋은 판단이야. 표점 상한이 높으니까. 다만 경제는 변별력이 세서, 1등급과 3등급의 차이가 클 수 있어. 양날의 검이야."

'알고 있어. 그래서 고전 중이니까.'

"네 번째 질문. 선배님은 수능 당일 킬러에서 안 흔들렸어요?"

도현 선배의 손이 커피잔 위에서 멈추었다. 잠깐의 침묵.

"흔들렸지."

목소리가 낮아졌다.

"22번 찍었어. 시간이 부족해서. 3분 남았는데 풀이가 안 보여서, 그냥 3번 마크하고 넘겼어."

"그래도 합격하셨잖아요."

"나머지를 안 놓쳤으니까."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나를 바라보았다.

"킬러 하나 틀려도 합격할 수 있어. 킬러 하나 맞히고 나머지 셋을 틀리면 떨어지고. 중요한 건 킬러가 아니라 전체 밸런스야."

'서연이 말한 것과 같다. 중반부를 가볍게 보지 마.'

다섯 번째 질문을 꺼내려는데, 도현 선배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근데."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합격하고 나서가 진짜 시작이야."

"……네?"

"수능이 끝이라고 생각하잖아. 고3 때는. 여기만 넘으면 다 괜찮을 거라고. 근데 대학 들어오면 또 다른 레이스가 시작돼. 학점, 취업, 대외활동. 끝이 없어."

선배의 눈이 창밖을 향했다. 노원역 앞 사거리가 내려다보였다.

"서라벌고에서 서울대 들어간 게 3년 만이었어. 선생님들이 축하해주고, 후배들이 부러워하고. 근데 막상 들어오니까 나보다 잘하는 애들 천지야. 자사고, 특목고, 재수생, 반수생. 내가 사흘 걸려 이해한 걸 한 번에 풀어내는 애들. 1학기 학점이 처참해."

쓴웃음을 지었다.

"합격이 끝이 아니야. 그건 확실하게 말해줄 수 있어."

그 말의 무게가 바로 와닿지는 않았다. 지금 내 머릿속은 수능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합격 이후는 합격한 다음에 생각할 문제였다.

하지만 도현 선배의 피곤한 눈이 기억에 남았다. 합격자의 눈이 저렇게 피곤할 수 있다는 것.

"감사합니다, 선배님. 정말 도움이 됐습니다."

"별거 아니야. 서라벌고 후배니까."

도현 선배가 일어서며 말했다.

"6월 모의고사 끝나면 연락해. 성적 보고 다시 이야기하자."

고개를 숙였다. 선배가 계단을 내려갔다. 카페에 혼자 남아 노트를 다시 펼쳤다.

'9월까지 수학 1등급. 경제 표점 상한. 킬러보다 전체 밸런스.'

그리고 한 줄 더.

'합격이 끝이 아니다.'

의미를 다 이해하지 못한 채 적었다. 하지만 언젠가 이 문장이 무게를 가질 것이라는 예감이 있었다.


월요일. 교실.

점심시간이 끝나고 5교시 시작 전. 게시판에 종이 한 장이 붙었다. 수학 자체 모의고사 성적 순위표.

1등. 이준혁. 98점.

2등. 윤서연. 96점.

3등 이하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 이름을 찾았다. 7등. 84점.

준혁이 전교 1등을 찍었다. 전학 온 지 2주 만에. 서연을 제치고.

서연의 자리를 보았다. 맨 앞 창가. 서연이 게시판 쪽을 보지 않고 있었다. 문제집을 펼친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볼펜이 움직이지 않았다. 같은 페이지에 멈춰 있었다.

'동요하고 있다.'

미세하지만 확실했다. 서연은 서라벌고에서 1등이 아닌 적이 없었다. 그 자리가 처음으로 흔들린 것이다.

준혁은 자기 자리에서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핸드폰을 만지고 있었다. 1등이 당연하다는 듯이.


화요일 저녁. 독서실 25시 스터디룸.

서연이 평소와 달랐다. 날카로움이 한 단계 올라가 있었다. 날카로움이라기보다—뾰족함. 안으로 향한 칼날.

국어 비문학 분석 시간. 내가 풀이를 설명하자 서연이 고개를 저었다.

"이건 좀 안이한 접근 아니야?"

"……뭐가?"

"3단락이랑 4단락의 논리 연결. 네가 '원인-결과'라고 했는데, 이건 '조건-결과'야. 원인과 조건은 달라. 선지 소거할 때 차이가 나."

맞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말투가 평소보다 한 톤 높았다. 지적이 아니라 공격에 가까운 톤.

반박하려다 참았다.

'서연이 나한테 화내는 게 아니야.'

게시판의 순위표. 이준혁 1등, 윤서연 2등. 그 숫자가 서연의 안에서 돌고 있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 것이다. 그 화가 내게 튀는 것일 뿐.

"……미안. 네 말이 맞아. 조건-결과로 수정할게."

서연의 눈이 잠깐 흔들렸다. 자기가 너무 날카롭게 말했다는 걸 아는 표정. 하지만 사과는 하지 않았다. 서연은 사과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다음 지문."

스터디가 이어졌다. 공기가 전보다 무거웠다. 서연의 볼펜 소리가 평소보다 세게 종이를 긁었다.

8시. 스터디 종료.

서연이 문제집을 가방에 넣으며 일어섰다. 나도 노트를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터디룸을 나서는데, 복도에서 서연이 뒤에서 불렀다.

"한시우."

돌아보았다.

서연이 서 있었다. 가방끈을 양손으로 잡고.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나……"

말이 멈추었다. 복도의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서연의 얼굴이 평소보다 창백해 보였다.

"……의대 안 갈 수도 있어."

멈추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복도에 우리 둘뿐이었다. 독서실의 환기팬 소리만 낮게 울렸다.

"뭐?"

"의대. 안 갈 수도 있다고."

서연의 목소리가 떨렸다. 하지만 눈은 똑바로 나를 보고 있었다. 떨리면서도 시선을 피하지 않는 것. 그게 서연이었다.

3월, 교실에서 멍한 표정을 짓던 장면이 떠올랐다. 창밖을 바라보던 서연의 흐릿한 눈. 성적표를 감추듯 접던 손. '아빠 얘기는 하지 마'라고 했던 낮은 목소리.

전부 이것으로 향하고 있었다.

"……왜?"

물었다. 다른 말은 나오지 않았다.

서연이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다시 열었다.

"수학 문제 풀 때가 제일 좋아. 환자 보는 건 상상이 안 돼."

한마디. 짧았지만 무거웠다.

서연이 돌아섰다.

"……오늘은 여기까지."

발소리가 복도를 따라 멀어졌다. 비상구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

혼자 복도에 서 있었다. 형광등 불빛이 하얗게 내리쬐었다.

'의대를 안 간다.'

전교 1등. 의사 집안. 부모의 기대. 그 위에 세워진 계획을 뒤엎겠다는 것.

서연에게 그 한마디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성적표의 숫자보다, 준혁에게 1등을 빼앗긴 것보다, 이 한마디가 서연을 가장 떨리게 하는 것이었다.

'나는 뭘 해줄 수 있지.'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전에라면 '그건 네 문제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번은 달랐다. 다르고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를 몰랐다.

스터디룸으로 돌아가 가방을 챙겼다. 독서실을 나서며 핸드폰을 확인했다. 밤 8시 17분. 엄마에게서 카톡이 와 있었다.

'오늘 야근이야. 밥 챙겨 먹어.'

답장을 보냈다.

'응. 엄마도.'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걸었다. 4월의 밤바람이 볼을 스쳤다. 벚꽃이 지기 시작한 거리에 꽃잎이 바닥에 깔려 있었다. 가로등 불빛 아래로 분홍빛이 갈색으로 바래가고 있었다.

'서연의 의대. 준혁의 등장. 경제 독학. 수학 중반부.'

변수가 늘어나고 있었다. 돌아오기 전에는 없던 것들. 계산에 없던 것들.

하지만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멈출 수 없었다.

수능까지 207일.